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줍는 시고모님, 자식에게 알려야 할까?

 

  참으로 무더웠던 여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도 벌써 힘을 다했나 봅니다. 산에서, 숲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연은 어느새 형형색색의 분으로 화장을 고치고 있습니다. 마치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다소곳합니다.


매일 밤, 저녁을 먹고 나면 남편과 둘이 아파트만 살짝 벗어나면 고향 같은 들길을 걷습니다. 길가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산자락을 따라 햇살 받으며 익어가는 배, 텃밭에서는 주렁주렁 열매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풍성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런 자연을 벗 삼아 두 바퀴만 돌아도 30분을 넘게 걸리기에 뛰어보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운동을 하고 들어오곤 합니다.


어제는 걸으면서 이야기만 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여보! 나 오늘 시내에서 고모 봤어.”
“고모님을? 어디서?”
“정말 미치겠다.”

“왜?”

남편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털어놓습니다.


시고모님은 팔순에 가까우신 분으로, 딸 셋 아들 하나를 낳고 혼자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막내가 2~3살 때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고모님은 자식들 당당하게 키워내셨습니다.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뿐, 콩나물을 키워 내다팔아 아이 넷만 보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딸들은 선생님에 교수,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모님은 시골에서 유학 온 조카들은 함께 데리고 살았습니다. 시댁이 워낙 시골이다 보니 모두 도시로 나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자취나 하숙을 할 형편도 되지 못해 동생 집이라고 그냥 쌀 몇 되 주고 맡겨두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몇 명이나 고모님 댁에 있었던 거야?”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보니 무려 12명이나 되었습니다. 한 집에 3명꼴은 고모 집에서 길게는 6년, 짧게는 3년을 지냈던 것입니다.

“우와! 정말 대단하시다. 먹을 건 어떻게 했어? 도시락도 쌌잖아!”

고등학교에 다녔던 남편은 국수를 끓여도 라면을 끓여도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많이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걸 아무 불평 없이 해 냈다는 생각을 하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이 차이가 있으니 한꺼번에 다 같이 있었던 건 않을 것 같아

“당신이 지낼 때는 몇 명이나 되었어?”
“사촌들하고 합쳐 5~6명은 되었지. 그리고 고모 아이들 넷하고.”
“그럼 대체 몇 명이야? 9~10명은 되었겠네.”
“그렇지.”

상상이나 가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면서 남편이 덧붙이는 한 마디

“고모님! 그런 상황에서 정말 한 번도 짜증을 내는 모습 못 봤어.”

"반찬이 없어도 많이 먹어!"
살다 보면 어렵고 힘겨울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이 흘러나오게 마련인데 3년을 함께 지내면서 조카들에게 눈치 한번 주지 않았다는 말을 합니다.

“나 같으면 못 해!”

그 말을 들으니 고모님의 잔잔한 미소를 가지신 인자하고 넉넉한 인품 눈에 선하게 들어왔습니다.


어제는 남편이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비탈길을 손수레를 끌고 올라오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너무 힘들어 보여 ‘아이쿠! 내려서 밀어 드리고 싶네.’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바로 고모님이셨던 것입니다.

“내려서 밀어주지 그랬어.”

“차를 세울 상황도 아니었고, 못 내리겠더라.”

“왜?”
“아는 체 할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남편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래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었고, 또 큰 수술까지 받으신 고모님이라 썩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말 고모님한테 잘 해야겠다.”

“그래야 되는데 맘처럼 쉽지가 않네.”

해마다 겨우 명절에 찾아뵙는 게 전부라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형님한테 전화 해 줘야 될까? 하지 말까?”

“난 그냥 그렇게 움직이며 일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좁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보고 한마디씩 하잖아!”

“남의 시선이 왜 중요해? 당신이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래도 나중에 조카들이 전화 안 하고 말 안 했다고 나 원망하지 않을까?”

“그러게. 정말 어렵네.”


힘에 부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재미삼아 일했으면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하는 남편입니다. 박스를 보면 또 더 줍고 싶어지니까 말입니다. 또한, 번듯한 자식들이 용돈을 작게 줘서 그런 것도 아닌데 사람들 눈에는 처량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편안한 노후를 보냈으면 좋으련만, 여태 살아온 녹녹잖은 삶이 생활화 되었기에 움직이며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고모님이신 것 같습니다. 또 햇밤이 나오면 밤깎기를 하실 분이십니다.


자식들에게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님, 하지 말아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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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언제 알아도 알아야 하는 사실이라면
    조금 늦고 빠를 뿐

    알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충격을 받지 않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금요일입니다.
    내일은 드디어 즐거운 토요일주말이네요 ^^
    주말도 이제 1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하고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2009.09.18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소일거리라고 하기엔 너무 무리가 되는 일일 듯도 싶네요. 자식이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좀 안타깝네요...

    2009.09.18 09: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남들이 보기는 처량해 보이지만,
    나이들어서 무의미하게 하늘만 처다보는것보다
    움직일수 있는것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더군요.

    2009.09.18 10: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본인이 몸이 허용하는한 이런일을 하시는것도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꺼 같습니다.

    그냥 다음에도 보시면 좋은 얼굴로 인사 드리고 도와드리고..

    그렇게 행복을 느끼시면 될꺼 같습니다.

    2009.09.18 10: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그래도 알리는 편이 나을꺼란 생각이 드네요.
    소일거리로 생각하신다고 하더라도 좀 그러네요.
    잘 보고 갑니다.
    블거운 하루 되세요.

    2009.09.18 10: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나...만약 그러시다 다치시면...

    2009.09.18 1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알리시고 다른 소일꺼리를 만들어 드려셔야 할겁니다.

    어르신분들..손에 소일꺼리가 없으면 이것도 무료한게 너무 힘들어 하시더군요.

    2009.09.18 10: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전 꼭 알리는게 좋다고 생각해요..ㅠ

    2009.09.18 1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글쎄요~
    고모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어쩌지요?~

    2009.09.18 10: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알려야 되지 않을까요.
    소일거리로 하시는 거더라도요

    2009.09.18 11: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어신려울

    고모 할머니께서는 돈이 없어 그러시는게 아닐껍니다..
    남들이 보기 에는 궁색하다고 말을 하겠지만 할머니께서
    80평생을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 그럴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박스줍는일을 쉽게 놓지는 않으실것 같네요.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남에 할머니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하실런지는 모르겠지만
    그일들이 할머니에겐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더 좋을 수도 잇습니다..
    요즘 할머니분들을 보면 무슨일이든 찾아 하실려고 하는게 하루의 일과입니다.
    가만 있으면 오히려 병이나실테니까요.
    저희 홀 어머니도 올해가 78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 있지를 못하시거든요..
    제가 서울에 모시고 올라오면 단 일주일 있다가시는것도 진저리를 내시는데요..
    그러니 좋게 할머니한테 박스줍는게 힘들지 않으세요 하고 먼져 여쭈어 보시고 추후 자식들에게 알리는게 낳을듯 싶습니다.. 할머니 건강을 위해서라면 ㅠㅠ 건강하세요..

    2009.09.18 11:24 [ ADDR : EDIT/ DEL : REPLY ]
  13. 임현철

    난감한 일이지만 원해서 하는 일은 말릴 수가 없더군요.

    2009.09.18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14. 그런데 고모님은 아마 소일거리로 하신 듯합니다..
    그거라도 하셔야 안 심심하고 소소한 용돈도 벌겸..
    운동도 되고..

    울 모임 친구중에 자기가 박스를 줍는다고 하기에 우린 모두 놀랐는데..
    알고보니 골다공증이 있어
    햇볕을 많이보고 걸으라는 의사님 말에
    그냥 걸으려니 심심하고 박스도 줍고 작은 용돈도 만든다고하기에
    모두 놀랐답니다

    .그 친구는 아들딸 모두 잘 살고 본인도 아주 잘 산답니다..
    그러니 고모님두 아마 뭔가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요..^^*

    2009.09.18 12: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제생각인데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자신의 건강도 즐거운 일로 하는 듯
    좋는 작품 잘 감상하고 갑니다

    즐거운 시간으로 승리하시길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2009.09.18 12:18 [ ADDR : EDIT/ DEL : REPLY ]
  16.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 난처하시겠어요..
    만일에 저라면 알릴거에요..
    아프거나 사고라도 난다면..
    그리고 소일거리로 박스를 줍는건 힘들거같아요

    2009.09.18 12:55 [ ADDR : EDIT/ DEL : REPLY ]
  17. 글을 읽고 보니 정말 난감하군요. ㅡ.ㅡ
    이럴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저 같으면 알려주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나중에 혹시라도 사고를 당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9.09.18 13:20 [ ADDR : EDIT/ DEL : REPLY ]
  18.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라면 알려줘야 한다고는 쪽으로 생각이 기웁니다만...연세가 너무 연로하셔서 걱정이 많이 되서요..

    2009.09.18 15:07 [ ADDR : EDIT/ DEL : REPLY ]
  19. 저는 알려주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식 입장에서는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불효로 평생 후회할 수도 있거든요.
    일하시던 분들은 나이들어서도 그냥 있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뭔가를 할려고 이일 저일 한다고는 하는데요.
    나이가 있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은 제한적이구요.
    암튼 자식이 알고는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2009.09.18 22: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joo

    고모님 정말 훌륭하신 분이네요. 고모님의 사랑에 눈물이 날것 같아요. 연세도 있으신데 그래도 자녀분들에게 알려야하지 않을까요.

    2009.10.22 01:45 [ ADDR : EDIT/ DEL : REPLY ]
  21. 그늘

    70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만남,,,, 인생을,추억을,그리구 하늘을 같이 볼수있씀을 감사함에
    얼마나살는지를 잊어버리는 활력소를 ...
    늦게안 자식의 반대(남사르럽다)...결국 할머님이 나오시지 못함으로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시던
    할아버지의 자살..로 !


    고모님을 당연히 이해해 드려야 함을 말씀드립니다. 부끄럽게? 생각지 마시길 자식들에게 권합니다.
    당신이 하시는일에 활력을 주시여 당당함의 힘을 더해드리길 권합니다.
    ㅜㅜ맘으론 호강시켜 드리지못함을 안타까와 함이죠... 이해 합니다.
    기왕이시면 당당히 같이 박스줍는일을 거들어 드림두 [고민]고모님이 더 즐거워 하시구 힘내실일은?

    2009.12.11 15:55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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