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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

by 홈쿡쌤 2010.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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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


'긴 병에 효자 없다' 라는 말에 백배 천배 공감 가는 하루였습니다. 혼자 시골에서 지내시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시어머님을 모셔온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력도 떨어지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 걸 보니 처량하기 한량없습니다. 깡촌에서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서당 문앞에도 가지 못하였고 가난한 남편을 만나 6남매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살아왔건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병뿐인 모습을 보니 불쌍하기만 합니다.

처음 모시고 올 때에는 제법 밥 한 공기 뚝딱 비워치울 땐 걱정도 안 되더니, 이젠 밥 반공기도 넘기는 걸 어려워하시니 가끔은 죽을 끓여 드리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가 건강보험적용을 받기 위해 등급판정 신청을 해 두고 담당자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더 총명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계산도 척척 해내는 것을 보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오늘은 너무 총명하십니다."
"다른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돌아가신 지 40년이 넘은 엄마 아버지를 찾기도 하고 또 10년을 훌쩍 넘긴 남편도 찾곤 합니다."
"그래요?"
소변은 얼른 가지 못하니 실수해 기저귀를 차고 있고 대변은 가끔 손으로 빼낼 때도 있었습니다.  발걸음도 못하시면서 시골 가야 된다며 나섰다가 실종신고까지 낸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정상참작이 되었던지 3등급으로 확정되어 증서가 날아왔습니다.

어제는 또 하루종일 전쟁을 치렀습니다. 시어머님은 아들만 보이지 않으면 찾습니다. 그리고 아들 앞에서 하는 행동과 며느리인 내 앞에서 하는 행동, 말이 틀립니다. 그래서 더 기가 찰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당신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 주니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해."
"무시해 버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시어머님께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제는 정말 집에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혼쭐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야야! 밤 주워놓았나?"
"밤 뭐하시게요?"
"제사에 써야제."
"네."
수건을 머리에 두르시며
"일하러 가자."
"무슨일을 하신다고 이러세요."
"밭에 나가 봐야지. 감자밭에도 가 봐야하고."
".............."
몇번을 나갔다 들어왔다 씨름을 하다가 쇼핑백 하나를 들고 들어오시더니 서랍 속에 있는 옷을 주워넣기 시작합니다.
"어머님, 옷을 왜 쌉니까."
"우리 집에 가서 입어야지."
"집이 어디 있습니까. 불이 나서 아무것도 없는데."
"새집 깨끗이 지어놓았더라. 어제 거기서 자고 왔다 아이가."
"................"
짐을 다 꾸리도록 놔두고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습니다. 베란다에 늘려있던 빨래를 걷어들이며,
"어머님! 빨래 접어 주세요."
짝도 맞지 않지만 양말을 접고 앉아서 손놀림을 하십니다. 

저녁을 먹고 한숨 주무시고 1시가 넘어서 일어나시더니 형광등 불을 환히 켭니다.
"어머님! 주무셔야죠. 새벽입니다."
"오늘이 그믐이라서 불 끄면 안 돼!"
"..............."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오지 않아, '무슨 일이 있기에 전화도 없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불을 켜두면 잠을 자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지도 모르겠습니다.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어머님 좀 어떻게 해 봐!"
눈치 빠른 남편은

"알았어. 금방 갈게."
그리고 뚝 하고 끊어버렸습니다.
갱년기가 찾아와서 그런지 생리도 빠지고 가끔 열이 달아오르고 식은땀도 흘리며 혼자 이겨내고 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일까지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나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쏟아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편도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이러면 우리가 힘들어."
"................"
아들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시는 어머님이십니다.
"그만해. 어머님한테 왜 그래?"
"내일 당장 요양원으로 보낼게."
"당신한테 서운해서 그러지. 늦으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하면 좋잖아!"
"그래 알았어. 미안해."

아침에 일어나서도 뽀로통하여 상냥한 말이 서로에게 나오지 않습니다.
"짐싸주라. 데려갈게."
"요양원은 아무곳이나 보내나? 여기저기 알아봐야지."
"나도 그런것쯤은 안다. 다른말 하지 말고 짐이나 싸 줘."
"어머님 짐 어제 다 싸 놓았어. 들고 가면 돼."

싸늘한 말 한마디 남기고 별 할 일도 없으면서 개학준비 해야 된다고 하며 출근을 해 버렸습니다. 그날 따라 내리쬐는 햇살 속에, 불어오는 바람 속에 봄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겨울은 어떻게 털어내야할 지 무거운 어깨에 짐을 가득 싣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부모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흉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주었고, 온 가족이 다 같이 마음 헤아려주는 게 최고라는 걸 알게 해 주었습니다. 아직 영원한 내리사랑 받기만 하고 드리지 못하였는데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아 어머님께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어머님이 사고치지 않고 가만히 집에만 계신다면 밥 해 드리고 빨래하고 씻기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밖에 나섰다가 길을 잃기라도, 또한 다치게 될까 봐 그게 더 걱정입니다. 요양원 생활이 당신도 싫지만 매일같이 시간 맞춰 들어와 점심을 차려주는 효자인 당신 셋째아들이 더 못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다 압니다.  나의 생각없이 뱉은 말 한마디로 여태 고생한 것 한 방에 날아가지 않았나 심히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먼저 나서지 않겠습니다. 남편과 형제들이 마음의 결정 내리는 대로 따라 갈 뿐입니다. 어머님께 스트레스 받는 것 보면 나보다 당신이 먼저 지칠 것 같아 보일때 많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사는 동안만이라도 건강했음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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