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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결혼식장에서 느낀 서울 쥐와 시골 쥐?

by 홈쿡쌤 2009.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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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느낀 서울 쥐와 시골 쥐?


토요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을 떨었습니다. 둘째 오빠의 외아들인 조카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시간 맞춰 가기 위해 지방에 사는 우리는 봉고차 하나를 빌려 4시간을 넘게 달려갔습니다. 길을 헤매지 않고 전국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이 있어 참 편리했습니다. 일찍 나선 덕분에 2시간의 여유가 있어 가까운 경복궁에 들러 남녘보다 더디게 찾아오는 봄을 느끼며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Wonderful Wedding

Convention Center

바삐 돌아가는 서울, 건물에 들어서자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예식을 앞둔 선남선녀의 연예인 같은 모습이 대형스크린으로 비쳤습니다.

“우와! 신랑 신부 너무 멋있다.”

물론 결혼식 하루만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일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대형 화환이 하나 가득하였습니다.

“요즘에도 화환을 보내고 그러나 보다.”
“그러게.”

시골 쥐가 서울에 올라와 부산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식장 안으로 들어서니 테이블 위에는 식사할 수 있도록 그릇들이 세팅되어있었습니다.

“언니! 식사를 하면서 결혼식을 하는 거야?”
“요즘은 다 그렇게 한다네.”

“그래?”

“신랑 부모님석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우린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12시가 되자 씩씩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조카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녀석 3살 때 돌봐주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오지 않는 바람에 고모인 내가 가서 1년을 넘게 봐 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땅한 직업을 얻지 못한 탓에 시골집에서 지내는 내가 할 수 없이 녀석을 돌보게 되었던 ... 오줌싸개, 코흘리게 녀석이 벌써 저렇게 자라 결혼을 하게 되니 남다른 감회가 몰려왔던 것입니다.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던 올케는 가끔 낙서처럼 써 두었던 나의 일기장을 보고 잡아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고모! 대학 가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 해 봐. 내가 첫 등록금은 내 줄게.”

그렇게 나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 준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식은 1부, 2부로 나누어 시작되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신부가 입장하고 어느 예식과 다름 없이 주례선생님의 좋은 말씀과 혼인서약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신부를 위한 신랑의 축가’도 이어졌습니다.

“요즘은 노래 못하면 장가도 못 가겠네.”

그렇게 1부 예식이 끝나자 음식이 배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가볍게 먹으면서 2부 피로연이 열렸습니다. 신랑 신부의 옷도 파티복으로 갈아입고 산뜻한 모습을 하고 케잌을 자르고 샴페인 러브 샷도 하며 분위기는 무르익어갔습니다. 양가의 부모님과 함께 신랑 신부는 각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사이 식탁에는 정해진 순서대로 음식이 나왔습니다.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모두가

“김치가 빠지니 안 먹은 것 같다.”
“난 밥이 없어서 그런데!”

모두가 한마디씩 합니다. 커피까지 한 잔 먹고 난 뒤 폐백실로 향하였습니다.


한복을 곱게 갈아입은 신랑신부는 가족들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사촌 형제들과 맞절을 올리고 폐백을 마치고 난 뒤, 막내 오빠가 한마디 합니다.

“사돈과는 인사도 안 시키나?”

“서울엔 다 그렇게 하나?”

“말씀을 하셨으면 인사 시켜 드렸을 텐데...”절을 돌보던 직원이 말을 합니다.

막내 오빠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사돈을 만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신랑 신부의 가족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는 게 예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에는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3시간을 사용할 수 있어 바쁘게 서둘지 않아도 되니 너무 여유로운 결혼식이었습니다. 조카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고 우리도 떠날 채비를 하였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이곳저곳 다 밀리는 차도에서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한산한 도로, 맑은 공기 마시며 사는 우리는 그저 복잡함이 낯설기만 하였습니다.

“오늘 먹은 점심값이 얼마인지 알아?”

“3만 원은 넘겠지?”

갓구운 빵 → 삼색소스로 맛을 낸 구운관자, 삶은전복과 새우 → 단호박 크림스프 → 계절 샐러드와 드레싱 → 양송이 소스로 맛을 낸 꽃등심 스테이크(호주산) → 잔치국수(1젓가락분량) → 신선한 계절과일(수박,파인애플,멜론1조각) → 커피 또는 차
기본이 38,000원에 음료수 술 따로 계산하고, 국수 한 그릇에 2,000원 추가하면 1인당 5만원 정도 나왔습니다. 축하객이 예식장을 가득 채우고 또 대형스크린으로 보면서 다른 룸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을 합쳐 약 400명이라고 가정할 때, 2천만 원이라는 돈이 들었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고모! 우리 집에서 이런 호사 누리며 하는 결혼식은 이제 처음이자 끝이야.”

다음달 4월 25일 결혼을 올릴 조카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식장은 수협을 빌려놓았고 거창한 스테이크가 아닌 소고기국밥이라고 하면서

“난 그 돈으로 살림에 보탠다.”

“그래, 맞아. 알뜰하게 살아야지.”

하나뿐인 아들결혼식과 아이 셋인 조카결혼식이 같을 수 있겠는가.

그저 형편대로 능력껏 하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니던가.

“저런 곳에서 결혼식을 하면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거야?”

“우리 거제에서도 호텔에서 하면 10만 원은 해야 한다고들 해.”

5만 원 식비에 축의금 5만 원....

“그 사람들은 남는 장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데 5만 원하면 되지 뭐 하려고 더 내?”


수다를 떨며 몇 시간을 달려오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우리 저녁은 얼큰한 것 먹으러 가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조카사위가

“고모부~ 진주 비빔밥 먹고 싶어요.”

“그래, 우리 김 서방이 먹고 싶다는 것 먹으러 가자.”

한 그릇에 6천원하는 비빔밥을 먹으며

“오늘 낮에 먹은 5만 원 짜리 보다 훨씬 낫네.”

밥과 김치 없이는 먹은 것 같지 않은 시골 쥐들이기에, 우리는 한 접시 15,000원 하는 가오리 회무침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음~ 맛있다. 우리 입맛엔 이런 음식이 딱이야.”모두가 공감하며 한바탕 웃었습니다.


스테이크와 비빔밥

우리가 바로 서울 쥐와 시골 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서울 쥐 흉내라도 내 보았으니 잠시나마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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