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간의 갈등 없애주는 고단수 남편
부부의 연은 따로 있는 걸까요? 서른넷, 서른셋 노총각 노처녀로 맞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우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무엇에 끌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당신은 뭐가 맘에 들었어?”하고 물으니 그냥 피식 웃으며
“그냥 순하고 착해보였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결혼 안 할 것처럼 그러더니 어지간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네.’하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어려운 세상 잘 헤쳐나갈 것 같았고,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뽀얀 치아를 보니 건강해 보여 쉽게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을 해 딸 중 3, 아들 중 2 아이 둘을 낳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남편은 6남매 중 넷째입니다. 자랄 때 워낙 말없이 고집불통이었다고 시어머님이 전합니다. 그저 다른 형제들은 시어머님의 말이라면 거절 없이 틀린 말이라도‘예 예’하는데, 어머님 앞에 입바른 소리 잘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남편뿐입니다. “엄마! 자식 공부 왜 시켰어? 그런 건 나한테 물어봐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시던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보름이 다 되어갑니다. 오직 자식 위한 삶을 살았기에 당신 몸 어느 한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십니다. 겨우 화장실에 혼자 다니시는 게 전부인 83세의 기운 없는 노모입니다.
어제는 늦게 들어온 남편이 냉장고에 있는 유산균을 하나 꺼내 오더니 누워 계시는 어머님께 숟가락으로 떠먹이십니다.
“여보! 저녁에 엄마 한 개 드셨어.”
“그래도 주니 입을 벌리는데!”
“그럼 앉아서 드시게 해. 먹일 때에는.”
“뭐 어떻겠어.”
모두가 잠자리에 들고 시간이 흘러 고요한 어둠만 내려앉는 하루는 깊어만 갔습니다.
새벽 1시, 이상하게 새벽녘에 잠이 깨어 일어나 어머님이 주무시는 곳으로 가보니 불은 환히 켜져 있고 양말도 신고 주무시는 분이 속옷 바람으로 앉아 계시고 TV 소리까지 크게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님! 잠이 안 오세요?”
“소리가 다 들리더나?”
“아뇨. 그냥 깼어요. 근데 이게 무슨 냄새죠?”
금방 우유를 토한 것 같은 역한 냄새가 온 방을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냄새가 나제? 내가 토했다.”
“그럼 깨우지 그러셨어요.”
“내가 치운다고 치웠는데.”
가만히 보니 베개 이불까지 다 젖어 버려 새로 갈아야 될 것 같아
“어머님! 작은방에 애비 옆에 가서 주무세요. 제가 치울게요.”
아무 말 없이 작은방으로 향하십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뛰어옵니다.
“무슨 일이야?”
“응. 별것 아니야. 어머님이 토하셨나 봐.”
“내가 저녁에 당신 말을 안 들어서 그렇나? 저리 비켜. 당신 비위 약하잖아.”
이불을 걷어내고 함께 새 이불을 깔았습니다. 이런 소동 속에서도 아들 녀석은 잘도 자고 있었습니다. 대충 정리를 하고 나니 남편이 들어가 자라고 하는 바람에 떠밀려 딸아이 곁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보니 남편은 어머님이 벗어놓은 옷가지, 훔쳤던 수건, 이불 등 애벌손질을 다 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쳐다보니 이물질이 하나 둘 보여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될 것 같아 손빨래를 했습니다.
잠에서 깬 남편이 밖으로 나오면서
“세탁기 돌리지 손빨래를 해?”
“그냥.”
“나보고 하라고 하지 뭐 하러 힘들게 손빨래를 하냐?”
“일찍 일어난 김에 해 버렸어.”
우리 아이들 키울 때에도 큰 실례를 하면 얼른 냄새나는 기저귀를 대신 갈아주고, 녀석들이 남긴 음식은 늘 남편이 먹었습니다. 어쩌다 찬밥이 남아 식탁 위에 있으면 당신 밥이라고 퍼 놓은 그릇을 내게 밀어주고 찬밥을 자기 앞으로 당겨 신김치 국물 쓱쓱 비벼 맛있게 먹는 남편입니다. 그게 모두 날 위한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무리 그래도 고부간의 갈등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그런 갈등은 없습니다. 남편의 고단수 술수 때문에 쉽게 넘어가 버립니다. 이번 일에도 남편은 어머님을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합니다.
“엄마! 무슨 일이 있으면 손자나 며느리 아니면 나를 불러. 이제 엄마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자식들 놔두고 엄마가 왜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남편은 엄마를 몰아세웁니다. 곁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로 말입니다.
추석을 보내려고 시장을 봐 온 것을 내려놓았을 때도 하나하나 검사하듯 뒤지고 있으니
“엄마! 이러면 어떤 며느리가 좋아하겠어?”
“아니, 너무 그러지 마. 어머님이 보시고 빠진 것 없이 잘 사 왔나 봐야 할 것 아냐.”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속으로는 남편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였습니다.
“같이 살 며느리 아무도 없어.”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럴 때마다
“당신, 엄마한테 왜 그래? 좀 다정다감하게 말할 수 없어?”
언젠가 한 번은 “당신은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행복하잖아. 난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도 없어.”
“아이쿠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엄마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시면 병원으로 모시고 달려가고 조금만 불편해하셔도 잘 챙겨주는 효자 남편입니다. 유독 내 앞에서만은 어머님을 홀대하는 것도 압니다. 대신 당신보다 내가 어머님을 안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압니다.
자식들 키운다고 당신의 모든 것 다 내어주었으니 받기만 해도 될 터인데도 자존심 강한 시어머님은 어설프게라도 혼자 힘으로 하고 싶은 그 심정도 헤아립니다. 이제 10년 20년을 살 어머님도 아니기에 당신을 낳아 길러 제게 보내 주신 어머님 잘 모시겠습니다. 영원한 내리사랑으로 당신에게 쏟은 그 정성 절반도 돌려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당신 어머님이 곧 내 어머님이니까.
남편은 친정엄마가 아픈 몸으로 우리 집에 와 계실 때 나보다 더 엄마를 위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반짝 몸이 괜찮아졌을 때 엄마가
“야야! 집에 갈란다. 다 나은 것 같아.”
“네 장모님 제가 모시고 갈게요.”
시골까지 따라가 일주일을 함께 자고 출퇴근을 하더군요. 장모 곁에서 잠을 자는 사위는 당신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는데 그 사랑 받아 보지도 못하고 다시 몸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부딪치기 싫어도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게 가족입니다. 아마 가족이라는 멍에 속에 우리를 가두고 너무 편안하고 막역한 사이이기에 서로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어머님께 그러지 않아도 당신 마음 헤아릴 수 있으니 이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나는 매일매일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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