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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성묘문화, 아들에게 되 물림하기 싫은 큰오빠의 결심

by 홈쿡쌤 2008.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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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문화, 아들에게 되 물림하기 싫은 큰오빠의 결심



가을햇살 살포시 세상에 내려앉아 황금들판을 만들어 가고, 토실토실 과일들 여물어 가는 계절인 추석이 가까워지자 성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어제는 산과 가까이 위치한 우리 집에서는 하루 종일 예초기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사촌들과   친척들이 다 모이는 성묘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댁은 아직 옛 풍습 그대로 따르는 일이 참 많습니다. 어머님이

"야야~ 내일 성묘하는데 안 올 거니?"

"집수리 때문에 아범 못 갈 것 같아요."

"그래? 어쩌누?"

"..............."

마음이 편하지 않으신 목소리 입니다.

늘 가까이 지내고 있는 남편이 함께하곤 했는데 참석하지 못하니 많이 서운하신가 봅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일가친척들이 모여 성묘를 하고 나면 그 많은 사람들의 음식을 해 내야 하는 건 여자들의 몫이 되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니 그것도 외식으로 대체되니 편안해지긴 했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일년에 한번쯤 모여서 즐거운 시간 보내면 좋으련만, 바쁘다는 이유로 또 멀리 있다는 이유로 땀 흘리고 일하는 사람은 정해져있는 것 같아 불만 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늘 따스한 분이셨던 아버님을 뵙고 누워 계신 봉분에 웃자란 잔디를 깨끗하게 잘라내고 나면 말끔하게 이발하신 모습을 뵈는 듯 하여 기분 좋았던 기억 떠올려 봅니다. 그런데 매년 해 오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차라리 몸이 피곤한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는 남편입니다. 마음은 하루 종일 불편한....우리나라의 장례문화로 인해 행해지는 몸살 같습니다.


언젠가 아버님의 산소를 땀을 뻘뻘 흘리며 성묘하고 있는 남편에게

"당신은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뭘?"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서 성묘를 하게 할 건지 궁금해서.."

"난 무덤 같은 것 안 할 거야 "

"그럼?"

"화장해서 수목장 하고 싶어"

요즘의 명당자리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 세상에 뭐 하러 무덤을 만드냐는 생각 가지고 있는 남편입니다. 우리의 무덤문화로 인해 국토가 서울시의 5배에 해당되고, 일년에 여의도 면적 1.2배의 묘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훼손을 조금이나마 막아보기 위해 납골당, 가족묘를 만들고 있긴 하지만, 40개 정도의 묘가 1개의 납골당이 되고 비용도 3천5백-4천만 원, 또 화강암으로 만들기 때문에 훼손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수목장은 화장을 하여 관하나 없이 그냥 나무 밑에 유골을 뿌려 주어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벌써 시행하고 있는 장례문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예정지를 만들어 놓은 상태로5m정도의 간격을 만들어 나무에 팻말을 붙여 두었다고 합니다. 망자는 자연과 함께 숨쉬며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 자식들은 그 자연을 찾아 휴양림을 만들어 휴식처가 되는 공간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조상을 섬기는 마음 사라지지 않고, 비좁은 우리의 국토를 살리는 길은 수목장이 제일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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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란히 누워계신 친정부모님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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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오빠 산소

 

  성묘 때가 되면 큰오빠 생각이 납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나라에서는 큰아들로서 살아가기 정말 힘겹다는 말을 합니다. 부모들을 봉양해야하고 형제들을 이끌어 갈 의무감을 가진 하늘이 내리신 운명 같은 분들이 바로 맡 형이니 말입니다. 성묘를 할 때에도 늘 날을 잡아 동생들을 불러야 하고, 명절 제사 때에도 큰형이라 알아서 해야 하니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그저 우린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하자는 대로만 따라해 왔지 그 고통은 나누지 못해왔던 것 같습니다.

큰오빠가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을 해 있으면서 장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큰오빠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내 죽거들랑 화장해라.”
“네? 왜요?”
“우리 아들 나처럼 힘겨운 일 되 물러주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렇죠?”
“됐어. 내 걱정일랑 말고 하라는 대로 해 줘. 성묘하는 게 보통일 아니야.”

“.............”

우린 아무 대꾸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둘째 올케가 한마디 합니다.

“아주버님이 그렇게 하시면 우리 얘 아빠는 어떻게 해요.”

둘째 오빠는 화장 하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화장해서 외국처럼 비석하나만 세워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더 이상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후 큰오빠는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유언대로 친정 부모님 산소 보다 조금 앞으로 당겨 유골을 땅에 묻고 비석하나를 올렸습니다. 정말 산소를 찾아 면장갑을 끼고 쓱쓱 문지르기만 하면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우와! 우리 오빠 정말 현명하시다.”

오빠의 그 힘겨움 아들에게까지 물러주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 헤아릴 것 같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늘 편안함 누려왔고 누려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빠! 그곳에서 아프지 않고 행복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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