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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나보다 시집 잘 간사람 있으면 나와 봐!

by *저녁노을* 200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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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시집 잘 간사람 있으면 나와 봐!
 

얼마 전, 큰오빠의 아들인 조카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늘 아버지 같은 오빠이기에 그 빈자리는 허전하기만 했었습니다. 4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당신 아이 3명보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늘 바빴기에 우리 형제들은 속 울음을 울어야만 했습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만이 또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조차 희미하게 사라지지만 이렇게 좋은 날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 꿀떡같았습니다.


  폐백까지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뷔페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하 호호 웃음 흘리고 있을 때 막 결혼한 조카 앞에서 막내 올케가 한마디 합니다.

“요즘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님이 잘 해야 해. 아주 성심성의를 다해서!”

“아니, 며느리는 며느리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인데 왜 어른이 정성을 쏟아야 돼?”

“고모! 그래야, 우리 아들한테 잘해 주기 때문이라우~”

“참나. 난 그렇게 못 한다.”

아들만 둘인 위에 언니가 기분 나쁘다는 투로 한마디 던집니다.

“며느리한테 정성 쏟아야 해요.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처럼.”

“...........”

우린 그저 듣고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막내 오빠와는 저 멀리 떨어져 앉아 있어

“언니! 오빠 좀 안 챙겨?”

“알아서 잘해요.”

듣고만 있던 오빠가 하는 말,

“난 이제 1번 아니야.”

“오빠는 이제 3번입니다.”

“그럼 1번은 누구야?”

“1번은 우리 딸, 2번은 아들, 3번은 남편”

“허걱! 뭐가 그래? 나이 들수록 남편이 최고지. 그러면 안 돼.”

“시누한테 혼나야겠다.”

“우리 고모들 얼마나 착한데. 난 행복한 사람이야.”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올케는 500여 명이 모인 교인들 앞에서

“이 세상에서 나보다 시집 잘 간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요즘 며느리들 시자 달린 사람들 스트레스가 많은가봐. 근데 난 없으니 말이야.”


첫째, 너무 자상한 남편

 여섯 살 차이나는  막내 오빠는 어릴 때 나를 많이 업어 주었습니다. 성격이 여성스러워서 섬세하고 차분해 엄마가 없으면 언니 보다 오빠가 부엌일을 더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자취생활을 해 봐서 살림도 곧잘 하시는 분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아버지가 공부를 시켜주었고 시골에 빤한 살림이라 대학은 꿈도 못 꾸는 시절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오빠는 혼자 힘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들어가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별을 달고 싶어도 인맥이 없어 진급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등학교 임용시험을 쳐서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지금은 전과까지 해 국어선생님을 하다 교감이 된 노력파십니다. 올케는 딸 부잣집 큰딸이지만 일이라고는 잘 모른 채 직장생활만 했었습니다. 처음 시집올 때는 아궁이에 불을 지퍼 밥을 해야 하는데, 의욕만 앞세워 불 지피는 일도 만만찮은 것이라며 눈물만 흘리며 뒤로 엉덩이를 빼고 도망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같이 맞벌이를 하면서 퇴근이 빠른 오빠가 집 앞 시장에 들러 먹을거리도 사오고, 요리 못하는 올케를 하나하나 가르쳐 지금은 그 누구보다 알뜰한 살림꾼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둘째, 언제나 내리사랑만 주시는 시부모님

 ‘시’자 달린 ‘시금치’도 먹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어른들 잘 만나 편안하게 지냈고, 사실 아이들이 자라서 객지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니 종교문제가 제일 큰 관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친정 엄마는 한동안 고민을 하시더니 수십 년을 믿어왔던 불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선택하신 분입니다.

“한 집에서 종교가 둘이면 복을 못 받는거여~”

하시면서 매일 새벽기도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만 자라서 시골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시댁에 와서도 늘 설거지 담당이었습니다. 명절 때에도 엄마는 며느리들 일을 시키는 것보다 시집 못 가고 있던 노처녀였던 막내인 나를 다 시켰습니다.

“언니들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왔잖아!”

“난 뭐 놀고 있나?”

입이 툭 튀어나와 말대꾸하기도 하였습니다. 며느리에 대한 배려였겠지요. 언제나 물러준 재산하나 없고 스스로 일어서야만 하게 한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것입니다.


셋째, 말썽부리는 시동생이 없고, 싸움 붙이고 얄밉게 구는 시누들도 없다.

  바닷가에 사는 오빠 집을 여름방학이면 휴가도 즐길 겸 가끔 들리곤 했습니다. 밖에서 일하고 집안일을 미뤄 두었던 싱크대 기름때도 닦아내며 청소도 해 주고 밑반찬 몇 가지도 해 놓고오곤 했습니다. 그게 올케한테는 큰 고마움이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시댁 식구들한테 스트레스 하나 없으니 정말 행복하고, 얼마나 시집을 잘 갔는지 모른다는 말로 그 많은 사람 앞에 서서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명절날 모여도 고스톱을 치지도, 술판을 벌이지 않고 조용조용 앉아서 이야기만 나누는 별말이 없는 가족들에게 막내올케의 상냥한 성격과 수다는 늘 우리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옛날에는 그저 부모님께 드리기만 했던 게 효도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효도는

“ 부자자효 父慈子孝”

부모(父母)는 자녀(子女)에게 자애(慈愛)로워야 하고, 자녀(子女)는 부모(父母)에게 효성(孝誠)스러워야 함을 이르는 말.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고 자식은 부모님을 효도로서 받들라.


일방통행이 아닌 주고받는 게 사랑인가 봅니다.


오늘 같은 어버이날이면 당신이 남기고 간 체취로 몸살을 앓습니다. 울긋불긋 카네이션 꽃송이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코끝이 찡합니다. 그저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 있어 줄 것 같았는데 기다려 주지 않고 떠나셨기에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직 자식을 위한 당신의 희생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는 줄 압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시집 잘 왔다고 말하는 올케를 보니 흐뭇하기도 합니다. 떠나신지 십년이 넘은 지금도 며느리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엄마 아버지로 남아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내일은 나란히 누워계신 부모님 산소를 다녀와야겠습니다.


허공에 외쳐보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엄마~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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