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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혼자 식사하시는 시어머님의 모습보니 눈물이...

by 홈쿡쌤 200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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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연한 봄인 것 같습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순풍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몸이 안 좋아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한 달을 넘기고 나니

“야야! 집에 갈란다.”

“아직 멀었어요. 시골엔 추워요.”
“닭 모이도 걱정되고 내가 이래 있어선 안 돼!”

“혼자 지낼 수 있겠어요?”
“있어 봐야지.”

“조금 더 따뜻해지면 가시지.”

“있어 보고 안 되면 전화할게.”

“그러세요. 어머님.”

집으로 모셔 드릴 생각으로 어머님과 함께 목욕탕을 다녀왔습니다.

옷가지를 챙기고 얼려두었던 곰탕도 꺼내었습니다. 시골을 향하면서 어머님이 드실 수 있도록 반찬을 해 드리고 와야겠기에 시장을 봐 도착하니 텅 빈 집이라 그런지 썰렁했습니다. 잠그고 갔던 열쇠도 풀고 방문을 열고 따뜻하게 보일러부터 올렸습니다. 앉은 먼지 털어내고 뚝딱뚝딱 맑은 도마 소리 내며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팔순을 넘기고 오직 자식 위해 살아오신 삶이기에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데 밥이나 제대로 챙겨드실까? 전자렌지도 없는데 한약은 또 어떻게 데워 드시지? 빨래, 설거지, 이것저것 걱정되지 않는 게 없었습니다. 정말 제일 걱정되는 게 가스였습니다. 우리 집에 계실 때에도 수도꼭지 털어놓고 전등을 Rm지 않고 나와 버리는 바람에 따라다니며 잠그고 끄곤 했는데 말입니다.


그날 저녁 남편 친구들과 계모임이 있어 어머님 혼자 저녁상을 차려드리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잘 챙겨드시고 안녕히 계세요.”

“오냐. 알았다. 도착하면 전화해.”

“네. 그럴게요. 나오시지 마세요.”

“잘 가거라.”

“..............”

혼자 저녁상 앞에 앉은 모습을 보니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6남매 혼신의 힘을 다해 키웠건만  쓸쓸하면서도 시골에서 살아가려고 하니 참 기분이 묘하였습니다. 친구가 있고 내 집이 좋다는 어머님이시지만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건강하시면 또 모를까.

“어머님, 몸 안 좋으면 바로 연락하시면 모시러 올게요.”

“알았다니까. 어서 가 늦겠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매일 같이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는 아들 녀석이

“엄마! 할머니 언제와?”
“모르지. 모시러 갈까? 하고 여쭤 봐.”

“할머니, 혼자 있으니 좋다고 하는데?”

“그래?”

아직은 견딜 만 하신 가 봅니다. 차라리 곁에 두고 지켜보는 게 더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아이처럼 하나하나 챙겨 드려야 하고 반찬까지 신경 쓰려면 많이 불편합니다. 모시고 있을 때는 방학이라 여유도 있었고, 신학기면 바빠 더 신경써드릴 수 없을 것 같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시어머님 이제 혼자 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 드리는 게 진정한 효인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끓여 먹으며 친구들과 지낸다고는 하는데 조금만 몸이 안 좋으면 곡기를 입에 넣지 않는 분이라 더욱 걱정됩니다. 감기가 찾아와도 입맛이 뚝 떨어져 밥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시는 어머님이기에 말입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아들 집에서 온 종일 멍하니 보내는 것도 고역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 주에는 꽃샘추위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또 시골을 다녀와야겠습니다. 혼자 두고 와야 할지 모시고 와야 할지 갈등이 생깁니다. 당신 뜻에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내리사랑 주며 사셨기에 이젠 치사랑 받으며 사셔야죠.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머물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마음 편안하게 해 드리고 자주 전화 해 안부를 묻고 가족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큰 효도임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물질적인 것 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관심이 더 필요로 하는 게 어머님이신 것 같습니다.  

영원히 우리곁에 있어 줄 부모님 아니기에 모두 모두 효도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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