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원한 내리사랑'
휴일 날, 일주일 내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지내셔야 했던 83세의 시어머님. 바쁜 아침 가족들 한 숟가락 먹고 나면 각자의 일터로, 학교로 나가고 나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죽은 듯 가만히 누워계시니 얼마나 갑갑하실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어머님! 우리 바람 쐬러 갈까요?"
"아무 데나 가자. 내 따라갈게."
싫다고 한마디도 안 하시는 것 보면 그 마음 알 것 같았습니다.
무작정 손을 잡고 나오긴 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니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어딜 구경한다는 건 생각도 못하겠고
"여보! 우리 어머님 절에 모시고 갈까?"
"아 맞네. 그긴 걷지 않아도 되겠네."
"어머님 월경사 한 번 가 볼까요?"
"응 그러자."
법당 앞에까지 차로 갈 수 있어 평소 늘 다니시던 절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일요일 늦은 오후라 절을 관리하는 사람뿐 신도들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쿠! 보살님 나오셨어요?"
"네."
"요즘 도통 보이시지 않더니."
"몸이 좀 안 좋습니다."
"......."
"야야! 불전에 놓을 돈 좀 챙겨가야지."
"네. 그럴게요."
한발자국씩 내딛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저 멀리 보이는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문 앞에서 두 손 모으고 꾸벅 세 번 허리를 굽히는 어머님을 보니 뒤로 넘어질 것 같아 걱정되었습니다.
인자하신 미소로 내려다보고 계시는 부처님을 향해 어머님은 다소곳이 절을 올립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걸음도 못 걸으시면서 그저 자식들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에 '재수있게 해 주이소'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이리저리 2층 3층 부처님 앞에서는 강한 어머님이 아닌 그저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가져간 돈을 다 놓고 난 뒤
"어머님 이제 돈이 없어요."
그러자 꼼지 꼼지 손수건에 싸 두었던 만 원짜리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언제 가져오셨어요?"
".............."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무릎을 꾸부리고 엎드려 절을 할 뿐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 지 모를 정도로. 또 한 번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어머님의 영원한 내리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 내려놓고 마음 편안하게 지내셔도 되는 데 말입니다.
“야야! 여기 어디 우리 아이들 이름 있나 봐라.”
“어머님! 여기 있네요.”
월 1만원을 주고 부처님 곁에 촛불을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자 성질 급한 남편이 엄마를 덥석 등에 업고 나옵니다. 처음엔 엉거주춤 자세가 바르지 못한 건 떨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어머님이었습니다.
“당신, 엄마 업어본 적 있어?”
“아니,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오늘 효자 노릇 제대로 하네.”
“어머님! 아들 등에 업히니 좋으시죠?”
“오냐. 좋네.”
아주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 한 그릇 먹고 약도 드시지 않고 꼼짝없이 주무시는 걸 보니 어지간히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자식들은 이제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을 만큼 키워주셨으니 그 마음 다 헤아립니다. 그저 당신 건강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실 수 있잖습니까. 하루하루 쇠약해 가시는 모습 뵈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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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머님 모습이죠.
잘 보고 갑니다.
답글
시어머님께 참 잘하시네요..
그런 노을님의 마음이 아름다워요..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답글
장한 며느리상 이런 상 받아야겠습니다.
답글
쇠약해져가는 시어머님을
보고계신 노을님의 걱정이 헤아려집니다
답글
마음이 숙연해지네요.
부모님의 사랑을 늦게 알게 되는게 우리네 삶인가 봅니다.
옛말에 자식 낳아서 길러봐야 어른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겠죠.
잘 보고 갑니다.
답글
크...뭐라 형용할 수가 없네요...ㅜ
답글
어머님께서 연로해 보이세요. 힘드실텐데...
따뜻한 마음 잘 읽고 갑니다.^^
답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원한 내리 사랑'이란 포스팅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네요.
따뜻한 어머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답글
지극힌 정성이 대단합니다
효성도 그렇구요
쌀쌀해진 날씨 건강하시길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답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정말 아름다운 고부 사이...
눈물이 핑 돌게 합니다.
답글
연세있으신 분들은
추위에 더욱 약하시고..
시간이 갈수록 몸은 종잇장같이..얇아져서 툭쳐도 찢어진다고 합니다..
저또한 제부친과 모친으로부터 경험한 내용입니다.
섬기길 다하여도 이는 변함이 없다고 하니 안타까움만 남지요..
답글
어미님께서 부처님께 어떤 소원을 비셨는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답글
효부효녀십니다.
어머님이 너무 좋아하시겟어요..
답글
저는 믿는거는 아니지만 1년2번정도 심원사라는 절에 다녀오고있어요 ^^;;만원은 아니지만 천원씩 넣고있지요.. 넣는곳이 다섯곳인지 여섯곳인지 잘기억이 안나네요 ^^;;그쪽에서 꿈에 자주나타나시는 조상분들을 둘째언니가 돈많이주고 제를 지냈거든요 ;; 그 이후로는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ㅋㅋ 정말 요상하죠 ㅎㅎ
거기 절밥은 정말 맛있는데.. 요즘은 서울에서 많이 온다고 하더라구요.
답글
효부 밑에 효녀 나고
효녀 있으니 효부 있지요.
노으리 동상, 보기 좋아요.
답글
아아 노을님 잔잔한 감동이 제맘을 후려 치네요 ;;;
답글
그저 보기만 해도 보기좋은 풍경입니다.
답글
효성이 지극한 자식을 둔 노모님은 정말 행복하신 분 같으십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