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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제 마음 알아주는 시누 '형님! 너무 고맙습니다.'

by 홈쿡쌤 2009.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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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시아버님의 제사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6남매 잘 키워내셨지만 손자들의 재롱 오래 보질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친정아버지를 여의고 난 뒤, 꼭 아버지처럼 대하고 응석 부렸던 셋째 며느리였습니다. 당신 아들, 34살의 늦은 결혼 때문이었는지 무척이나 저를 예뻐해 주셨고, 며느리의 직장생활로 손녀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신은 혼자 시골에 계시고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보내시며

"아가야! 너희 시어머님 모시고 가서 아이 키우거라!" 하셨던 분이십니다. 당신 끼니는 걱정 말라시며...

평소 국물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해 치우시는 반찬 투정 없으셨던 우리 아버님. 정성어린 제사상 하나 가득 차려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뒤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안으로 차고 들어오는 그리움으로 혼자 눈물을 훔쳤습니다.


시댁은 아직도 12시를 넘겨야 제사를 모십니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이 많은 탓에 중2가 된 아들 녀석이 정식으로 제사상 앞에 선 건 처음이었습니다. 마침 학원이 없는 날이라 데리고 가려고

“아들! 오늘 할아버지 제사인데 같이 가자.”

“알았어.”

아무 말 없이 따라나서는 아들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아버님은 4살이 된 아들의 재롱을 보고 잠시 그 고통을 잊기도 하셨습니다. 저렇게 많이 자란 아들 녀석을 아버님은 내려다보고 계셨을까요?


 상다리가 휠 정도의 음식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만은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아가시다 세상을 등졌기에 제 마음 더욱 아픈 것을....아버님 덕분으로 6남매의 가족과 우리 아이 둘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저번 주말에는 인천에 사는 동서네 가족이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미리 다녀갔습니다. 어머님과 함께 맛있는 점심도 사 먹고 시골로 가서 텃밭에 있는 시금치, 산나물, 도라지 등 제사에 올릴 나물을 준비해 두고 올라갔습니다.

“형님! 수고하세요.”

“그래. 잘 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인천으로 떠나고 우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엄마! 내 책상 위에 있는 이 돈은 무슨 돈이야?”
“돈? 돈이 어딨어?”
“여기 20만 원이나 되는데?”

“인천숙모가 두고 갔나 보다.”

“왜?”
“엄마 혼자 제사 준비해야 한다고....”

우리 집은 월 3만 원을 모아 이런 행사가 있을 때나 어머님에게 돈이 들어갈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늘 동서는

“어머님 모시고 계시면 반찬도 신경 쓰일 테고, 병원도 모시고 다니고,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공금으로 쓰는데 혼자 이럴 필요 없어.”

“형님, 제 맘이에요.”

이번엔 받지 않으려고 할 건 뻔하니 딸아이 방에서 자고 가면서 살짝 올려놓고 가버렸던 것입니다.


또,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 시골집은 텅 비어 먼지만 뽀얗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 밖에 없는 시누는 평일 날 내려오셔서

‘올케 혼자서 음식준비 다 해야 하는데 집이라도 말끔해야지’하시며 무려 4-5시간이나 청소를 하고 가셨다고 합니다. 냉장고까지 말끔히 정리해 두고 말입니다.


그런데 연가를 내고 혼자 제수 음식을 준비하는 날 위해 조금 일찍 달려오셨습니다. 세 시간을 넘게 전을 부치고 튀기고 앉아 있으니 다리도 저리고 힘에 겨웠습니다.

“야야~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노? 벌써 다 했네.”

“어머님이 경로당에 가지고 가야 하잖아요.”

“그래도 너무 많다.”
“이리저리 갈라 붙이면 또 얼마 안 됩니다.”

아직도 시골 인심이 살아있는 동네라 할머니들이 경로당에서 음식도 해 먹기도 하고, 집에서 가져온 걸 나눠 먹기도 합니다.

제사상을 보기 전에 혹시나 하여

“어머님! 경로당 음식 가져갈랍니까?”

“맨 날 얻어만 먹으면 되것나?” 가져가고 싶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야 더 만들면 되지만 경로당에 가져다주려면 이틀을 연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늘 믿고 의지하는 시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님! 제가 음식은 준비할 테니, 형님은 제사 뒷날 경로당에 음식 좀 가져다주시면 안 될까요?”

“응 그래 알았어. 내가 할게.”

형님도 집에 노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자유로운 보험회사에 다니기에 흔쾌히 그렇게 해 주마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오후 4시쯤에 도착해 나물 볶고 무치는 일, 집으로 찾아오시는 사촌들 음식대접까지 알아서 척척 다 해 주시기에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먹은  뒷설거지 그릇도 만만찮은데 고무장갑을 끼고 씻으려 하자

“저리 비켜, 내가 할게.” 하시며 쓱싹 말끔하게 정리해 주십니다.


몸이 좋지 않고, 맞벌이를 하고 며느리가 5명이나 되면서 가장 가까이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정이야 어쨌든 혼자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 내 마음 읽으신 삼촌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형수님, 우리도 이제 제수 음식 사서 합시다.”

“삼촌! 말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내 몸 조금 힘들어도 마음은 더 편합니다.”

아무리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긴 해도 아버님이 제게 주신 사랑을 알기에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고 작지만 정성은 들어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내 맘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찌 일이 즐겁지 않겠습니까?
특히, 씻어 둔 그릇까지 깔끔하게 닦아 찬장에 정리정돈까지 해 놓고 가셨을 형님이 계시니 말입니다.


형님!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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