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지식을 낳아 기르면서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두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키웠을 것입니다. 시어머님 연세 83세, 6남매 번듯하게 키워내셨기에 어디 한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신 이빨 빠진 호랑이입니다. 여태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다 더는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안 될 정도라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남편은 넷째입니다. 평소 가장 가까이 살아서 무슨 일만 있으면 남편이 달려가 해결하곤 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시어머님은 몸이 허락하는 한 친구가 있고 텃밭이 있는 시골이 좋다고 하시며 자식들에게 기대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내리사랑으로 다 내어주고 남은 건, 기운 없는 몸 하나뿐입니다. 의지할 곳 없기에 이제 자식들에게 기댈 만도 한데
“내가 어쩌다 이래 됐는지 모르겠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시어머님 모시는 일이 힘들지 않는 이유
첫째, 간섭하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 가진 시어머님
평소 몸이 아프지 않을 때에도 ‘내가 뭘 아노? 너그들이 알아서 해라.’하시는 호인이십니다. 고집은 있으신 분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격입니다. 어제도 어머님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밖으로 내 보내고 욕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문고리를 잡고 비누로 닦고 있는데 남편의 큰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어머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다.”
“문이 잠겨서 못 나온다고 저런다.”
“하이쿠! 우리 어머님 며느리 갇혀서 못 나올까봐 걱정되셨나 보네.”
안에서 문고리를 잡고 청소를 하는데 열릴 리가 있겠는가.
또 얼마 전에는
“야야! 니가 고생이 많다.” 하시면서 호주머니에 있는 오만 원을 꺼내 주십니다.
“네. 어머님!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넣는 척 하면서 다시 어머님 호주머니에 넣어드렸습니다.
둘째, 시동생과 동서
요즘에는 은행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 인터넷 뱅킹을 하다보니 통장 찍어볼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입금된 게 없나 확인할 일이 있어 은행에 갔더니 통장을 바꿔야 될 정도로 장수가 넘어가 있었습니다. 월 빠져나가는 돈이 왜 이렇게 많지?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누구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밑 인천 사는 동서였습니다. 우리 집에는 형제들이 월 3만 원씩 제 통장으로 입금됩니다. 그 돈으로 어머님 생신 제사 명절도 보내고 있습니다. 추석때인가? 동서와 통화를 하면서
“형님! 늘 고생하시는데 돈 조금 보낼게요.”
“아니야 삼촌이 보내왔어! 안 그래도 돼.”
“그건 그거고 제 마음이에요.”
“너희 부부는 왜 재무관리를 따로 하면서 돈을 쓰냐? 절대 보내지 마. 알았지”
“가까이 살면 우리 집에도 모시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아무나 하면 어때.”
그렇게 흘려 넘겼는데, 따로 작은 돈이 아닌 50만 원을 보냈던 것입니다. 효자 아들인 삼촌 또한 40만 원을 보냈는데도 말입니다. 삼촌이야 아들이니 효자라고 소문났지만, 돈이 문제가 아닌 늘 마음씀씀이기 고운 동서입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부모 눈에 밟힌다는 막내아들, 엄마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집을 나갔을 때도 한걸음에 달려오는 삼촌입니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 둘은 저녁마다 전화를 합니다.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응. 밥 묵었다. 너거는?”
“우리도 먹었어요.”
“할머니! 뭐하세요?”
“TV 안 보나.”
오랫동안 통화는 못하지만 안부를 물어주는 귀여운 녀석들입니다.
셋째, 고명딸인 시누이
속상할 때 고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상의하게 되는 남편 바로 위 누나입니다.
토요일에는 시댁 집안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니 집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들! 아빠가 청소기 밀었어?”
“아니, 고모가 청소했어.”
“그래?”
엄마를 뵈러 결혼식장에 가기 전에 들렀던 것입니다.
“엄마! 고모가 김치냉장고에 오리고기 들었다고 하더라.”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큰 조개 몇 마리도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시어머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 놓고 가셨던 것.
넷째, 우리 아들과 딸
시어머님은 한 걸음 떼어 놓기가 힘겨워 보일 때가 잦습니다. 식탁에 앉을 때도 밥을 많이 흘려 앞치마를 꼭 합니다. 딸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 앞치마를 해 주고 의자를 밀어 넣어줍니다. 할머니 심심하다며 화투놀이도 가끔 해 주기도 합니다. 며칠 전, 호주머니에서 돈 정리를 하시던 어머님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만날 날 돌보느라 고생이 많다.”하시며 오만 원을 녀석들에게 줍니다. 딸아이는 받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아들 녀석은
“할매!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주노?”그러더니 만 원 한 장만 가지고
“이건 할매 가지고 있어야지.” 하면서 할머니 호주머니에 도로 넣어주는 게 아닌가.
어느새 나보다 키를 훌쩍 넘기면서 속 깊은 녀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누이와 통화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00이가 학교 갔다 오더니 할머니 옆에 앉아 고시랑고시랑 이야기도 잘하고 누나 방 서랍도 정리하는 것 보고 놀랬다.”
“그러게요. 마냥 어리게만 봤는데 어른이 다 되었어요.”
“야! 00이 대학 등록금은 내가 책임진다. 어딜 가던지.”
“형님! 정말이죠? 두 말하기 없기."
”알았어. 공부나 열심히 잘 해라고 그래.“
“네. 고맙습니다.”
정말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놓고 둘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자식들 모두가 부모님을 향한 그 마음 한결같기에 어려움 모르고 지낼 수 있는 것 같고, 고생하는 것 다 알아주고 한마음이 되는 걸 느낄 때 힘겨움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자식을 위해서 다 내어주신 그 사랑 받았기에 이제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것뿐입니다. 모시는 일에 큰아들 작은아들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또한, 이렇게 마음 써 주는 형제들이 있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계신 동안만이라도 편안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고모! 삼촌! 동서!
없어서 못 주고 있으면 나누려고 하는 우리는 가족이기에 그 마음 다 헤아립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내 맘 알아줘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세요.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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