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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시어머님의 생일잔치와 시누

by 홈쿡쌤 2009.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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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의 생일잔치와 시누
 

음력 6월 25일 광복절날은 시어머님의 83번째 생신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건강이 허락하여 계곡 팬션에서 1박을 하곤 했는데 올해는 앉아계시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다 보니 밖에서 생신을 한다는 게 좀 어려워 보였다. 6남매 곱게 키워내신다고 당신 몸 아끼지 않고 쏟아 부었기에 어디 한 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신 시어머님. 아직 정신은 있어 아들 집도 싫다고 하셔 작은어머님의 동생인 사돈이 시골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계신다.


며칠 전부터 생신상을 차려야 하는데 며느리가 5명이나 되지만 모두가 사정이 있어 참석조차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 혼자 해야 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였다. 방학이라 즐겁게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하필 14일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날 경기도까지 출장을 가야만 했다. 언제나 나의 지원자인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고모!”
“왜? 무슨 일 있나?”
“아니, 14일 날 출장인데 가지 말까요?”
“그럼 안 되지. 직장생활 하면서 그런데 빠지면 안돼!”
“음식은 어떻게 하구요? 늦은 12시나 도착할 건데.”

“걱정하지 마. 내가 일 마치고 가서 도울게 함께 하면 되지 뭐.”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갔다 와. 누나가 돕고 나도 도와줄게.”
“어디서 할래? 시골로 갈까?”

“그냥 우리 집에서 준비할래요.”

“그래라 그럼.”하고 전화를 끊었다.

햇살이 살갗을 뚫고 들어올 것 같은 무더운 13일 날, 혼자서 시장에 나가 이것저것 상에 올릴 음식들을 사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물김치를 담고 나니 하루해가 훌쩍 흘러가 버렸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30분, 바쁘게 손놀림을 하며 혼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전거리도 꺼내 준비해 두고, 나물거리도 씻어 삶아 놓고 나니 시누이와 막내삼촌이 도착하셨다.

“일찍 왔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어요.”

“내가 할게. 저리 비켜.”

프라이팬에 올려놓으려던 풋고추 전을 빼앗아 굽기 시작하신다. 지켜보던 남편도 누나 옆에 앉아 명태살, 산적에 밀가루를 묻혀 넘겨준다. 생선도 굽고, 나물도 무치고 볶고, 불고기도 재워두고, 미역국도 물만 부으면 되도록 해 놓고, 잡채 만들 당면도 물에 불려두었다. 척척 일도 잘하는 시누이 덕분에 마친 시간은 2시 30분, 3시간 만에 뚝딱 준비가 끝났다.


시골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그래서 서둘러 일어나 준비해 둔 음식들을 싸들고 새벽을 가르며 달려갔다. 며칠 전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고 간 가장 효자 아들인 인천 시동생 가족들이 들어섰다. 생신상이 차려지고 손자들의 축하노래를 부르고 참석하지 못한 외손녀의 금일봉투를 비롯하여 선물이 쏟아지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고 흐뭇하신 어머님. 가까이 사시는 작은어머님, 사촌 형제들을 부르고 이웃 할머니들까지 불러 아침밥을 나눠 먹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집이 떠들썩 제법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고 웃음이 담을 타고 넘나들었다. 한차례 홍수처럼 사람들을 보내고 난 뒤, 어머님이 늘 놀러다니시는 노인정에 준비한 음식과 과일을 담아 가져다 드렸다. 어머님이 시간 보내기 좋고, 외로움 달래기 좋다고 하시며 자주 가는 곳이기에.


모두가 일은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다 했다 아이가!” 어르신들의 칭찬도 혼자 받아 쑥스러웠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네가 했지. 우리 동생 쫓겨날까봐 내가 와서 일했다.”

“하하하하. 형님도 참네.”

그렇게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힘은 들었지만, 형님 덕분에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하루였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리며,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세요.

요즘 며느리들, 시금치의 '시'자만 들어도 머리에 쥐가 난다고 하는데, 나를 도와주는 시누가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가.

“형님!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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