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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시어머님께 기저귀를 채우지 않는 이유

by 홈쿡쌤 2009.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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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께 기저귀를 채우지 않는 이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가을은 ‘찰나의 계절’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정말 잠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계절 같아서 말입니다.  어느 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시는 시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모셔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알츠하이머 초기증상을 보이는 시어머님은 몇 번 짐을 쌌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어디 가시게요?”
“응. 우리 집에 가야지.”

“시골 가 봐야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어쩌시려구요.”
“그래도 가고 싶다.”

“...............”

그저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자꾸 움직여야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아침 일찍 머리감기고 세수시켜놓고는

“어머님! 속옷 갈아입으세요.” 하면서 옷가지를 앞에 놓고 아침밥을 준비하러 나갔습니다. 대충 부엌일을 정리해두고 방으로 들어와 어머님이 벗어놓은 옷을 세탁기에 넣기 위해 확인을 해 보니 팬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어머님이 입은 옷을 확인하니 팬티는 벗지도 않고 그 위에 옷을 입었던 것. 깜빡깜빡 정신없는 행동을 하시고, 당신 혼자서 밥도 차려 먹지 못해 남편이 들어와 점심을 챙겨 드리고 나가고,  겨우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게 전부인데 그래도 오랬동안 머물렀던 시골집이 그리우신가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엄마! 큰일 났어.”
“왜?”
“할머니가 옷에 오줌 쌌어.”
“어쩌냐? 우리 딸이 할머니 옷 좀 갈아입혀야겠다.”

“알았어.”

“샤워기로 대충 씻기고 입혀.”

“응”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중3인 딸아이, 녀석이 어릴 때 할머니의 돌봄 받았기에 되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자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딸아이는 할머니가 적셔놓은 옷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을 받아 통에 담가두었더군요. 가족들 저녁을 해 먹이고 시어머님이 화장실을 가시기에 얼른 달려가 옷을 올려 드리는데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님! 기저귀 언제 찼어요?”
“응. 00이가 아까 해 주더라.”

“네.”

알고 보니 딸아이가 옷을 갈아입히면서 채워주었던 것입니다. 아직 누워 있기만 한 게 아니어서 기저귀를 채운다는 게 싫어 사 놓기만 하고 장롱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걸 딸아이가 채웠나 봅니다.

"입고 있을까?"
"아니, 이젠 됐습니다."

시어머님이 자주 실수를 해도 기저귀를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친정엄마가 몸이 안 좋아 우리 집에 와 계실 때가 생각나서입니다.


친정엄마는 워낙 깔끔한 성격이고 자존심 강한 분이라 꼭 혼자서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화장실 가는 길에 옷에 다 싸버려도 말입니다.

“엄마! 기저귀 차자.”
“싫타.”

단 한마디뿐이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옷을 갈아입히고 하다

“엄마! 이러면 내가 힘들잖아! 집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

나도 몰래 엄마한테 짜증을 내 버렸습니다.

“오냐. 알았다. 그럼 요강을 하나 사 온나.”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가더니 의료기 상사에 가서 병원에서 받아내는 통을 하나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 뒤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앉아서 볼일을 보곤 했습니다. 그것도 몇 번 사용하지 않고 기저귀를 차야 하는 상황까지 오더니 이틀을 꼼짝없이 누워만 계시다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마음에 너무 걸렸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고 말입니다. 당신이 싫어했던 행동이라 어머님께 기저귀 채우는 일을 잠시 미뤄왔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채워 놓았던 것입니다.


학원 갔다가 들어오는 딸아이에게

“할머니 기저귀 왜 채웠어?”
“엄마는 왜 사 놓고 사용하지도 않고 그래?”
“................”
사람이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아직 감각이 살아있고, 그 마음 어떤 것인지 헤아리기에 내 몸 조금 힘들어도 기저귀를 채우지 않는다는 말을 하자

“엄마 힘들잖아!”

“손빨래하는 것도 아니고, 세탁기 돌리면 돼!”

“그래도 애벌빨래는 하잖아!"
"엄마 하나도 힘 안 들어."
"알았어.”

그리고는 할머니가 조금 더 움직이지 못하실 때 채우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직은 화장실 가는 길이 오래 걸려도 빨리 옷을 내리지 못해 오줌 몇 방울이 옷에 떨어져도, 어머님 혼자 힘으로 해 낼 수 있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어머님! 건강하세요.

아니, 더 나빠지지만 말고 지금처럼만 머물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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