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을이의 작은일상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문어 모양내기

by 홈쿡쌤 2009. 4. 9.
728x90
반응형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문어 모양내기
 

얼마 전, 시아버님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노총각으로 지내다가 34살의 아들의 인연이라 그런지 셋째 며느리이지만 큰 사랑 받고 살아왔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한량이었습니다. 모시옷에 백구두 신으시고 궁터로 활 쏘려 다시셨던 자그마하시고 건강한 촌로였습니다.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져 본 적 없었는데, 막내아들의 권유로 종합검진을 받고 난 뒤,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흉선 암이었습니다. 평소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암 선고를 받고 난 뒤에는 쉬엄쉬엄 시들어 가는 꽃이었습니다. 말기였기에 약도 없다고 하셔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병원과 가까운 우리 집에서 몇 개월 지내시다가, 시골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 뒤로는 매일 매일 퇴근을 하고 아이 둘 어린이집에 가서데리고 아직 어린 아들은 앞에 안고 운전을 해 가며, 시댁과의 50분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려가 할아버지와 함께 얼굴 맞대고 놀아 주었습니다.그 고통 속에서도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시간만큼은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 몸은 피곤하지만, 아마 오래 견디지 못하시고 우리와 영원한 이별이 찾아올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받은 그 사랑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점점 세월이 흐르자,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쉬셔야 했고,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주무시는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그렇게 앓으신 지 1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쉽게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49제까지 집에서 모시다가 마지막 날(49제)은 사찰에서 공양을 올리며 보내드렸습니다. 매일 저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지어 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자박자박 걷는 아들 녀석이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은 음식을 잡아당겨 한바탕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일까요?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 하는 아들입니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잔술을 붓고 얌전하게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는 중2가 된 손자의 모습을 보고 대견해하셨을 것입니다.


제사 음식은 정성이라고 했습니다.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밤을 치고 마른 문어에 문양을 냅니다. 항상 하는 것이라 그런지 남편은 가위로 정교하게 모양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우와! 당신 정말 손재주 좋다!”

“맘대로 안 되네.”

“뭐. 예쁘기만 하구먼.”

“아버지는 더 잘하셨어.”

“당신 손재주 아버님을 닮았나 보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습니다. 이런 날이라도 아버님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는 게 참 행복한 것 같습니다.


요리조리 변해가는 문어의 모양새 한번 보실래요?


▶ 문어를 2등분으로 나눠 문양을 내야 합니다. 같은 크기로 여러 번 가위질을 해 줍니다.

▶ 여러번 자른 것을 길게 한 모양이 되게 해 줍니다.

▶ 양쪽으로 똑 같은 모양을 냅니다.



▶ 손으로 모양이 나게 펴 줍니다.



▶ 완성 된 문어

생문어를 삶아서도 올리고 마른 문어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사상에 마른 문어를 올리는 것은 문어처럼 자손들의 삶도 평탄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시중에 파는 오려놓은 문어도 많지만 꼭 이렇게 손으로 만들어 내는 건 정성 때문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