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두 부모님이 더 보고픈 날이 됩니다. 내 나이 마흔일곱, 시집을 가 아이 둘 낳고 길러보니 부모마음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버이날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땅덩이 하나 없이 맨 몸으로 남의 집 머슴살이를 살아야했던 아버지....당신이 못 배웠기에 육남매 자식들은 어떻게라도 공부시켜야 한다며 소 장사 까지 하며 아이들 뒷바라지 했던 아버지....
그렇게 장돌뱅이로 나가고 나면 농사일, 집안일은 혼자서 돌봐야만 했던 어머니...
자식위한 삶을 사시다 돌아가셨기에 제 마음이 더욱 아픈 것 같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오빠 4명에 바로 위에 여자가 태어나서 그런지 유독 이 막내보다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언니가 있습니다. 항상 나보다 똑똑하고 부모말씀 잘 들었기에 그 사랑 독차지 하는 줄도 모르고 그 때에는 미워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늘 속으로는 ‘엄만 나만 미워해’ 하는 피해 의식으로 ‘언니 콤플렉스’를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친구가 좋아 학교 갔다 오면 가방 던져놓고 밖으로만 나돌았던 나, 오빠들을 기다리다 그냥 혼자서 커다란 고목이었던 포구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열심히 따 먹었습니다. 입이 새까맣게 되도록 따 먹고 내려오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져 떨어지며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쇠로 된 물받이 판자에 오른팔목이 파고들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 엄마~”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나의 목소리에 놀라 뛰어 온 엄마, 빨리 내려 주실 생각은 않고
“너, 너~ 또 머슴애처럼... 어디 혼나 봐라.” 하는 게 아닌가?
“엄마아~”
잠시 후, 나를 안아 내려놓고는 하시던 일 하러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오빠들처럼 장난스러운 것을 닮은 막내가 못마땅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날 손목은 조금 찢어져 피가 스며 나오고, 늦은 오후가 되어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자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찬장 안에 있는 농약병을 겁 없게 집어 들었습니다.
‘맨 날 나만 미워하니, 이거 먹고 내가 없어지면 모두 좋아하겠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도로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내겐 죽을 용기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잠이 들었습니다. 잠결에 손목이 따가워 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눈을 뜨고 가만히 바라보니 엄마는 된장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아이쿠 우리 막내 이렇게 많이 다친 줄 엄마는 몰랐어. 얼마나 아팠을꼬.”
어린마음에 엄마의 손길 속에는 따스한 사랑이 전해 옴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장난도 치지 않고 조신한 막내딸이 되어갔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했었다면 얼마나 큰 상처를 부모들에게 안겨줬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 듭니다. 자식 먼저 앞세운 부모는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는 말도 있는데....
부모는 모든 걸 다 내어주는 나무 같습니다. 그저 자식위하는 그 마음 반만이라도 닮고픈 날이 됩니다. 어제는 꽃가게가 너무 북적였습니다.
“몇 송이 드릴까요?”
“하나만 두세요.”
바로 내 앞의 사람은 네 송이를 사 가는 걸 보니 양쪽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신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부럽던지. 모두가 카네이션을 사고 화분을 사는데 난 시어머님 꽃 하나만 샀습니다. 시골 다녀오라는 말에 남편은
"일요일 갔다 왔잖아~"
"그래도 아이들 학교 안가잖아요."
"알았어."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남편과 단기방학을 한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시댁으로 보냈습니다. 얼굴이라도 뵙고 오라고 말입니다. 혼자서 쓸쓸히 앉아 계실 시어머님이시기에...
큰 효도 바라지 않을 것 입니다. 자식들에게 그렇게 다 내어주고도 해 준 게 하나도 없다시는 어머님이십니다. 손자 손녀까지 마당으로 들어서면 환하게 웃음 짓는 어머님이 눈에 선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과 헌신’ 바로 이런 게 우리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에게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 마음을 쏟아내느라 자주 부모님을 잊고 삽니다. 우리를 한없이 기다려 주시던 부모님처럼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들을 늘 미루어놓고 삽니다. 더 늦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부모님께 효도하십시오. 부모님을 잃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후회하며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늦은 시간이라도 친정 부모님의 산소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허공이지만
“엄마~”
“아부지~” 하고 불러보고 싶은.....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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