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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하늘에 부치는 편지

by 홈쿡쌤 2008.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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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부치는 편지



오빠!

며칠 전, 오빠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오빠가 떠나고 난 자리 너무 허전했어도 너무 착하게 잘 자라 고운 색시를 얻었답니다. 씩씩하게 식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에서 꼭 당신의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욱이가 오빠를 꼭 빼 닮았으니 말입니다. 많은 하객들 앞에 서서 싱글벙글 웃는 것을 보니 너무 흐뭇하였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주례선생님이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라고 하며 신랑은 신부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신부는 시어머님과 포옹을 시켰습니다. 올케의 그 웃음 뒤에 숨어있는 아픔으로 가슴이 너무 벅차 연신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아들 둘 키워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막내라고 오빠는 늘 내게 주려고만 했었지요.

"막내야~ 이리 와 봐!"

"오빠 왜?"

"이거~ 친구들이랑 영화도 보고 뭐 사 먹고 그래라."하며 용돈을 몰래 호주머니에 집어넣어 주기도 했었습니다. 70년대 여고생이었던 내겐 단비와 같은 용돈이었습니다. 산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아버지 마음에 든 맞선 본 아가씨와 두 말도 없이 결혼을 올리고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 온 병마로 인해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부모를 앞세우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신을 고향 앞산에 모시던 날은 어찌 그렇게 춥던지.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 나이 겨우 6살 5살,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더 많이 슬퍼하고 울었던 기억 생생합니다.


그래도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하던가요?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말도 있듯 서른넷에 혼자가 된 올케는 아들 둘을 씩씩하게 키워냈습니다. 보다 못한 큰오빠가

"제수씨! 좋은 사람 있으면 시집가세요."

"아닙니다."

"아이들은 제가 키우면 됩니다. 아들 둘 더 있다고 생각 하죠 뭐."

"그리고 녀석들 학비는 걱정 마세요."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올케였습니다.

친정 부모들 눈치가 보이기도 했었는데 올케의 부모님도

"그냥 아이 둘 잘 키워라. 네 복이 그것 밖에 안 되니..."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 요즘 세상이 그렇습니까. 멀쩡한 부부들도 이혼을 많이 하고, 낳기만 해 놓고 아이들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니 말입니다.


모두가 축하를 하고 조카는 신혼여행을 떠나고 예식장에서 얼굴만 보고 헤어지는 게 뭣하고 또 혼자 쓸쓸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북적북적 올케의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의 형제들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거실에는 음식이 하나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생선, 전, 돼지고기 수육, 홍어회, 묵, 식혜 등 시골 잔치 집 음식 그대로였습니다.

"뷔페에서 배 부르게 많이 먹었는데 이게 다 뭐야? 언니가 했어?"

"시골에서 숙모가 이렇게 음식을 많이 해 가지고 왔어."

"우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자 혼자 된 올케를 위해 준비 해 주신 숙모의 작은 마음, 아니 큰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음식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린 올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도 친정 식구들이 올케를 챙기는 마음은 어디다 비할 때 없다는 생각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숙모가 해 준다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말입니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놓고 당연 오빠이야기로 화제를 돌립니다.

"오늘 같은 날 김 서방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우리 김 서방 참 잘 생기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겨우 6살이었던 욱이가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 당신이 있었으면 더 행복했을 것인데 ...모두가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이제 장성한 아들이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올케도 걱정 하나를 덜었을 것입니다.

많았던 고난과 시름 내려놓고 올케의 앞날에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빠~

하늘에서도 우리의 웃음소리 들리시죠?

항상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오빠의 모습은 늙지 않는 멋진 젊은 청년입니다.

올케가 저 세상에 가면 꼭 손잡고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요.

평생 해바라기처럼 당신만 바라보고 살았기에 더 많이 사랑해 주셔야 해요.

그럴 수 있지?


당신이 많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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