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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자식위한 친정엄마의 위대한 결심

by 홈쿡쌤 2010.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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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가을,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간 적이 있습니다. 새 쌀도 찧고 사촌 언니가 농사지은 채소도 얻고 대봉감도 따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 줄 시간이 조금 이른 것 같아서
"여보! 우리 고개 넘어 한 번 가 볼래?"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이모 집에도 가 보고 싶고. 다녔던 중학교도 보고 싶고 해서."
"그러지 뭐."
남편은 기꺼이 나의 추억여행에 함께 동행해 주었습니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되는 곳에 있는 이모 집에 들러보니 그곳도 우리 집처럼 쓰러져가는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혼자 생활하시다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모입니다. 그렇게 이모마저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저절로 내려앉는다고 하더니 사람의 기력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씁쓸하였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가끔 이모한테 들러 엄마의 향기도 느끼며 밥도 먹고 오곤 했습니다.

70년대에 다녔던 중학교도 어느새 '사이버 타운'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러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꿈과 희망을 키워왔던 곳인데 말입니다.

그리고는 친정엄마가 오랫동안 다녔던 '성전암'을 찾았습니다.







성전암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산31 번지 여항산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다. 성전암은 통일신라시대인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조선 시대에서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에 등극하였으며, 암자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인조각(仁祖閣)을 세워 오늘날까지 제향을 올리고 있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성전암 목조여래좌상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0호



2010년 5월 방화로 불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재 가 보니 대웅전은 타 버렸고 임시로 지은 곳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부처님께 큰절을 올리고 나오니 보살님이 정중히 맞이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얼굴을 보니 낯이 익어
"저~ 혹시 가산리에 사시지 않았나요?"
"응. 가산이 집이지."
"저 정수댁 막내딸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네. 어쩐 일이야?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
"네. 친정 왔다가 엄마가 다니던 절이고 해서 와 봤습니다."
"아이쿠! 조금 일찍 왔으면 저녁공양하고 가면 되는데."
"괜찮아요. 집에 가서 먹으면 됩니다."
엄마와 함께 성전암을 다니셨던 분이 지금은 아이들 다 키워 출가시키고 절에서 먹고 자고 스님을 돕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내 손을 잡고 10리 길을 걸어서 성전암을 다녔습니다. 부처님 앞에 놓을 쌀 한 봉지를 머리에 이고 고개를 넘고 산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오직 자식 위한 마음이셨겠지요. 동짓날 와서 얻어먹은 팥죽, 초하룻날, 부처님 오신 날 와서 먹고 갔던 비빔밥, 먹거리 없었던 시절 달콤한 유혹이었기에 힘든 줄 모르고 엄마를 따라다녔습니다.

16살에 시집 와서 자식을 낳고 어렵게 공부시켜 시집 장가보내고 나니 객지에 나갔던 아들과 며느리가 교회를 다니게 됩니다.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제사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을 올린다 못 올린다 하고 말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엄마는 몇십 년을 다녔던 절을 그만두고 동네 끝에 있는 교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엄마! 괜찮아?"
"그럼. 어쩌겠냐? 내가 교회 못 가게 할 수도 없는데."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하면 되지."
"다 큰 자식들 어디 내 말을 듣겠나?"
"..............."
한 집에서 두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자식을 설득하기보다 당신 혼자 바꾸면 만사가 평온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 밤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엄마는 매일매일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까지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집은 평화를 찾게 되었습니다. 요즘, 집안끼리 종교 다툼도 가끔 일어나곤 하니 말입니다. 


"엄마! 나도 엄마 따라 교회 다닐까?"
"아니야. 시집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엄마의 선견지명 때문이었을까요? 시어머님은 엄마보다 더 절에 다니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 절에서 내려다 본 풍경


믿음이야 무얼 믿던  마음의 평화 얻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 이야기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에 대웅전 지어지면 그때 와!"
"네. 그럴게요."
오랜만에 엄마가 다녔던 사찰을 구경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결심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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