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크리스마스와 엄마

 

  어렸을 때 종교를 떠나 교회 다니던 시절, 그때는 지금보다 참 많이도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마솥에 소죽 끓이고 난 뒤 만들어 주는 군고구마와 동치미가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 빈 논에서 오징어 놀이, 고무 줄 뛰기, 패차기, 구슬치기, 딱지치기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시골마을에 교회 하나가 들어섰습니다. 보수적인 유교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는 꽉 막힌 동네이기에 교회에 다니는 분들을 예수쟁이라고 놀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지 않은 신자들이었지만, 대학생들이 방학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내려와 성경학교를 열곤 했습니다. 여름방학엔 동네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고, 겨울에는 12월 25일,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성극으로 하루가 즐거웠고, 나눠주는 빵과 사탕 등을 먹으면서 늦은 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성장을 하면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또 엄마가 불교를 믿기에 교회와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몇 십년을 절에 다니며 신앙을 키워 오신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막내야! 나 이제 교회 나갈란다.”

“아니 왜?”
“너희 오빠들이 다 교회 다니잖아.”

“엄마가 종교를 왜 바꿔? 바꾸려면 오빠들이 바꿔야지!”
“머리 다 큰 녀석들이 내 말 듣겠어?”
“그래도 말이라도 해 봐야지.”

“괜히 집안 불난 일으키지 말고, 엄마는 윗동네에 있는 교회 나갈란다.”

한 집에 두 종교를 가지면 안 된다는 엄마의 단호한 마음을 읽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요? 엄마는 새벽기도까지 다니며 자식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며 신앙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자정이 지나면 여러 명 창호지를 바른 희미한 촛불을 들고 교회에서 교인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 서서 목청을 높여 찬양을 불렀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그리고는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외치며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 때는 왜 그리 추웠는지 아무리 껴입어도 추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는 지경까지라 해도 즐거운 맘으로 찾아가서 찬송가를 부르면 엄마는 새벽 3-4시라도 주무시지도 않고 축복하러 온 분들을 위해 환한 웃음으로 떡국을 끓여 대접해 주셨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도 없었고 간단하게 성탄 등과 종이로 만든 별 모양의 장식들이었습니다. 지금 그 때를 기억하는 것은 오직 그리움뿐입니다. 꿈 많던 어린 시절 우리를 설렘으로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했습니다. 온 교회가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만한 나이의 자녀들을 키우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오히려 그 때의 감격은 어디로 사라지고, 성탄의 의미마저 잊고 사는 내가 되어 있습니다. 사라진 크리스마스이브의 추억, 성탄일의 감동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단지 성탄일이 단순한 휴일로 전락해 버린 오늘의 현실이 조금 마음 아플 뿐입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주는 사탕에 눈이 멀어 다니긴 했어도 더 큰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주었고, 친구들과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당신 한 몸 희생해 가며 육 남매 훌륭히 키워내신 엄마 생각 간절해지는 날이 됩니다.

 어느 집이나 활짝 열린 대문이었고 찾아가면 누구나 반겨주었는데, 요즘에는 내 가까이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 체 현관문을 꼭 잠그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더욱....많이도 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은 늘 나를 행복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합니다.

우리 아이들 또한 중학생이 되면서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기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딸아이가

“엄마! 나 어릴 때 양말 속에 선물 넣어 줬어?”
“당연하지.”

“근데 왜 생각이 하나도 안 나지?”

“기억력 좋은 우리 딸이 왜 그럴까?”

“엄마! 나 사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유치원 때 다 알았어.”

“어? 진짜?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주시는데 자세히 보니 원장선생님이잖아!”

눈썰미 좋은 우리 딸이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5살 때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참나!”

그래도 아이들 어릴 때에는 착한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으로 트리도 만들고 그랬었는데 이제 그것도 사라진지 오래 된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저녁에는 작은 케이크 하나 사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추억을 이야기 하며 따뜻한 정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추억 없으십니까?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에게 선물할 시곗줄을 사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에게 줄 머리빗을 사고…
오 헨리가 쓴, 가난하지만 행복한 어느 젊은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습니다. 날씨도 날씨지만 여느 해보다 마음이 더 추워지는 요즘, 이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도 속속들이 스몄으면 좋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