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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반겨주는 사람 없어도 행복한 친정나들이

by *저녁노을* 201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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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겨주는 사람 없어도 행복한 친정나들이


햇살이 곱던 주말 오후였습니다. 퇴근
하고 집으로 들어서니 아이들은 각자 할 일들이 있어 들어오지 않았고 부부 둘만이 남았습니다. 쌀도 떨어졌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달려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고향에 그것도 친정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할일이 있어야 찾아가게 되는 이유가 아무도 반겨줄 이가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 산소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6남매의 막내로 자라다 보니 부모님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무궁한 산천만이 제자리를 지키는 느낌이었습니다. 울긋불긋 단풍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시골 길을 달려 말을 하지 않아도 나란히 누워계신 산소 앞에 차를 세워주는 남편입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잔디 사이에 잡풀을 뜯어내며 엄마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봉분을 어루만졌습니다.

‘엄마! 잘 있지?’ 하고 말입니다.

아무런 대답은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엄마의 그 온화한 미소가 번져나갔습니다. 당신은 못 먹어도 자식만은 공부시켜야 한다며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사시다 가신 분인 줄 알기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도 왜 그렇게 목이 메여오던지.








꼭 잠긴 열쇠를 따고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엔 이리저리 낙엽들이 나뒹굴고 장독대 위에, 대청마루엔 뽀얀 먼지만 자욱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까르르 이웃담장으로 웃음 넘기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골목길을 내달리며 잡기 놀이 숨바꼭질하며 놀았던 친구들의 모습도 그리웠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탓에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300여 년 된 어릴 때 열매를 따 먹고 나무를 타며 놀았던 느티나무


▶ 친정 동네




대충 쓸고 닦아 놓고 창고에 있는 나락을 싣고 정미소로 향하였습니다. 커다란 정자나무 곁에 쓰러져가는 듯 서 있는 정미소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 나보다 나이가 더 먹었습니다.

“아이코! 아기씨 왔나?”
“응 언니.”

사촌 올케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웬걸 3포나 되노?”
“새 쌀 갖다 놓았는데 묵은 쌀 먼저 찧어 먹어야지.”

우리 논에 농사짓는 이웃집 아저씨가 15포나 가져다 놓았기 때문입니다.



▶ 나락을 투입구에 넣는 남편입니다.


▶ 덜커덕거리며 껍질을 벗겨가며 쏟아내는 방아


▶ 뽀얀 쌀이 흘러 나옵니다.


▶ 왕겨입니다.




▶ 텅 빈 들판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거름 주고 잘 키워 가을엔 결실을 맺어 창고 가득 채워두었을 것입니다.


▶ 요즘 압축시켜 둔 짚
들판을 지나다 보면 하얀 뭉치를 흔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듯 이렇게 짚을 뭉쳐 둔 모습도 변하였습니다.



▶ 옛날 어릴 때 보았던 짚동
하나하나 뭉쳐서 세워 두었던 짚동 사이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곤 했습니다. 한겨울엔 추워서 불장난을 하다가 짚동을 몽땅 태워 먹어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 콩 타작 하시는 친구 어머니
키 대신 채반으로 콩깍지를 털어내고 계셨습니다.





집 앞에 앉아서 콩 타작을 하고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정수댁 막내딸 아이가!"
"네. 맞아요."
"친구도 잘 지내고 있지요?"
"응. 학교에 나가고 있어."
"어떻게 왔어?"
"방아 찧으러 왔어요."
퍼지고 앉아서 한참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엄마이야기,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신 큰오빠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친구 엄마를 보니 꼭 친정엄마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두 분이 평소 자주 오가며 잘 지내셨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세요."
"그래 잘 가거라."
"집에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한잔 하고 가라."
"괜찮아요. 어머님."
따뜻한 정을 마시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돌아서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지요.
하늘에 계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 아직도 남아 있는 빨래터
여자들의 수다가 있고, 방망이로 두들겨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세탁기 돌릴 수도 있지만, 우리의 어머님은 빨래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친구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행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 돌담과 감








▶ 대봉감
올해는 감이 몇 개 달리지 않았습니다. 가지를 타고 올라 감을 따는 남편입니다.
"여보! 한 개는 남겨! 다 따지 말구."
"까치밥 하게?"
"응."
조상의 배려이기에 우리도 따라 해 보았습니다.



▶ 텃밭에서 자라는 무 배추

큰오빠가 살아계셨더라면 직접 농사지어 김장도 하고 했을터인데...이젠 사촌 오빠가 텃밭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300포기 정도 심어 함께 모여 김장을 하곤 했는데 말입니다. 그저 그리움뿐입니다.

▶ 양파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 뒷 트렁크가 꽉 찼습니다.


사촌 언니가 농사지은 풋고추, 무도 얻어왔고,
우리 논에 이웃 아저씨가 농사지은 쌀도 찧어왔고,
국화차를 만들어 가을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산국도 꺾어 왔습니다.

친정 갔다 오면 부자가 되는 느낌입니다.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 없었지만 늘 고향은 엄마품처럼 포근하였습니다.
곳곳에 엄마의 향기는 그대로 남아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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