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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그리운 소리가 되어버린 ‘엄마의 잔소리’

by 홈쿡쌤 200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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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소리가 되어버린 ‘엄마의 잔소리’



  이제 하나 둘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 그런지 감기 환자도 많은 것 같은....

33살이라는 늦은 결혼으로 친구들은 사위 본다는 나이에 나는 이제 겨우 중학생이 된 딸과 아들이 나의 보물입니다.


어제 저녁, 한참 꿈속을 헤매고 있을 1시 30분에 딸아이가 불쑥 들어오면서

“엄마! 디카와 캠코더 어디 있어요?”
“뭐 하게...”
“충전 좀 시켜 놓게. 내일 사용하려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큰소리를 칩니다.

“너 몇 시인데 이러냐? 미리 준비하지 않고, 얼른 안 나가!”

딸아이는 남편의 고함 소리에 놀라서 후다닥 달아나 버립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딸아이의 방으로 가보니 엉망으로 해 놓고 자고 있는 모습이 참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11반 중 2반만 뽑는데 당당히 최우수로 당선되어 학예제에 나가게 되었다며 좋아라하던 게 생각나 디카와 캠코더를 찾아 충전을 시켜 놓았습니다.


우리집 아침은 늘 부산합니다. 머리감고 드라이하고 고데기 까지 하고, 아침 밥 안 먹으면 죽는 줄 아는 녀석들이라 바쁘기만 합니다. 그리고 사과 1/4쪽 먹고 양치질도 해야하니....

“딸! 엄마가 충전 해 놓았으니 가지고 가!”
“탱큐!~”

“네 방 좀 정리하고 다녀라.”
“그리고 또 옷은 그게 뭐니? 그렇게 하면 다시는 옷 안 사 줄 거야.”

“교복 벗으면 옷걸이에 걸고, 다 구겨지잖아!”

“딸아이가 도통 깔끔한 맛이라고는 없으니.”

“그만, 그만,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듣기 싫어도 넌 좀 들어. 행동 똑 바로 해!”

“알았어요. 알았다고.”

그래도 집을 나서면서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갔다 와, 차 조심하고...”
“내가 어린애인가?”

“.............”


학교 간다고 나간 녀석이 달그락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왜?”

“실내화 안 가져갔어.”

“참나~”

조금 있으니 또 후다닥 올라와

“엄마! 캠코드 안 가져갔다. 얼른~ 얼른~”

“이러다 지각하겠네.”

“빨리 빨리.”

“누굴 닮아서 이렇게 덜렁 거리냐?”
“누군 누구야 엄마 닮았지.”
“헐~”

하긴, 누굴 닮겠습니까? 엄마를 닮지.....


친정은 6남매로 위로 오빠 넷, 그리고 바로 위가 언니입니다. 오빠들이야 멀리 있어 그렇지만 언니는 같은 지역 하늘아래 가까이 살면서 먹을거리도 갖다 주고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 5명(1명은 잃어버림) 키우다가 딸을 낳았으니 금이야 옥이야 사랑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다 막내인 제가 태어났고 또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사랑만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언제나 차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난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언니가 일등으로 잘 받아오자 엄마는 자꾸 “언니 좀 닮아라.”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공부밖에 모르던 언니는 시집을 가게 되자 속된말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새댁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부모까지 모시며 아들 둘을 낳아 살아가면서 살림을 하나 둘 배우게 되었던.....세월이 약이었을까요? 지금은 나보다 더 요리솜씨도 좋고 간장, 된장 ,고추장, 멸치젓까지 직접 손으로 담아먹는 살림꾼이 되었습니다. 야무진 시어머님 덕분에 말입니다. 칠순을 넘기신 시어머님은 여고를 졸업하신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몸이 세약해지고 치매 끼가 있어 낮엔 요양원에 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하던 시어머님은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나 봅니다. 얼마 전 멸치젓을 담았는데

“야야! 잡티 안 들어가게 장독 매매 닫아라! 벌레 생길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어머님의 말씀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네 어머님. 그럴게요."

또 쉬는 토요일 아침 출석 수업이 있어 나가는데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00아~ 차 조심 하거래이~”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아 집을 나서면서 멍멍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다시 시어머님의 잔소리를 들게 되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나 역시 그땐 왜 그렇게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던지....

그게 모두 나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인 줄도 모르고 속상해 했었던....

지금 우리 딸도 마찬가지 기분일 것입니다.
듣기 싫다고 하면서....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보니 엄마의 잔소리가 왜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늘 남편에게 말을 합니다.

“여보! 엄마한테 전화 해 봐요.”
“왜?”
“그냥. 엄마! 부르면 얼마나 좋아요. 난 그렇게 부를 분이 안계신데...”
“그럴까?” 하면서 다이얼을 돌립니다.

“여보세요. 여기 경찰서인데 할머니 내일까지 나와 주세요.”

남편이 목소리까지 변장하여 시어머님께 말을 걸면

“내가 우리 아들 목소리도 모를까 봐!” 하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 보고 있으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릅니다.

“아~ 부럽다.”

“뭐가 그렇게 부러워?”
“엄마랑 수다도 떨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가? 에고~ 우리 장모님은 왜 일찍 가셔서 우리 마누라 마음 서운하게 하실꼬?”

“....................”


잔소리도 작은 관심이라 여겨집니다. 그 관심 또한 사랑이구요. 우리 딸도 이 엄마의 잔소리를 잘 알아듣고 바르게 자라줬음 하는 맘 간절해집니다.


늘 그렇듯 우린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 맘을 헤아리니 말입니다.
우리 딸아이도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게 너무 늦진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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