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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치매 할머니 돌보는 고마운 딸아이

by 홈쿡쌤 201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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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할머니 돌보는 고마운 딸아이

이제 여고생이 된 딸아이 제법 엄마 마음을 헤아려 줍니다. 영화관 갈 때는 친구와 함께 가지 않고 꼭 나와 함께 가자고 조릅니다.

“엄마! 얼른!”

“알았어.” 

가끔은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기도 합니다.



 신학기가 시작되기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근무를 하면서 많이도 의지했던 분인데 막상 시내 만기를 채우고 멀리 나간다고 하니 많이 서운했던 참이었습니다. 개학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옵니다.

“야! 오늘 우리 송별회 하기로 했는데 나올래?”
“지금!”
“응. 얼른 와!”

빠질 수도 없는 자리라 할 수 없이 달려갔습니다.




이미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젓가락을 들고 내 입을 통해 배를 채우다 보니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살짝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 집으로 전화를 거니 딸아이가 받았습니다.

“딸! 할머니 국물 있어?”
“아니, 없는데.”
“엄마가 아침에 쑥국 끓여 놓았잖아!”
“맛있어서 점심때 다 먹어 버렸어.”

“어쩌냐? 엄마 이모 만나러 나왔는데.”
“걱정하지마 할머니 국물 내가 만들어 드릴게.”

“무슨 국 끓이려고?”
“냉동실에 있는 만둣국 끓이지 뭐.”
“그래 고마워.”

“엄마! 오늘은 늦게 늦게 들어와. 할머니 걱정하지 말고.”

“...........”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속 깊게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는 시어머님, 기억이 자꾸 뒷걸음질 치고 가끔 옷에 실수를 하곤 하지만, 아직 요양원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반찬 없어도 국물 하나만 있으면 식사를 하시는 어머님인데 드실 것도 없이 해 놓고 나와 내 배만 채우고 앉아 있었으니 걱정이 되긴해도, 우리 딸아이 엄마를 안심시켜주니 편안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오늘은 모두 잊고 스트레스 풀고 가라고 야단입니다. 노래방에서 두 시간 정도 놀다가 나 때문에 일찍 헤어졌습니다. 아홉시 쯤, 집에 들어서니 딸아이가 반깁니다.

“엄마! 오늘 실컷 놀다가 오라고 하니 왜 이렇게 일찍 와!”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
“응. 반 공기는 드셨어. 엄마! 내가 끓인 국물 맛 한번 봐. 아주 환상적이야.”

“자기가 해 놓고 맛 난다는 말이 어딨어?”
“일단 맛을 보라니까.”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맛을 느껴보니 간도 맞고 제법 그럴싸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딸! 간은 뭐로 했어?”
“엄마처럼 간장으로 했지.”

“그런데 멸치는 안 건졌네.”
“응. 시간이 없어서”

“와. 우리 딸 제법인걸! 맛있어.”

“정말?”

얼른 끓여주고 학원을 가야 되기에 멸치는 꺼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떡에 제법 대파까지 송송 썰어 넣었습니다. 몇시간이 지나 만두와 떡은 퍼졌지만 먹을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딸을 살림밑천이라고 하나 봅니다.

이렇게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를 보살펴주니 말입니다.


또, 3월 2일은 집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는 여고에 입학식을 했습니다. 400명 정도 되는 신입생 중 반 편성고사 결과, 단상 위로 올라가 장학증서를 받아 내려오는 당찬 녀석을 보니 다시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버립니다. 잠시 조퇴를 내고 학부모설명회를 마치고 나니 12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딸! 입학 축하해.”

“고마워 엄마!”

“어디 갈 거야?”
“친구들이랑 시내 가기로 했어.”

“그럼 어쩌지?”
“왜?”
“할머니 때문이지. 엄마는 얼른 들어가 봐야 하는데.”
“알았어. 내가 점심 차려 드리고 갈게.”

두 마디도 하지 않고 알아들었다고 말을 합니다.


시어머님은 가끔 정신이 없어 하루에 한 번은 시골에 가야 된다며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설 때가 잦습니다. 그럴 때마다 짜증 내지 않고 다시 모시고 들어오는 녀석이 고맙기만 합니다.


할머니가 네가 어릴 때 키워주셨으니 너도 할머니께 다시 되돌려 드린다고 생각해라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나이인데 할머니를 생각해 얼른 들어와 주는 녀석이라 어른스럽기만 합니다. 가끔은 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가족 모두가 아직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막상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떠나고 나면 가장 서운해 할 우리 딸입니다.


딸! 너무 고마워.

언제나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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