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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박스줍는 시고모님, 자식에게 알려야 할까?

by 홈쿡쌤 200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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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줍는 시고모님, 자식에게 알려야 할까?

 

  참으로 무더웠던 여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도 벌써 힘을 다했나 봅니다. 산에서, 숲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연은 어느새 형형색색의 분으로 화장을 고치고 있습니다. 마치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다소곳합니다.


매일 밤, 저녁을 먹고 나면 남편과 둘이 아파트만 살짝 벗어나면 고향 같은 들길을 걷습니다. 길가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산자락을 따라 햇살 받으며 익어가는 배, 텃밭에서는 주렁주렁 열매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풍성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런 자연을 벗 삼아 두 바퀴만 돌아도 30분을 넘게 걸리기에 뛰어보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운동을 하고 들어오곤 합니다.


어제는 걸으면서 이야기만 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여보! 나 오늘 시내에서 고모 봤어.”
“고모님을? 어디서?”
“정말 미치겠다.”

“왜?”

남편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털어놓습니다.


시고모님은 팔순에 가까우신 분으로, 딸 셋 아들 하나를 낳고 혼자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막내가 2~3살 때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고모님은 자식들 당당하게 키워내셨습니다.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뿐, 콩나물을 키워 내다팔아 아이 넷만 보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딸들은 선생님에 교수,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모님은 시골에서 유학 온 조카들은 함께 데리고 살았습니다. 시댁이 워낙 시골이다 보니 모두 도시로 나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자취나 하숙을 할 형편도 되지 못해 동생 집이라고 그냥 쌀 몇 되 주고 맡겨두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몇 명이나 고모님 댁에 있었던 거야?”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보니 무려 12명이나 되었습니다. 한 집에 3명꼴은 고모 집에서 길게는 6년, 짧게는 3년을 지냈던 것입니다.

“우와! 정말 대단하시다. 먹을 건 어떻게 했어? 도시락도 쌌잖아!”

고등학교에 다녔던 남편은 국수를 끓여도 라면을 끓여도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많이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걸 아무 불평 없이 해 냈다는 생각을 하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이 차이가 있으니 한꺼번에 다 같이 있었던 건 않을 것 같아

“당신이 지낼 때는 몇 명이나 되었어?”
“사촌들하고 합쳐 5~6명은 되었지. 그리고 고모 아이들 넷하고.”
“그럼 대체 몇 명이야? 9~10명은 되었겠네.”
“그렇지.”

상상이나 가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면서 남편이 덧붙이는 한 마디

“고모님! 그런 상황에서 정말 한 번도 짜증을 내는 모습 못 봤어.”

"반찬이 없어도 많이 먹어!"
살다 보면 어렵고 힘겨울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이 흘러나오게 마련인데 3년을 함께 지내면서 조카들에게 눈치 한번 주지 않았다는 말을 합니다.

“나 같으면 못 해!”

그 말을 들으니 고모님의 잔잔한 미소를 가지신 인자하고 넉넉한 인품 눈에 선하게 들어왔습니다.


어제는 남편이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비탈길을 손수레를 끌고 올라오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너무 힘들어 보여 ‘아이쿠! 내려서 밀어 드리고 싶네.’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바로 고모님이셨던 것입니다.

“내려서 밀어주지 그랬어.”

“차를 세울 상황도 아니었고, 못 내리겠더라.”

“왜?”
“아는 체 할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남편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래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었고, 또 큰 수술까지 받으신 고모님이라 썩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말 고모님한테 잘 해야겠다.”

“그래야 되는데 맘처럼 쉽지가 않네.”

해마다 겨우 명절에 찾아뵙는 게 전부라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형님한테 전화 해 줘야 될까? 하지 말까?”

“난 그냥 그렇게 움직이며 일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좁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보고 한마디씩 하잖아!”

“남의 시선이 왜 중요해? 당신이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래도 나중에 조카들이 전화 안 하고 말 안 했다고 나 원망하지 않을까?”

“그러게. 정말 어렵네.”


힘에 부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재미삼아 일했으면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하는 남편입니다. 박스를 보면 또 더 줍고 싶어지니까 말입니다. 또한, 번듯한 자식들이 용돈을 작게 줘서 그런 것도 아닌데 사람들 눈에는 처량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편안한 노후를 보냈으면 좋으련만, 여태 살아온 녹녹잖은 삶이 생활화 되었기에 움직이며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고모님이신 것 같습니다. 또 햇밤이 나오면 밤깎기를 하실 분이십니다.


자식들에게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님, 하지 말아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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