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시집가는 '사연 많은 피아노'
며칠 전, 시어머님의 생신으로 지리산을 놀려갔을 때 초등학생을 둔 막내동서가 내게 묻습니다.
"형님! 정말 피아노 가져가도 돼요?"
"벌써 부터 가져가라고 했잖아 아주버님이..."
"근데 00이 아빠가 말을 안 듣네요."
"우리 집 수리 할 건데 가져가라."
말을 그렇게 해 놓고 있었는데 막내 삼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형수님~ 정말 피아노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형님이 가져가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형수님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도 괜찮아요. 아이들도 동의했구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는데 어제는 "형수님! 피아노 옮겨 줄 사람이 갈 겁니다. 집에 계실 거죠?"라고 합니다. 조금 있으니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무거워 보이는 피아노를 운반 카에 간단하게 실어 버리더니 사연 많은 피아노를 가져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가 나가고 난 뒤, 뽀얗게 앉은 먼지를 닦아내면서 마음은 십여 년전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십여 년을 넘게 있었던 피아노는 새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아주버님이 한참 주식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여유 돈이 있으면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형님만 믿고 매월 조금씩 모은 적금 탄 것 5백만 원을 덜렁 송금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잘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가져 간 돈은 깡통계좌가 되었고 아예 돈 받을 생각은 포기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형제간에 돈거래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예사롭게 들은 탓이겠지요. 마음은 상했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그렇게 속만 섞이며 몇 년을 지냈습니다. 늦게야 그 사실을 안 형님께서 동생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돌려줘야한다고 하시면서
"동서, 미안해. 이자는 없어 그냥 원금만 보냈으니 확인해 봐."
"............................"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지 못하고 마음 상해했던 저를 무안하게 만드는 형님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지 나지 않아 형님 집 거실에 보물처럼 버티고 앉아있던 피아노를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딸은 다 켰잖아. 이자를 하나도 못 챙겨 줘서 너무 미안해" 하시면서....
사실 원금이라도 받은 게 너무 고마운 심정이었는데 말입니다.
뒤에 형님 집을 찾았을 때에는 피아노가 앉았던 자리에는 커다란 화분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형님이 애지중지 아끼시던 피아노가 떠난 빈자리를 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내 마음 같았을까? 청소를 하면서 딸아이 방을 들어서니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 자리가 텅 비어있으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컴퓨터에서 악보를 빼내 가끔 건반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딸에게
"피아노 없으니 서운하지 않아?"
"저야 가끔이고 동생들은 지금 갖고 싶어 하는 것이잖아~"
"아이쿠~ 대견한 우리 딸."
"엄마는~~"
중학교 2학년의 딸아이는 제 마음보다 훌쩍 자라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 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욕심 버리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해 주는 남편이야 동생에게는 없어서 못주고 있으면 다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
"형님! 00이 생일 선물로 보내신 거라 했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그 한마디에 정말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좋아한다니 다행이네. 연습 많이 시켜~"
"고맙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가면 텅 빈자리도 잊히지 않을까요?
우린 망각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8월입니다.
행복한 새 달 맞이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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