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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우렁각시가 되어 다녀간 시누이

by 홈쿡쌤 200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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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가 되어 다녀간 시누이
 

갑자기 추위가 찾아온 탓인지 콧물을 보이기 시작하자 죽은 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틀을 푹 쉬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라 집안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하루를 쪼개가며 생활을 하는 이번 주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제는 퇴근하면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청소기는 밀어야지.’나 스스로 게으른 모습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몇 발자국 발을 옮겨보니 그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아무렇게 늘어두고 나갔던 부산한 아침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어머님! 누가 왔다 갔어요?”
“응. 아이들 고모가 왔다갔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늘어놓았던 빨래도 차곡차곡 개어 정리해 놓았고, 며칠 전 시누이가 어머님 겨울옷을 사서 택배로 보내왔것도 박스만 뜯어보고 그대로 밀쳐 두었는데 빨래하여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씻어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부들의 고민이 늘 그렇듯 ‘오늘은 또 뭘 먹이지?’하면서 부엌으로 가보니 장어국이 한 냄비 끓여져 있었습니다.

“어머님! 고모가 장어국도 끓여놓고 가셨어요?”
“응. 간은 네가 하라고 하더라.”

“네.”

뽀얗고 진하게 끓여놓은 장어국을 보니 얼마나 고맙던지. 손이 많이 가는 탓에 보양식인 줄 알면서도 자주 해 먹지 못하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시댁의 형제는 5남 1녀입니다. 남편은 셋째 아들, 시누이는 남편 바로 위 누나입니다. 남자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고를 졸업하고 동생들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였습니다. 쉰을 넘긴 나이라 그 시절에는 시골에서 여자들은 아들에게 밀리는 법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제법 공부도 곧 잘했지만 쉽게 꿈을 포기하고 시집을 간 시누이입니다. 그래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고명딸이라 그런지 어머님에게 잘합니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역시 딸이라는 걸 실감 나게 합니다. 시누이도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어제는 시간을 내서 엄마를 보러 왔던 것입니다. 83세, 자식위한 삶을 살았고, 지금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가끔은 약을 드시고도 또 약 먹겠다고 하시고, 금방 양치질을 하고 나왔는데 또 화장실로 가셔서 양치질하기도 합니다. 1분 전에 한 행동은 기억도 없고 10년 전의 기억은 할 수 있는 게 알츠하이머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누이는

“내가 미안해서 전화도 자주 못하겠다.”
“형님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머님이 자식을 키울 때 똑같은 마음으로 키우셨다는 걸 아는데 시누이는 자꾸만 미안해하십니다. 그러면서 사과, 밀감 등 먹거리들이 종종 택배로 날아오곤 합니다.


시누이는“엄마 우리 집에 좀 모시고 갈까?”라고 하지만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고모님이 오신 적 있습니다. 그때 고모님이 “딸네 집에도 며칠 가 있고 그래라.”라고 했더니 사위가 퇴근해 올 때가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해, 가 있기가 좀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리 잘해 주신다고 해도 딸네 집보다는 아들 집이 마음이 더 편안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머님 못 보내겠어요.”
그랬더니 엄마를 보러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맛있게 온 가족이 장어국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옵니다.

“응. 나야.”
“네. 형님.”

“장어국은 입맛에 맞게 간해서 먹어.”

“그럴게요.”
“엄마 바꿔줘.”
“어머님 지금 식탁에서 밥 드시고 계시는데.”

“그래? 그럼 잘 도착했다고 해.”
“네. 형님! 고맙습니다.”

“고맙긴.”
“저녁 잘 먹었어요. 장어국 덕분에.”

“알았어. 잘 있어.”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먹먹한 고마움이 온몸을 감싸 안았고, 오늘은 우리 집에 누군지 아는 우렁각시가 다녀간 기분이었습니다.

나를 기분 좋게 해 준 우렁각시 시누이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형님!
언제나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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