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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본 적 있으십니까?

by 홈쿡쌤 2008.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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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본 적 있으십니까?
 

주부들은 가족들의 생일이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맑은 도마소리 내며 뚝딱 한 상 가득 차려내지만, 막상 주부들인 당사자의 생일에는 그냥 대충 넘어가 버리고 마는 게 우리네 주부들의 일상일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 결혼식에 들러 집으로 들어서니 팔순을 넘기신 어머님이 와 계셨습니다. 벌써 냄비에는 팥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습니다. 모시러 가지 않으면 다리가 아파 오시지도 못하는 분인데 영문도 모르고 무슨 일인지 다들 궁금해 하며

“엄마 어쩐 일이야?”
“내가 아들집에도 못 오나?”
“아니, 그게 아니지만...”
“우리 며느리 생일 축하하러 안 왔나!”

“할머니! 엄마 생일은 월요일인데?”
“앞 당겨서 하자.”

당일 날 아침에 하면 다 나가고 어머님 혼자이며, 축하도 제대로 안 된다고 하시며 하루 앞당겨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맛있는 케이크 하나 사 오너라.”

2만원을 아들 손에 쥐어 주십니다.

할 수 없이 남편의 손에 이끌려 늦은 밤 마트에 들러 시장을 봐 왔습니다.


휴일 아침이 되자, 어머님이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늙으신 어머님이 일하시는 모습 보기 안쓰러워 옷을 입고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자신의 생일에 밥을 하고 미역국을 끓이고 스스로 차린다는 게 이상한 마음 들었지만, 내 가족들이 먹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즐거운 손놀림으로 바뀌며 부산히 움직였습니다.

어머님이 가려주는 시금치 콩나물 무쳐내고, 생선 한 마리 굽고 음식들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할머니가 남편과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엄마 생일 안 할 거야? 얼른 일어나.”

눈 비비며 일어난 딸아이 내가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빠! 엄마가 밥하게 하면 어떻게 해요? 오늘 같은 날 아빠가 해야지.”

“딸이 해야지 아빠가 해?”

“작년에 제가 했잖아요.”

“음~ 알았어. 알았어.”

작년 생일에는 출장 간 아빠 대신 해 미역국을 끓여준 딸아이입니다.

지은 죄가 있기에 순순히 대답을 하며 나를 밀쳐냅니다.

그렇게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온 가족의 박수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움직임이신데 찾아 와 주셔서 축하 해 주신 어머님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처음 먹어 본 눈물어린 '참치 미역국'

 

12월, 달랑 한 장남은 달력이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화살을 쏘아 놓은 듯 달아나 버리는 게 세월인 것 같습니다. 새해 계획 세운다고 한 지 어제 같은데 말입니다.

남편은 연말이라 일이 바빠 며칠 째 집에도 오지 못하고 있고, 두 녀석들 기말고사 기간이라 독서실에서 늦게야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려 주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녀석들 깨우는 일 또한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는 게 나의 작은 일상입니다.


어제 저녁, 퇴근을 해 집으로 들어서자 우리 아들

"엄마! 내일 생일이죠?"

"몰라~"

음력을 지내고 있는 터라 달력을 봐야 생일을 알 수 있는지라

"넌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가 전화 왔어요. 엄마 생일 잘 챙겨 주라고.."

"생일은 무슨... 아빠도 없는데..."

“아빠는 내일 오면서 엄마 선물 사 오신다고 했어요.”

사실, 남편이 없으니 반찬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먹고 지내고 있어 아무것도 준비 된 게 없었지만 그냥 다른 날과 변함없이 늦은 시간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맞이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녘, 잠결에 달그락 달그락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결이라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겠지?' 하며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자꾸 나는 것 같아 부시시 눈 비비며 부엌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세상에 딸아이였습니다.

"어? 너 뭐하는 거니?"

"엄마생신이라 미역국 끓여요."

"미역국을? 재료도 없는데 뭘로 끓었어?"

"냉장고에 쇠고기가 없어서 그냥 참치로 끓였어요."

"하이쿠야 우리 딸 다 키웠네."

숟가락을 들고 맛을 보니 그런 대로 괜찮은 맛을 내었습니다.

냄비에 끓인 미역국 속의 건더기는 적당히 잘 넣었는데, 물에 담가놓은 미역이 더 많았습니다.

"엄마! 불러 놓은 미역은 어떻게 해? 뭐가 저렇게 많이 불어나? 조금밖에 안 담갔는데 말이야"

"어떻게 하긴 담에 또 끓여 먹으면 되지"

우리 딸은 마른미역이 10배정도 불어나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참치 캔 하나를 따서 기름기는 버리고 냄비에 미역과 함께 다글다글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다 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기말고사라 1시를 넘긴 시간에 잠들었으면서 아침잠이 많은 딸아이 5시 30분에 알람시계 소리에 벌떡 일어나 국을 끓었던 것입니다. "아들! 미역국 어때?"

"뭐야? 참치 넣었어?"

"맛이 어떻냐구?"

"보기보단 맛있네."

"이거 누나가 새벽에 일어나 끓인 건데..."

"제법인데!"

믿음직스러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애교스럽고 친구 같은 중학교 1학년인 나의 딸,

두 녀석이 준비한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축하노래까지 불러주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주부들이 자신의 생일 밥을 차려먹는다는 게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친정엄마가 있으면 찾아 와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줬을 것인데 말입니다.

허긴, 친정엄마가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

“야야~ 내가 없더라도 생일은 챙겨먹어야 한다이~그래야 인복이 있는 거여~”

그래야 되는데 잘 되질 않습니다.

엄마!~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어집니다.



딸아이가 끓여 준 감동받고 눈물어린 참치미역국을 먹는 날이 되었습니다.

가족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딸아~ 너무 너무 고마워~


2007년 12월 7일



 

보통 주부들의 생일은 그냥 넘어가는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하기 싫어져 대충 넘어가 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친정 엄마가 살아계시거나 이렇게 시어머님이 챙겨주지 않으면 말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제게 그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 먹어야 해. 가족이 잊지 않도록 달력에 크게 표시 해 두고 말이야.’

친정엄마는 입버릇처럼 '생일은 꼭 챙겨 먹어~ 그래야 인복이 있는 거야." 하셨습니다.

젊은 세대가 아니기에 기억해야할 기념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우리세대에서는 특히 나 더 챙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살림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기에 말입니다.


오늘아침 딸아이를 깨우니
"엄마! 생추!"
"응?"
"생일 축하한다고..."
"고마워..."

여러분은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십니까?

아님, 그냥 넘어가 버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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