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일람표에 아직도 부모의 학력과 직업이?
아들 녀석이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됩니다.
3살 때 기저귀를 차고 어린이집을 시작하여 가슴을 많이 졸이며 자라나 이제 나보다 키를 훌쩍 넘긴 든든하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배정받아 반편성고사를 보고 온 아들에게
“시험은 어땠어?”
“와! 엄마! 고등학교라 그런지 장난 아니더라.”
“왜? 어려웠어?”
“응. 고1 1학기만 공부했는데, 2학기까지 나와서 식겁했어.”
그러면서 중학교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말을 하며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 말을 합니다.
그러더니 아들이 내놓는 쪽지 하나
“엄마! 이거 작성해서 입학식날 가져가야 해.”
“이제 스스로 알아서 네가 해.”
“학부모가 적는 곳도 있단 말이야.”
“알았어. 놓고 가.”
주고 간 개인별 신상 일람표를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족상황을 보니 학력, 직업(구체적) 종교까지 적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였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제게 털어놓은 고민거리입니다.
“언니! 나 걱정 있어.”
“왜? 무슨 일이야?”
“00이 언니 아들이랑 같은 학교잖아.”
“그래서?”
“부모 학력 적는 데가 있던데 어쩌지?”
사실, 후배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딸로 태어나 중학교까지 보낸 것도 감지덕지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라고 쓰는 게 부끄럽다고 말을 합니다.
“야! 그냥 고졸이라고 적어. 아님 대졸이라고 적던지.”
“어떻게 그래?”
“왜? 조사 나올 것도 아닌데 괜찮아.”
“고졸이라고 적어도 될까?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알고 있단 말이야.”
“그럼 그렇게 해.”
요즘에야 누구나 나왔다는 대졸이라는 학력입니다.
그리고 학력 위주의 대접도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로 적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지 참 기분이 묘하였습니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가에 따라 아이도 함께 평가할 것인가?
어머니야 전업주부라고 하면 되지만, 일이 없는 아버지는 그럼 무직으로 적어야 할까? 사업에 실패하고, 직장에서 잘리고, 하루하루 벌이를 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무어라 적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번듯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종교는 자유라고 알고 있습니다. 무교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천주교이든 사람마다 다른 종료를 어디에다 쓰려고 조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별스러운 일이 다 있습니다.
트로트를 좋아하나?
재즈를 좋아하나?
록을 좋아하나?
대표곡과 그 이유를 적으라고 합니다.
이건 또 어디다 쓰이는 것일까요?
예능계도 아닌 인문계에서 말입니다.
상, 중, 하
볼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상, 중, 하, 그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60년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집에 TV가 있는지, 라디오가 있는지 시계가 있는지를 조사하며 손을 들게 했었습니다. 자신 있게 들 수 있었던 건 라디오뿐이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꼬마의 마음은 땅으로 꺼져 드는 기분이었습니다.
과연, 어디에다 동그라미를 쳐야 할 지 몰라 잘 사는 상은 아닌 것 같고 중? 하? 그냥 중에 표시해 버렸습니다.
동산, 부동산, 기준도 없는 생활 정도를 표시하면 무엇에 쓰일까요?
그저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세상인데 학교만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 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라졌으면 하는 아니,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개인별 신상 일람표 내용이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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