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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교복 물러주기'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by 홈쿡쌤 201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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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물러주기'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이제 막 여고생이 된 딸아이, 마냥 즐겁기만 한 가 봅니다. 중학교 때 와 달리 공부도 수준별이라 더 재밌어하고, 다소곳하게 입은 교복이 맘에 드는 것 같습니다. 입학식을 하고 0교시 수업과 7교시를 하고 나니 오후 5시 점심을 먹고도 많이 배가 고팠는지

“엄마! 내일부터 간식 좀 싸 주면 안 돼?”

“왜?”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으니 배고파.”
“매점 없어?”
“공사 중이라 아직 문 안 열어.”
“알았어.”



이제 깨우지 않아도 알람 소리에 스스로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합니다. 단정하게 입은 교복을 보니 예쁘기만 합니다.


학교에서 반 배치고사를 치르고 올 때 안내장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사립이라 그런지 제법 두발 신발 등 규칙이 엄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교복 물러 받기라는 안내였습니다.

“딸! 너희 학교는 공동구매 안 하고 교복 물러 받기는 하는데.”

“.................”

“아! 아빠 친구 딸 있잖아. 저번에 우리 집에 왔던 그 언니 말이야.”

“엄마! 새 옷 하나 사고 언니 것도 받아 입으면 안 될까?”

“교복 두 벌이나 뭐하게?”

“드라이 맞기고 하면 두 벌 필요하잖아.”

“윗도리와 치마만 물러 받고 와이셔츠는 사야지.”

“알았어. 그럼 연락해서 받아 와.”

혹시 맞지 않으면 수선 집에서 고쳐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봄방학 동안에 딸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교복을 사러 갔습니다. 남편의 친구 딸이 같은 여고라 한 벌 받아 입기로 했었는데 할머니의 한 마디로 그냥 새 교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와! 신난다. 할머니 쌩유!”

새 교복을 입게 되었다며 마냥 좋아라했던 녀석입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시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6개월, 가끔은 기억력을 저만치 되돌려 정신없으신 말씀을 해도 늘 그런 건 아닙니다. 한창 집 앞에 있는 학교에 배정을 받아 축하해 주고 교복이야기가 나오자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시어머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야야! 어지간하거든 새 교복 사 줘라.”
“왜요 어머님.”

“00이 고모 고등학교 입학할 때가 생각나서 그래.”


시댁에는 5남1녀 6남매입니다. 가진 것 없고 벌이도 없는 시골에서 여섯 아이 공부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 고모는 남편 바로 위 누나입니다. 그 세대에는 누구나 그랬듯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공부도 곧잘 해 당시 명문 여고에 합격했습니다. 보내지 못하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엉엉 울며 고모는 떼를 썼다고 합니다. 그에 못 이겨 시아버님은 보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고, 고모가 다니는 학교는 하얀 칼라를 단 교복을 입어야 하는 학교였습니다. 겨우 등록금을 내고 보니 막상 교복은 새것으로 사 주지 못하고 남이 입던 옷을 물러 받아 입고 입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딸 칼라만 누런 것을 보고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어머님은 깊은 한숨을 내리 쉬었습니다. 3년이나 입었던 옷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좋은 것 먹이고 싶고 좋은 것 입히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일진데 그것조차 해 줄 수 없었다고 하시며 딸아이에겐 새 교복을 사 입히라고 하십니다. 그 말에 가슴 한구석이 짠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기분 좋게 다니는 고모를 보니 고마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고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선생님이신 고모부를 만나 아들 딸 낳고 잘 살아가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실 시누이는 제게 있어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먼저 말씀드리고 의논하고 무슨 일 있으면 남편보다 먼저 제 편이 되어주는 분이니 말입니다.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 있듯 지금 어머님께 효도하는 마음 깊은 딸입니다.


★ 교복 물러주기가 활성화 되지 않는 이유

첫째, 물러주는 옷이 싫다는 구 세대

형제가 많다보면 위의 언니 옷 받아 입는 건 아주 일상처럼 되었던 세대라 그게 싫다고 합니다. 이런 아픈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 교복 물러주기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둘째, 어느 누구나 귀한 공주요 왕자님

하나 아니면 둘 뿐이기에 우리 아이들 모두가 귀한 공주님이요, 왕자님입니다. 그런 귀한 내 아이에게 남이 입던 옷 입히지 않겠다는 것도 한몫 거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교복 물러주기 운동조차 생각 못 할 것입니다.


셋째, 많이 풍족해진 우리

정말 많이 풍족해진 탓도 있을 것입니다. 삶은 고구마, 누룽지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숟가락 전쟁 해 보셨습니까? 이불 서로 덥기 위해 이러 저리 싸워가며 당겨보신 적 있으십니까? 따라 다니면서 음식 먹여주고 각자 자기 방을 가지고 사는 세대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남이 입던 교복 입으라고 하면 절대 안 입으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 옛날과는 달리 세련되고 옷감도 좋아져 3년을 입어도 드라이만 하면 새것처럼 느껴지는데도 말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왠만한 어른 양복값 맞먹어 서민들에게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선전을 하기에 거품이 가득 들어있는 교복, 공동구매를 하는 학교는 인센티브까지 준다는 공문도 내려왔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실제 실천하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부모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들어드리고, 학생들이 근검절약의 정신을 실천하고, 합리적인 소비생활이 생활화될 수 있을터인데 말입니다.
 

단정히 교복을 입고 나서는 딸아이, 고모와 할머니 덕분에 새 교복을 입고 다니게 되었답니다.

“엄마! 대신 열심히 공부 잘 할게.”라고 합니다.
"그래, 엄마는 우리 딸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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