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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으로~

고무줄 반지로 프러포즈 한 '타이거JK의 눈물겨운 삶'

by 홈쿡쌤 2010.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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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JK는 어제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1992년 최고의 인기 토크쇼 '쟈니윤쇼'에 해외에 거주하는 신기한 한국 청소년들을 만나보는 코너에 소개되면서 출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1. 무명 힙합가수로서의 설움과 인종차별

이날 공개된 방송화면 속 타이거JK는 레게머리에 상의와 하의를 블랙으로 통일하고는 학교 잔디밭에서 열정적으로 랩을 하는 모습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 지금은 무대 위에서 '성난 호랑이' 같은 모습이지만 당시만 해도 뻣뻣한 몸과 어색한 표정으로 랩을 하는 게 마냥 풋풋한 소년의 모습으로 버여 나를 미소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타이거JK는 한국에서 열리는 힙합축제에 초대받아 부푼 꿈을 안고 10년 만에 고국 땅에 밟았으나 정통힙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방송국에서 온갖 무시를 받으며 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미국에서 함께 온 흑인친구를 '깜둥이'라고 부르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미국보다 더한 인종차별을 느꼈으며, 당대 최고의 인기그룹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장르인 힙합을 했지만 극과극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렇게 조용한 관객은 처음이었다는 것. 사실, 처음에 우리도 랩을 하면 책 읽는 거야? 뭐가 저래? 라고 말을 했으니까요.


실패를 맛보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이후 드렁큰타이거로 화려하게 복귀, 마니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힙합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상파TV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등 정통힙합 1세대로서 힙합의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2. 아내 윤미래와 아들 조단은 희망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윤미래는 거절 못하는 착한 성격에 순수해서 불이익을 당하고도 꼼짝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건 윤미래가 공연 관계자로부터 억울하게 받지 못한 돈을 타이거JK가 대신 받아 챙겨주면서 시작되었고, 윤미래에게 타이거JK는 보호자처럼 든든한 울타리였으며 음악을 좋아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였습니다. 그러던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했고 가족들도 인정해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위기가 닥쳤습니다. 2006년 타이거JK가 척수염 판정을 받으면서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 하반신 마비까지 이어지면서 가족들은 혹여나 아이를 가지지 못할까봐 걱정했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서둘렀습니다.

“프러포즈는 누가 먼저 했습니까?”라고 물으니 "윤미래에게 고무줄반지로 프러포즈를 했다"고. 그는 "당시 반지를 살 만한 돈이 없어 프러포즈 당시 저녁을 만들어주고 나서 무릎을 꿇고 윤미래의 손가락에 노란 고무줄을 감아주면서 '내가 이 고무줄을 네가 원하는 반지로 바꿔 줄 테니 나랑 평생 함께 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윤미래가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승낙해줬던 것. 두 사람은 재래시장에 가서 가짜 반지를 나눠 꼈습니다. 당시 윤미래는 "사진으로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며 큼지막한 유리 장식이 된 2만5천 원짜리 반지를 나눠 끼고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7년 6월, 타이거JK와 윤미래는 가족들만 모인 조촐한 비밀결혼식을 올렸고 다음 해 3월 아들 조단을 낳았습니다.


          ▶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남편 대신 앉은 아내

3. 척수염으로 투병생활

 한편 타이거JK는 척수염으로 마비가 왔던 사실과 하루에 18알 정도의 약을 먹어야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쓰러지기도 수차례였던 투병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놔 주변을 숙연케 만들어 버렸습니다.

척수염은 희귀병으로 척추안의 척수에 염증이 생겨 신경마비까지 생기는 중병입니다. 스테로이드제를 투약하는데 2주 만에 30~40kg이 쪘고, 지팡이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했으며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투병사실을 최대한 숨겼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영화 섭외가 들어와서 살을 일부러 찌운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평소엔 속지 않던 의료제 과대광고도 모두 믿게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다수 환자들이 마비 증세로 고통을 치루고 있으나 병을 이겨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걷기 시작했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여 완치에 가까워진 타이거JK는 세계 의학계에 보고될 정도로 '기적'에 가깝게 불리고 있을 정도. 그러면서 그가 말한 한 마디 모든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 준 것은 가족이었다고 말을 할 때 그 말이 전해주는 의미는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힘겹고 어려울 때 생각나는 가족, 언제나 지켜봐 주고 함께 해 주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말에 따뜻한 부부애를 보았습니다.


타이거JK는 미국 고교시절 한인에 대한 차별에 맞서기 위해 ‘콜미 타이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흑인 페스티벌에 초대됐고,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콜 미 타이거’를 선보이고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 2009년 8집을 발표해 아내 윤미래와 함께 ‘트루 로맨스’로 활동, 각종 연말 시상식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한국 사랑을 실천했던 어린 시절과 한국에 건너와 드렁큰 타이거로 이름을 날리기까지 겪어야했던 아픔까지도 솔직하게 풀어냈고, 그는 윤미래와 아들 조단에 대한 깊은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척수염이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건강 잃지 마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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