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이 처음 아침밥을 굶고 학교 간 사연
2013년 8월 19일 오후
걱정했던 비보 하나가 날아듭니다.
"고모! 오빠 갔어"
"..............."
할 말이 없었습니다.
67세의 아까운 나이라 한숨만 푹푹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떡해!"
"언니, 기운 내, 얼른 갈 게"
울산까지 쌩쌩 달려도 차가 밀리는 바람에 세 시간 만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최할 수 없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습니다.
떠나오면서 서울에 친구 만나러 간 딸아이를 불러 집으로 가게 해
고3 아들 아침을 챙겨주도록 했습니다.
이튿날 을지연습을 마친 이모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와
사촌 오빠들 얼굴도 보고 외삼촌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시켰습니다.
이모부가 고3이지만 한 끼 정도를 혼자서 차려 먹어도 되니 가지 말라고 해도 딸아이는 굳이 집에 간다며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편한 데로 해.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아니야. 엄마. 갈게."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 너무 기특했습니다.
첫날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 이것저것 꺼내 햄까지 구워주었는데
둘째 날은 7시 50분에 통화를 하고 새벽같이 출상이 있어 다시 전화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오빠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뒤 혹시나 하여 집으로 전화하니 늦잠을 자 버려 누나가 해 놓은 볶음밥도 먹지 못하고 가버렸다는 것.
아침잠이 많은 딸은 저녁 늦게 자면서 식탁 위에 볶음밥을 만들어 차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나 봅니다.
전화소리에 깨어나긴 했는데 동생에게 일어나라고 해 놓고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고 합니다.
아들은 후다닥 일어나보니 나갈 시간이었고, 다행스럽게도 지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니 먹지 못한 볶음밥이 냉장고에 들어있었습니다.
남편과 둘이 숟가락을 오가며 먹어보았습니다.
제법 간도 맞고 맛도 괜찮았습니다.
우리보다 더 늦게 들어온 딸아이
"엄마! 볶음밥 먹었어?"
"응."
"맛이 어땠어?"
"괜찮았어."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했는데."
"맛있더라."
"계란 지단 부치는 게 정말 힘들더라. 뒤집지를 못하겠더라고."
엄마한테 배워야겠다는 말을 합니다.
자정을 넘겨 들어온 아들
"오늘 아침 못 먹어서 어째?"
"삼각김밥 사 먹었어요."
아침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우고 가는 녀석인데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고는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아 한 시간 마치고 편의점에 가서 사 먹었다고 합니다.
"누나가 심혈을 기울인 볶음밥 엄마가 먹어버렸어."
"잘했어요."
딸아이가 동생을 위해 만든 볶음밥,
아들 대신 우리 부부가 맛있게 먹었습니다.
슬픔에 빠져 마음 추스르기도 힘든 둘째 오빠를 보내고 오는 동안 티격태격해도 오누이의 깊은 사랑을 보았습니다.
늘 두 녀석한테 하는 말,
"부모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단 둘뿐이야. 사이좋게 잘 지내."
언젠가 모두 떠나야 할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비록 동생이 아침밥을 굶고 학교에 갔지만
챙겨주는 그 마음이 참 예쁘게 느껴지는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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