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통해 본 34년 전 나의 아련한 여고시절


얼마 전, 여고 2학년인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공부에서 해방되어 신나게 놀다 오라고 옷 가방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방 속에 책이 보여
"야! 책은 뭐 하러 들고 가?"
"엄마! 수학여행 갔다 오면 바로 수학 수행평가야."
"그래도 여행 가서 공부하는 아이가 어딨어?"-
"아니야. 공부할 거 가져갈 꺼야. 못하고 와도."
그냥 가져간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것 같아 그냥 두었습니다.

3박 4일 아름다운 제주도를 보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조잘조잘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여행가방을 열어 빨랫감을 챙기는데 눈에 설은 옷가지가 보입니다.
"딸! 너 친구 옷을 가져온 거야?"
"엄마는. 빌러갔던 옷이잖아!"
"아! 그랬지! 내 정신 좀 봐"
기특하게도 친구들과 옷을 서로 빌려주고 빌려 입었던 것입니다.


                  ▶ 딸아이 친구의 고맙게 잘 입었다는 메모
 

깨끗하게 빨아 친구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는데 며칠이 되니 딸아이가 빌려 주었던 옷도 되돌아왔습니다. 옷 봉투 속에 든 친구의 메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와! 우리 딸 대견하네. 친구와 이렇게 잘 지내니."
"엄마는 그런 친구 없었어?"
"있었지."





오랜만에 여고시절을 담고 있는 노트 한 권, 나의 보물상자를 꺼냈습니다.
"우와 우리 엄마 문학소녀였었네"
친구들이 적은 편지, 명언, 시, 낙서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곱게 접어두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 들어 있는 노트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큰오빠댁에서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교복을 입고 까르르 웃으며 분식집으로 영화관으로 몰려다니곤 했던 여고생 네 명이 있었습니다. 1977년 ~ 1979년 삼 년 내내 같은 반을 하면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사이였으니 말입니다.

도시생활만 하던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시골로 함께 놀러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봄이면 봄나물도 뜯으러 소쿠리 들고 들판으로 나갔고 여름이면 소 먹이러 산으로 한여름밤 까까머리 남자 친구들과 횟불들고 물고기 잡으러 갔던 일, 가을엔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음이 난다는 수다쟁이들의 단풍놀이, 겨울엔 소죽 끓인 가마솥에 노릇노릇 군고구마 만들어 먹었었고, 청바지에 통기타 들고 고고 춤 추던 친구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하지만, 유독 가슴 아프게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누가 봐도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한 부부였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배가 많이 아파 병원으로 옮겼지만 ‘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00아! 잘 지내지?”
“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친구도 잘살고 있지요? 전화 안 한 지 제법 되네요.”
“....................”
“어머님! 어머님!”
“어........응.”
“무슨 일 있으세요?”
“사실, 00이가 저세상으로 떠났어.”
“네?”
“가수나. 무심도 하지. 그렇게 쉽게 우릴 떠나 버리네.”
장례까지 치르고 제게 전화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울먹이십니다.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가족들을 두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딸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면서 나 역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단발머리 여고시절과 25년 전의 기억 속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아이도 꿈많은 여고시절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꾸며나가길 바라는 맘입니다.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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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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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중에 결혼을 하고 노을님처럼 자식과 함께
    옛사진을 보며 추억하면 참 재미있을것 같아요 ^^;

    2011.04.09 08: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민트맘

    제게도 나이 28세에 생을 마감한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양쪽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살기도까지 해가며 했던 결혼
    아들낳고 알콩달콩 살더니 갑자기 받은 암선고는 이미 너무 늦었었지요.
    보름만에 세상을 떠 버리고..
    저는 나중에야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빨리가려고 그토록이나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걸까요?

    2011.04.09 08:24 [ ADDR : EDIT/ DEL : REPLY ]
  4. 친구분 넘 안됬군요...
    봄이 되니 여고시절 꽃이 가득 핀 교정을
    친구와 같이 걷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2011.04.09 08:26 [ ADDR : EDIT/ DEL : REPLY ]
  5.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그때의 친구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한 추억은 영원히 살아 있을것이라 믿습니다.

    2011.04.09 08: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아 ~~ 그런일이 있었군요
    저도 갑자기 추억이 떠오르는 아침 이네요

    2011.04.09 08: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비밀댓글입니다

    2011.04.09 09:06 [ ADDR : EDIT/ DEL : REPLY ]
  8. 아..

    저도.. 친구가 생각이 나네요..

    가슴속에 묻은.. 친구가 있거든요..

    2011.04.09 09: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여러 일들이 옛 일들과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게 인생일까요? 잘 봤습니다. ^^

    2011.04.09 09: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벌써 딸아이가 많이 자라 노을님 여고시절을 회상하게끔 하네요~
    가만 돌아보면 그간 어떻게 키워왔는지도 모르게 자라있지 않나요?
    아직 병아리같은 저희 딸들도 금새 이렇게 자라버리겠죠?
    그 생각 하면 우울해지네요 ㅡㅡ;
    그냥 지금 이대로, 안자라고 재롱 피우고 있으면 좋으련만 ^^
    철없는 아빠의 희망사항입니다 ^^;

    2011.04.09 09: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딸아이를 통해서 과거의 추억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셨군요~
    즐거운 휴일 잘보내세요~~

    2011.04.09 09:50 [ ADDR : EDIT/ DEL : REPLY ]
  12. 저녁노을님의 추억 속으로 잠시 빠져보았습니다..
    친구분 하늘에서 안아프고 행복하게 계실꺼라 생각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필체가 참 좋으시네요~)

    2011.04.09 11: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1 저는 967년에 고1이었는데 그때가 더 낭만도 잇고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요샌 모든게 너무 짫고 빨라요.

    2011.04.09 11:34 [ ADDR : EDIT/ DEL : REPLY ]
  14. 학창시절의 풋풋함과 세월의 허망함이 모두 느껴집니다.

    2011.04.09 11: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잠시 옛날 추억속으로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그때 그시절.. 행복했던 맘아파던 모든 기억이 이젠 추억으로 남아있겠죠..

    2011.04.09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어떻게 그런일이~~
    같이 목소리를 듣고 나누지는 못해도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있을것 같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2011.04.09 13:50 [ ADDR : EDIT/ DEL : REPLY ]
  17. 저도 친구가 보고프네요..
    노을님 감사해요~

    2011.04.09 14:19 [ ADDR : EDIT/ DEL : REPLY ]
  18. 최고의 반전이네요. 전 읽다가 뒤로 자빠졌습니다. 노을님 따님 얘기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아마 노을님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노을님 글 보면 예전에 꽤나 책도 좋아하시고 글도 많이 쓰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블로그로 글을 쓰시잖아요. 세대가 변했으니 글을 쓰는 곳도 바뀌어야 하잖아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피곤했는데 글을 읽으며 화들짝 놀라서 등에서 식은 땀이 났더니 피곤이 도망갔네요. - 햇살아이 So Incredible 1215225 -

    2011.04.09 16: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시크릿

    아이들을 통해 옛 시절의 모습 간간히 떠올리게 되지요 ^^
    근데 25년전 여고시절이 맞는 숫자이지요? ㅎㅎ

    2011.04.09 18:01 [ ADDR : EDIT/ DEL : REPLY ]
  20. 아.. 왜이리 가슴이 아련해질까요.. ㅠㅠ
    잘보았습니다 ㅠ_ㅠ

    2011.04.09 20: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추억 속으로 떠나는 것도 괜찮죠... 가끔.. 아픈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많다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머릿속에서.. 그렇게 좋은 기억이 많이 두지 못해서...그런지..

    2011.04.09 23: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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