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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불편할 것 같은 시어머님의 쪽머리

by 홈쿡쌤 2008.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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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것 같은 시어머님의 쪽머리
 


며칠 전, 시어머님이 아프신 다리를 이끌고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며느리의 생일을 보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해 주는 축하에 행복을 집안 가득 채웠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려고 준비를 하면서

“여보! 우리 온천 갔다가 시골로 모셔다 드릴까?”
“응 그러지 뭐.”

“어머님! 우리 온천장 한 번 가 봐요.”

“그럴까?”

“그럼 준비 할게요.”

비누 수건 등 목욕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시골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그렇게 멀지도 않은 곳입니다.


막 온천장 앞에 도착하니

“여 왔나? 난 몇 번 와 봤다.”

“누구랑 왔어요?”
“옆집 할망구들이랑 왔지. 차 보내 준다.”

“우린 처음인데 우와 우리 어머님 세련 되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붐벼 앉을 자리도 부족하였습니다.

눈치 빠르게 씻고 나가는 자리에 어머님을 얼른 앉혔습니다.

비누로 몸을 닦아내면서 자그마한 체구에 약한 어머님의 모습에서 그 많은 세월동안 6남매를 위해 헌신한 게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님의 몸을 이테리 타올로 씻기면서 앙상한 뼈와 아른아른한 살결에 제대로 씻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힘 조절을 어떻게 될지 몰라

“어머님 안 아프세요?”

“응 시원하다.”

“때도 없어요.”

“이제 됐다.” 하시면서 길게 늘어뜨린 쪽머리를 풀어헤칩니다.

“머리 감겨 드릴까요?”
“아니 됐다. 내가 할 게 너나 씻어.”

“네 어머님.”

가만히 머리 감는 모습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엎드려 씻자니 숨차하시고, 길이조차 긴데다 샴푸를 하고 빗으로 빗어 내리는데 얽혀있던 머리카락이 한 주먹 빠져나왔습니다. ‘그냥 짧은 머리를 하면 편리하고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짧은 머리가 손질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어머님에게

“어머님. 우리 미장원가서 머리 잘라요.”
“왜?”
“머리 감는 것 보니 너무 힘드신 것 같아서....”
“짧은 머리 파마도 해 봤다 아이가 근데 보기 싫어서 안 되것더라.”

“편하잖아요. 긴 머리 보다는...”

“그래도 싫어.”
“어머님 그럼 파마는 하지 말고 커트만 하시는 게 어때요?”
“아이쿠~ 싫다니까.”

완강히 거부하시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편함 감수해 가면서 까지 아무리 편리해도 변화를 하는 데는 쉽지 않나 봅니다.

“어머님, 그럼 린스를 바르고 난 뒤 빗질을 하세요. 그럼 쉽게 될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감아올리시며 비녀를 꼽았습니다.


비녀는 변절(變節)하지 않는 사랑과 정숙한 부녀자들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총각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거나 혼례 때 신랑이 신부에게 신물(信物)로 비녀를 주어 백년가약을 다짐했고, 신랑이 먼저 죽으면 관 속에 비녀를 넣었고 열녀문을 세울 때도 매죽잠을 받아 수절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쪽이 머리 위로 올라가면 상스러워 보인다고 머리숱이 적고 바쁘고 힘들어도 비녀로 쪽의 위치를 조정하여 품위와 마음가짐을 나타냈습니다.

비녀 끝의 뾰족함은 꽂을 때 잘 들어가기 위함이었지만 위기 시에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호신용으로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비녀는 그 안에 금지나 금욕의 의미까지 품고 사용되어 왔습니다.


현대화, 변화, 편리함만 쫓아가는 우리와는 다르게 습관 같지만 옛 모습 그대로 지니고 싶은 깊은 어머님의 마음 헤아리지 못한 며느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도 이별도 쉽고 빠르고 이혼율이 많은 것이 비녀가 사라져 머리 빗장이 없어지듯이 마음 빗장까지 없애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쉽게 변하는 마음, 변덕스러운 마음, 한 번 더 다잡게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편한대로 하세요. 
내년 생신때에는 금비녀 하나 사 드릴게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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