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살아 숨쉬는 '과일 경매 현장'
며칠 전, 아침 8시쯤, 농산물공판장에 수박이나 하나 살까 싶어 들어갔더니 마침 트럭에서 막 내린 과일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과일 사는 것도 잊고 발걸음을 옮기니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경매사의 걸쭉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같은 톤으로 계속되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과일 위에는 낙찰 받은 사람의 번호와 가격표가 붙어졌습니다.
내려진 과일에 20여명의 중도매인들이 무리를 지어 함께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낙찰 받은 물건을 도매로 넘기거나 자신이 점포를 차려 직접 판매하는 이들 손에는 전자계산기처럼 생긴 무선단말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경매사가 경매물건을 소개하면 단말기 숫자판을 재빨리 두들겨 자신의 응찰가격을 알리는 것입니다.
중도매인들이 써낸 가격은 곧바로 경매사 앞에 놓여 있는 노트북 PC 화면에 뜹니다. 경매사는 이중 가장 높은 가격에 '엔터' 버튼을 누르고 마이크로 이 사실을 알려줍니다. 경매가 성립된 것입니다. 이 낙찰 정보(출하자, 생산지, 차량번호, 품질, 수량, 중량)는 리얼타임으로 경매사 뒤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과 농협공판장 홈페이지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중도매인들은 현장에서 어느 상품이 얼마에 누구한테 낙찰 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경매차가 트럭 1대분을 경매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초 안팎으로 팔을 높이 쳐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던 종전의 수지(手指)식 경매에 비해 30% 가량 소요시간이 단축됐다고 합니다. 경매에 소요되는 인력도 수지식이 4명인데 비해 전자경매는 2~3명이면 된다고 합니다.
그냥 사람 손에 맡겨두어도 여름이면 수박 먹고 겨울이면 김치 먹는데 정부는 무엇 때문에 막대한 투자비를 들여가며 전자경매를 도입했을까? 그건 시장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2004년부터 실시 된 전자경매 도입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합니다. 중도매인과 경매사들이 전통 적인 수지식 경매를 옹호하며 반대하고 나섰고 그 이유는 거래가 유리처럼 투명해져 떡고물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떡고물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
경매사는 수십 명의 중도매인이 동시에 손가락을 움직여 표시하는 가격정보를 보고 경락(낙찰)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 경매사가 최고가격을 제시한 중도매인에게만 낙찰을 해주면 아무런 탈이 없습니다. 문제는 미리 짜거나 평소 절친한 중도매인이 낙찰 받도록 해준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100만원 받을 것을 88만원에 주고 차액 12만원은 나중에 둘이서 적당히 나눠 갖는 것입니다.
이런 피해는 생산자(농민)와 상인 소비자가 다 입습니다. 농민은 늘 자 신이 내놓은 물건이 싸게 경매돼 손해를 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고 세력이 약한 중도매인은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지 못 해 불만이었습니다.
피해를 보기는 소비자도 마찬가지. 부정하게 낙찰 받은 중도매인들 이 가격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비싸게 소매상에 넘기는 통에 소매상인 들은 가격 정보가 전혀 없는 가운데 그냥 부르는 대로 받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도입된 전자경매의 힘은 컸고, 당장 경매사와 중도매인의 장난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중도매인들이 제시한 가격은 경매사 앞에 놓인 PC 화면에 높은 순서대로 떠 있기 때문에 단돈 10원이라도 낮게 제시한 곳에 물건이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 경매하는 모습
▶ 과일을 따라 움직이며 마음에 들 때 단말기를 재빨리 누릅니다.
▶ 무선단말기
▶ 낙찰 된 과일은 번호와 가격을 붙여 놓습니다.
정당한 거래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현장을 본 것 같아 너무 흐뭇하였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경매를 하시는 모습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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