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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딸아이를 통해 본 34년 전 나의 아련한 여고시절

by 홈쿡쌤 201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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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통해 본 34년 전 나의 아련한 여고시절


얼마 전, 여고 2학년인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공부에서 해방되어 신나게 놀다 오라고 옷 가방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방 속에 책이 보여
"야! 책은 뭐 하러 들고 가?"
"엄마! 수학여행 갔다 오면 바로 수학 수행평가야."
"그래도 여행 가서 공부하는 아이가 어딨어?"-
"아니야. 공부할 거 가져갈 꺼야. 못하고 와도."
그냥 가져간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것 같아 그냥 두었습니다.

3박 4일 아름다운 제주도를 보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조잘조잘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여행가방을 열어 빨랫감을 챙기는데 눈에 설은 옷가지가 보입니다.
"딸! 너 친구 옷을 가져온 거야?"
"엄마는. 빌러갔던 옷이잖아!"
"아! 그랬지! 내 정신 좀 봐"
기특하게도 친구들과 옷을 서로 빌려주고 빌려 입었던 것입니다.


                  ▶ 딸아이 친구의 고맙게 잘 입었다는 메모
 

깨끗하게 빨아 친구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는데 며칠이 되니 딸아이가 빌려 주었던 옷도 되돌아왔습니다. 옷 봉투 속에 든 친구의 메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와! 우리 딸 대견하네. 친구와 이렇게 잘 지내니."
"엄마는 그런 친구 없었어?"
"있었지."





오랜만에 여고시절을 담고 있는 노트 한 권, 나의 보물상자를 꺼냈습니다.
"우와 우리 엄마 문학소녀였었네"
친구들이 적은 편지, 명언, 시, 낙서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곱게 접어두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 들어 있는 노트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큰오빠댁에서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교복을 입고 까르르 웃으며 분식집으로 영화관으로 몰려다니곤 했던 여고생 네 명이 있었습니다. 1977년 ~ 1979년 삼 년 내내 같은 반을 하면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사이였으니 말입니다.

도시생활만 하던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시골로 함께 놀러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봄이면 봄나물도 뜯으러 소쿠리 들고 들판으로 나갔고 여름이면 소 먹이러 산으로 한여름밤 까까머리 남자 친구들과 횟불들고 물고기 잡으러 갔던 일, 가을엔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음이 난다는 수다쟁이들의 단풍놀이, 겨울엔 소죽 끓인 가마솥에 노릇노릇 군고구마 만들어 먹었었고, 청바지에 통기타 들고 고고 춤 추던 친구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하지만, 유독 가슴 아프게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누가 봐도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한 부부였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배가 많이 아파 병원으로 옮겼지만 ‘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00아! 잘 지내지?”
“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친구도 잘살고 있지요? 전화 안 한 지 제법 되네요.”
“....................”
“어머님! 어머님!”
“어........응.”
“무슨 일 있으세요?”
“사실, 00이가 저세상으로 떠났어.”
“네?”
“가수나. 무심도 하지. 그렇게 쉽게 우릴 떠나 버리네.”
장례까지 치르고 제게 전화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울먹이십니다.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가족들을 두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딸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면서 나 역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단발머리 여고시절과 25년 전의 기억 속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아이도 꿈많은 여고시절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꾸며나가길 바라는 맘입니다.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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