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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가슴 먹먹한 사진 한 장 '어느 할매의 뒷모습'

by *저녁노을* 201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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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한 사진 한 장 '어느 할매의 뒷모습'




매일 같이 날아오는 아침 편지 속 사진 한 장이 가슴 먹먹하게 합니다.
그 옛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직 자식 위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나라 어머니의 헌신적인 모습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어시장에서 새우를 파시는 할매입니다.
새우껍질을 까느라 꽁꽁 언 손을 번갈아 화로에 쬐고 있는 할매의 뒷모습.
 길의 가운데 달랑 새우 한 상자를 차려놓고 살림살이를 이어가자면,
그 고생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경기도 안 좋고,
새우 한 상자를 팔기에도 하루해가 너무 짧은 겨울.
오늘은 부디 장사가 잘돼서 화로에 온기가 식기 전에
준비한 새우들 다 파셨으면 좋겠습니다.
-합포만의 아침 중에서-








며칠 전, 지인은 사랑하는 친정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녔기에 친구의 엄마를 잘 알고 지냈습니다.
"아이쿠! 우리 막둥이 친구 왔네."
"밥 먹고 재밌게 놀다가!"
"네. 어머님."
시골에서 올라와 유학생활을 했던 내겐 따뜻하기만 하였습니다.

번듯한 가게조차 없이 시장 가장자리에 앉아 생선 장사를 하시는 어머님이었습니다.

엄마의 생선냄새가 싫다며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어릴 때는 구질 하게 입고 엄마가 학교에 오는것 조차 싫었고,
친구들이 알까 부끄러워 멀리 돌아서 가곤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6남매를 키워내신 훌륭한 엄마에게 참 못된 딸이었습니다.

여고 시절을 끝내고 졸업식을 하는 날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엄마!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 왜 왔어?"
"............."
"싫어 얼른 가!"
머뭇거리며 하시는 말,
"내가 생선냄새 날까 봐 목욕탕까지 갔다 왔는데."
정말 놀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딸의 마음을 벌써 헤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얘가 왜 이래? 어머님! 이리 오세요. 얼른요."
꽃다발을 사 들고 온 어머님을 잡아당겨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졸업식에서 유일하게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 졸업식에는 엄마 스스로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친구 집에 가면 어머님은 나를 더 반겨주었습니다.
팔다 남은 것이었다곤 하지만 집에서 자주 먹을 수 없었던 고등어 자반, 갈치까지 구워냈습니다.
그렇게 딸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사셨던 어머님이십니다.
몸빼 바지 하나로 늘 시장에 앉아 장사를 하셨습니다.

얼굴에는 분하나 바르지 않으시고 자신을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긴, 남편도 없이 혼자서 6남매를 키우려면 억척 아줌마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오직 자식을 위한 삶이었지요.
그렇게 억척같이 아끼고 모아 번듯하게 사회생활 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시집 장가까지 보내고 손자 손녀까지 보았습니다.
팔순을 넘긴 나이인데도 그 일을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였습니다.
"엄마! 제발 이제 그만두고 편하게 살아!"
"이 한 몸 죽으면 흙이 될 터인데."
 "궁상 좀 그만 떨고 제발!"
"이 년아! 사람은 움직여야 건강해!"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이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의 전화
"너희 엄마가 오늘 시장 안 나와 가보니......"
그렇게 혼자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날에도 맨손으로 생선을 다듬어 팔면서
잠시 피워놓은 화로에 손을 녹이면서도 힘겨운 줄 몰랐을 것입니다.
엄마는 그렇게 위대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사랑만 주고 가셨습니다.
그게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하늘 나라로 떠나신 어머니가 그리운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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