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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하루 세 번 울었어도 행복했던 사연

by 홈쿡쌤 201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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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생일, 기념일을 얼마나 챙기며 살아가시나요?

어제는 음력 10월 27일 50번째의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무엇에 쫓겨 살아가는 지 나 자신의 생일조차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 챙기고 부산하게 움직여 출근하였습니다.

책상 앞에 앉으니 딩동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들어옵니다.

‘뭐지?’하고 열어보니

“고객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건강하세요.”

가입했던 곳, 물건을 샀던 이곳저곳에서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주민등록상 12월 3일이기에 ‘양력으로 축하해 주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동료가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빨리 와!”

“왜?”

“아무튼, 어서 와 봐!”

생크림 케이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 생일 축하 합니다.~”

갑자기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 오늘 무슨 날이야?”

“자기 생일이잖아!”

“............”
“미역국도 못 먹은 거야?”

“고마워.”

“아저씨, 너무 했다. 아이들이야 시험기간이니 그렇다 치고.”

‘밥도 해 주지 마라.’

‘내년에 미역국도 끓여 주지 마라.’

‘쫓아내라.’

‘한 달 전부터 생일이라고 알려야지.’

모두가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곁에 있는 달력을 집어 들고 날짜를 따져보니 생일이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제자리로 떠나고 나니 문득,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가족도 서운했지만 나 스스로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생 헛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흐르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으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 생일 축하해!”

“몰라.”

“사실, 내일인 줄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이모가 메시지 보내주었어. 엄마 미안해. 음력이라 헷갈렸어.”

“됐어.”

“엄마 사랑해요.”

잠시 후, 핸드폰에 불이라도 난 듯 뽕뽕~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이건 또 뭐야?’하면서 확인을 하니 딸아이 반 친구들이었습니다. 놀란 딸아이가 목소리 높여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는 후배의 딸이 같은 반이라 나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 먼저 보내자 너도나도 보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딸아이의 반 친구들이 보낸 축하 동영상이었습니다. 또 한 번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딸아이의 원망스러운 전화를 받고 남편의 메시지도 날아왔습니다.

'생일 축하노래와 아림이 어머님! 건강하세요.!"
우렁찬 함성이 귀가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구형 핸드폰으로 받은 것이라 화질이 많이 떨어집니다.






오후가 되자 정상적인 기분으로 돌아왔습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으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꽃 배달 왔어요.”

“네? 누가 보냈어요?”
“00씨가 보냈습니다.”

나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였습니다.

통화를 하다 서운한 마음을 알게 되어 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보냈던 것입니다.

“야! 뭐 하러 이런 걸 보내냐?”
“남편이 보냈다고 해.”

“그래 고마워. 네가 오늘 나의 기를 팍팍 살려주는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누가 보냈어요?”
“후한이 두려워 보냈나 봐. 쫓겨나기 싫어서.”
“너무 예쁘다.”


사실, "선물 주고 밥이나 한 끼 하려고 했는데 오늘 너의 기분은 밥보다 꽃바구니가 더 나을 것 같다."고 하면서 보내준 것 입니다. 친구의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 또 한 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정엄마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으로 16살에 시집을 와 6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어릴 때 보면 엄마는 자식에게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엄마의 마음은 다 그랬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잡곡밥에 미역국 끓여 윗목에 차려놓고 칠성님이나 삼시랑(아이를 점지해준 상상적인 토속신)께 건강과 장래를 기원했습니다.

"엄마! 밥을 왜 그렇게 많이 담아?”

“수북하게 담아야 복 많이 받고 운수대통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상을 차려 놓고 두 손을 모으시며

"그저 건강하고 잘 되게 해 주이소"

두 손 싹싹 비비며 소원하였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나니 생일만 되면 농사지은 잡곡과 나물을 준비해 와서 생일상을 차려주곤 하였습니다.

“애미야! 만약 내가 죽거든 미역국은 꼭 끓여 묵어라이.”

“에이~ 내 생일날 내가 미역국을 끓이라고?”

“그럼. 그래야 한다.”
“왜?”
“그래야 가족들도 챙겨주게 되는 거야.”

“알았어. 꼭 그럴게.”

엄마의 말은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 스스로 잊어버린 날이었으니 엄마 생각이 간절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어머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서른넷인 아들과 서른셋인 며느리의 늦은 결혼이었기에 그 사랑은 감사할 정도로 받고 지냈습니다. 며느리 직장생활 편안하게 하라고 하시며 우리 아이 둘을 키워주셨고 생일만 되면 집으로 와 축하해 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생활하시다 2010년 2월 치매가 심해져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생일은 항상 외고 있어 당일에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오늘 00이 생일이야. 전화라도 해!”

“네. 어머님.”

멀리 떨어져 지내는 형제애를 돈독하게 해 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의 부재로 그냥 넘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늘 의지하며 살았었는데 말입니다. 오늘따라 어머님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전화라도 한 통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가족들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엄마. 죄송해요. 내년엔 꼭 미역국 끓여 드릴게요.”

축하노래를 듣고 맛있는 케이크를 나눠 먹으니 배부른 저녁이었고,

하루 세 번 울었어도 아주아주 행복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엔 달력에도 빨간 동그라미를 아주 크게 그려놓고,
한 달 전부터 생일이니 선물 달라고 외치고 다니렵니다.
맨 먼저 가족들의 축하를 받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여러분도 축하해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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