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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초등학생이 할머니를 돌본다고?

by 홈쿡쌤 2009.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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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할머니를 돌본다고?

알츠하이머증상을 보이시는 83세의 시어머님,  시골에서 생활하시다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두 달을 넘었습니다. 별스럽게 잘해 드리는 건 없지만 노모를 모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함께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녀석들은

“엄마!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오랜만에 시내가자고 조릅니다. 그런데, 외출복을 차려입은 시어머님이

“어디 가노? 나도 따라 갈란다.”

정말 난감합니다.

“할머니! 우리 영화 보러 가요.”

두고 갈수가 없어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냥 할머니랑 있을게 너희 둘이만 다녀오면 안 되겠니?”
“싫어. 엄마 안 가면 우리도 안 가.”

“............”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내가 엄마랑 있을게 다녀와.”

“우와! 쌩유 아빠!” 어지간히 신이 난 모양입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점심시간에 맞춰 들어와 할머니를 챙겨야 했던 녀석들이니까.

며칠 전, 막내 동서한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형님! 어머님 우리 집에 모셨으면 하는데.”
“안돼. 어머님 점심 차려 줘야 되는데 누가 할 거야?”
“아이들 방학했으니 같이 챙겨 먹으면 됩니다.”

“그래? 한 번 생각해 볼게.”

“제가 형님한테 휴가 드릴게요.”

“집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아닙니다. 형님은 매일 하는 걸요.”

“아주버님이랑 상의해 볼게.”

남편에게  막내삼촌네 어머님을 좀 보내면 어떻겠냐고 물으니 처음엔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가 어떻게 밥을 차려주느냐며 펄쩍 뛰더니 얼마 안 있어 친정엄마 기일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일주일만 보내자는 동의를 얻었습니다.


휴일 날, 막내삼촌과 조카가 시어머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이것저것 어머님을 짐을 챙겨 보내면서 여러 가지 당부를 하였습니다.


어머님~

몸에서 냄새 나지 않게 속옷 자주 갈아입으세요. 약도 잘 챙겨 드시고 식사도 많이 하시고. 건강하게 계시다 오시길 바랄게요. 힘으로 하시지 말고 요령을 피워 혼자 일어나세요,


동서야~

입이 까다로운 어머님이시지만, 국물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드시는 어머님이야. 매운 음식은 드시질 못하니 고춧가루는 많이 넣지 말고, 나물은 푹 삶아 부드럽게 하고, 반찬은 자작하게 국물 있게 만들어 드리면 된단다. 그리고 아직은 혼자서도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도 혼자 다니시는데 곁에서 다 해 주려고 하지 말고, 조금 안쓰러워도 혼자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란 걸 명심해.


삼촌~

형님은 어머니에게 심한 말도 하곤 하는데 막내삼촌은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 됩니다. 몸은 따라주지 않는데 아직 마음은 그대로라 뭐든 간섭하고 싶어 하는데 특히 가스불은 손도 데지 못하게 하는 것 잊지 마세요. 그리고 고부지간에 갈등 없도록 삼촌이 중간에서 역할 잘해야 되는 것 아시죠? 뭐 우리 어머님이야 시어머님 노릇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형님처럼 ‘무조건 동서편 들어주는 것 잊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에게는 살짝 동서 몰래 달래주시구요.




조카야~

이제 초등 2, 4학년인 너희에게 많은 걸 시켜서 미안하구나. 할머니 약은 30분 후에 꼭 챙겨 먹이고, 1번은 아침, 2번은 점심, 3번은 저녁약이야. 눈에 보이는 곳에 두지 말아. ‘내가 약을 먹었나?’ 하고 또 먹기 때문이야. 그리고 화장실 사용하고 나면 물을 꼭 내려주고, 수돗물 틀어놓고 나오는 일이 허다하니 꼭 따라다니며 수도꼭지 전기 확인 하기 바래.

“00아! 너 할머니 점심 차려주고 잘할 수 있겠어?”
“그럼요. 숙모처럼 할머니한테 잘 해 드릴게요.”

“..........................”

“아이쿠! 녀석 기특하기도 해라.”

너의 그 한마디가 숙모를 감동시켰단다.



현관문을 나서시는 어머님에게

“어머님! 잘 다녀오세요.”
“그래, 큰소리 내지 말고 오순도순 잘 지내 거라.”

“네.”

시어머님이 떠나가신지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빈자리가 큰지 알 수가 없습니다.

“딸! 할머니 식사하셨는지 전화해봐.”

정말 전화를 해서는 조카와 통화를 하면서

“할머니 밥 먹었어?”

다른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야! 할머니 밥 먹였나 감시하는 전화 같잖아!”

“그러게 왜 나를 시켜. 몰라. 나도.”

“...........”

착한 우리 동서 그런 맘 아니란 걸 다 알겝니다.

삼촌, 동서, 조카 모두 모두 고마워!

그리고 어머님!

잘 지내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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