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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삭막한 세상, '산불 합의금 2백만원'

by 홈쿡쌤 200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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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막한 세상, '산불 합의금 2백만원'


불어오는 바람조차 상쾌하게 해 주고 여기저기 봄꽃들이 피어나 온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멀리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 불났나 보다.”

겨우내 말랐던 마른 나뭇잎에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가는 건 순식간의 일일 것입니다.

애써 가꾼 살림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사라져버린다는 건 너무 아까운 일 아닐까요?

산불을 보면 2년 전, 시아버님 제사 때 우리 집 꼬마 녀석들이 불을 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는 불을 본 아들

“엄마! 나 2주년 기념 떡 안 해 줘?”
“뭐?”
“기억하고 있나 보네. 2백만 원 까먹은 녀석이.”

“사실은 삼촌이 샤브샤브 사 줬어”
시내로 데려갔던 인천삼촌이 아이들에게 사 준 모양이었습니다.
“뭐? 뭘 잘했다고.”

“벌어서 다 갚을게.”

“참나.”





산불의 원인으로 매년 1.1~3.31 3개월 동안의 산불발생을 보면, 예년보다 2008년도에는 논밭 두렁 태우기에 의한 산불발생은 감소했으나, 담뱃불 실화에 의한 산불은 급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논밭 두렁 태우기 실화는 25%(10년 평균)에서 17%(2008년도)로 감소했으나, 담뱃불 실화는 10%(10년 평균)에서 25%(2008년도)로 늘었다”고 통계수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아버님의 제사를 맞이하여 온 가족이 다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몸이 많이 아픈 큰 형님댁(대구)에 가 봐야 했기에

녀석들은 그냥 할머니와 집에 두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거창 휴게소에서 커피나 한잔 마실까 하고 내렸다가

남편의 핸드폰으로 요란한 소리가 우리를 너무 놀라게 하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머스마들이 산에 불을 냈다 어서 와~~"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삼촌이 모는 차 안에서도 내 마음은 벌써 내달리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뒷산을 보니, 검은 자국만 가득 남아있고,

헬기가 뜨고, 면 직원들이 나오고,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물을 나르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난 뒤였습니다.


고만고만 비슷한 조카들이 우리 아들 초 6, 인천조카 초 5, 김해조카 초 2

집 뒤에 있는 대나무밭으로 가, 활을 만들려고 대를 끊으려다 안 되니

인천조카가 부엌에 있는 성냥을 가져가서 불장난을 시작한 모양이었습니다.

우물가에서 두 번 정도 물을 떠 가는 모습을 본 고모할머니가 이상하여 뒤따라 가 보니

불은 벌써 살아서 바람결을 타고 대나무밭을 지나 남의 밤나무밭까지 번졌던 것입니다.

너무 놀라서 "불이야"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아들....

집에 남자들이 있었다면 쉽게 끌 수 있었는데 할머니들만 있었으니 불길도 잡질 못하였다 합니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여기며, 떨고 있는 아이들에겐 큰소리도 야단도 치지 못하고

인천삼촌이 시내로 데리고 나가버렸습니다. 할머니는 또 아이들 어떻게 될까 봐 자신이 뭘 태우다가 불을 냈다고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며칠 후, 실사를 나온 공무원에게 할머니가 아닌 손자들이 낸 불이라고 하니 벌금 없이 그냥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산주인과의 합의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웃에 할머니만 살고 아들(남편친구)은 시내에서 살면서 밤을 따서 파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손이 없어 밤도 줍지 않고 버려둔 산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계단을 만들고 화단 식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하더니 더 잘 됐네 훤하게 만들어 줬으니"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말도 듣지 않고  우리에게 3백만 원을 요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남편도 화가 나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만, 그래도 불을 낸 사람은 어쨌거나 우리 아이들이기에 2백만 원으로 확인증까지 쓰고  그 돈을 전하고 돌아 왔습니다.  (속으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면서..ㅎㅎㅎ)


이제 이웃 간의 정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상하였습니다. 친구도 돈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생으로 나간 돈 2백만 원도 아깝지만, 지금은 불탔던 나무에도 물이 올라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모습을 찾아가는 뒷산을 보며 남편은 한 마디 합니다.

“우리 돈 먹고 배불렀을까?”

“그냥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생각만 해요. 저 나무들에게...”


그저 이를 계기로 더 성숙한 아들로 자라줬으면 하는 맘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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