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추억 속 첫사랑만큼이나 빛바랜 무인역
얼마 전, 남편과 함께 텅 빈 친정에 쌀을 찧어오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그냥 가지 말고 고개 넘어 이모 집에 가 볼까?"
"이모도 안 계시는데 뭐하러?"
엄마 대신 이모라고 가끔 들러 이모를 보고 오곤 했었는데 이모도 세상 떠난 지 제법 되는데 가 보자고 합니다.
"그러지 뭐."
친정집처럼 텅 비어 있고 다 쓰러져가는 이모 집이었습니다.
잠시, 예뻐 해 주던 이모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 남편은 지금은 무인역이 되어버린 역에 차를 세웁니다.
"여긴 왜?"
"저번에 당신 첫사랑을 만났던 곳이라고 했잖아!"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그럼. 난 그런 풋풋한 첫사랑도 없는데 부러워서."
".........."
잠시 내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간이역은 너무 조용하였습니다.
그 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붐볐었는데 말입니다.
1977년 이맘때쯤이었을까?
큰오빠 집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주말이면 늘 부모님께서 계신 고향을 찾아오곤 했었습니다. 완행버스로 1시간 거리를 엄마가 보고 싶어 주말만 기다리곤 했으니까요.
들판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고,
호박도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늘 버스만 타고 고향을 오가다가 오랜만에 기차가 타고 싶었습니다.
빨간 완행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자가용 있는 집은 잘 사는 부잣집뿐이었으니 기차역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평촌역은 내게 첫사랑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고시절, 조잘조잘 낙엽 뒹구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었던 꿈 많았던 시절 난생처음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기차 속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우연히 만나 나의 첫사랑을 소개받았습니다.
차창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뽀얀 메밀꽃을 봅니다.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리는 흰 안개꽃처럼 온 밭에 소금을 뿌린 듯한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런 때.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난 여학교 때 내 가슴속에 품었던 첫사랑을 조용히 떠올려 봅니다. 저렇게 무리지어 가득한 메밀꽃이 필 무렵 큰오빠네에서 공부하던 여고 시절 주말을 맞아 시골 부모님께 들렸다 가 되돌아가면서 한 번도 타지 못했던 기차를 친구와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버스만 이용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타게 된 기차 안에서 중학교 동기인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어!~ 야!~ 오랜만이다. 얼마 만이야?"
"응..그래.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지?"
"그런 것 같애. 아 참!~ 내 친구야 인사해..시내 사는 친구인데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올라가는 길이야"
"어~~~응!~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우와!~ 굵직한 목소리!~~'
나의 첫사랑은 도시에서 자라서인지 뽀오얀 피부에 여자처럼 빨갛고 도톰한 입술을 가졌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검은 눈썹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때는 교복을 입고 다녔던 때라 어디 다니는 줄은 다 알고 있었으며,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아름다운 사연 담아서 수 없이 오갔던 편지들....글은 나의 마음을 전 할 수 있었고 첫사랑인 너의 마음을 받을 수 있었고,서로를 알아가면서 그리워하기도, 보고 싶어 하기도 하면서 사랑인지도 모른 체 감정 키워 갔었습니다.
가끔 만나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같은 생각에서 까르르 웃기도 하며,
네가 있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내가 있어 고와 보이는 세상,
따뜻하게 손잡아 본 게 전부이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던 첫사랑.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즐겨 불렸고, 기계를 다루는 사람과는 달리 시를 좋아하고 감성적이었던 사람. 아름다운 사랑 키워 가다가 나의 첫사랑도 사회에 첫발을 내 딛고 저도 먼 곳으로 발령을 받다 보니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런 이별도 없이 아무런 기약도 없이 그렇게 멀어져 버린 사이...나이어린 사랑이라 풋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진정한 인연이 아니었을까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래요'
누군가 말처럼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니 이렇게 메밀꽃 필 무렵이면 내 가슴속에 애잔하게 남아 일렁이는 이유는 영원한 이별을 하지 않은 탓일까요?
남편은 가끔 놀려 대기도 합니다.
"당신 첫사랑 궁금하지 않아?"
"몰라!"
슬쩍 넘겨 버리며 외면하곤 합니다. 누구나 가슴에 품고 사는 첫사랑, 낡은 사진첩 속에 숨어 있는 옛 추억, 이 가을에는 들추어내어 보고픈 마음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답니다.
지금은 무인역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니 제 첫사랑만큼이나 빛바래있었습니다. 행운이었는지 내 눈앞에서 금방 사라지는 기차는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데 충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첫사랑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공감가는 이야기였다면 아래 추천을 살짝 눌러주세요.
로그인 하지 않아도 가능하답니다.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들면 구독+해 주세요
728x90
반응형
'노을이의 작은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 먹먹했던 한 마디 '내 며느리 사랑한데이~' (55) | 2010.10.27 |
---|---|
몸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생활 속 비결 (62) | 2010.10.25 |
황당하면서 재미있는 아들의 문자 (77) | 2010.10.20 |
맛있는 것 사 달라고 하는 넉살 좋은 아이 (57) | 2010.10.18 |
용서할 수 있는 남자와 용서 할 수 없는 남자 (60) | 2010.10.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