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해 주세요.”
뒷산에 올라 신년 해돋이를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친정 엄마 기일에 맞춰 오랜만에 큰오빠댁에서 언제나 예배를 보고 나면 달려오기 바빴는데 먼저 가서 올케의 일손도 돕고 1박을 하면서 바다 구경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질부가 일찍 들어섭니다.
“연희야! 너 왜 이렇게 일찍 와! 내가 음식준비 하면 되는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질부이름을 불러줍니다.
“그래도 일찍 와야죠.”
“시어머님이 어려워?”
“아니요.”
“너희 시어머님 같은 분이 어딨노?”
“저도 알아요.”
“어려워하지 마 알았지?”
“네.”
올케의 성격상, 시어머니 노릇을 하지 않고 딸처럼 돌보며 가까이 지내는 고부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 밖으로 흘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나니 멀리 떨어져 지내던 형제와 조카들이 모여 엄마를 생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룻밤을 올케와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의 삶을 똑 닮은 조카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큰오빠는 6남매의 맏이로 동생들 공부시키며 힘겹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교편을 잡으며 넉넉잖은 살림인데도 불평하나 없이 동생들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큰아들 노릇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북에서 월남한 올케의 친정엄마와 형제 6남매와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때 올케의 막냇동생이 중학생이었습니다. 북적북적 대가족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기에 큰오빠는 늘 아버지 대신이었습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온 오빠입니다. 하지만, 형편이 조금 펴이고 살 만하니 그만 61세의 나이로 환갑을 넘기지도 못하고 간암으로 우리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까운 별이 졌기에 많은 사람의 서러운 그 울음소리로 저승 가는 길이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작년에 오빠의 아들인 조카도 결혼을 했습니다. 한창 신혼살림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시기인데도 질부의 친정 부모가 모두 병원에 입원하였고, 중3이 되는 막내 처제를 조카 집으로 데려와 살고 있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원래 지병이 있어 피를 투석하며 지내시는데 장모 또한 관절염을 오래 두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절단해 부부가 나란히 병원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장모님은 거제에서 한 달에 한 번 서울 아산병원으로 모시고 가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 길고 긴 투병생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가는 일, 그 모든 게 조카의 몫이었습니다. 질부의 형제는 딸 넷 중 셋째로 다행히 직장생활을 하는 셋이서 병원비를 나누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 등급을 받았기에 병원비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질부가 일용직으로 있다가 정식직원이 되었기에 그 오른 월급만큼은 장인 장모님 병원비로 내면 된다는 생각을 고쳐먹으면 된다는 기특한 조카입니다.
조카가 하는 말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다른 엄마 같으면 그런 상황이면 이혼하라고 난리일 텐데 ‘너의 운명이니 어쩌겠니?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렴.’하고 올케가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조카의 핸드폰에는
“아빠의 삶을 닮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이렇게 저장해 두고 스스로 달래며 살아가는 서른 살의 당당한 가장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내면 끝이 없다고 합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질부의 맑은 목소리가 기분 좋게 합니다.
“고모님!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고생했어.”
차 안에서 우리 아이 둘
“엄마! 나 용돈 많이 받았다!”라고 합니다.
“누가 얼마를 준거야?”
“외삼촌, 외숙모, 언니, 올케가 줬어.”
“올케? 누구?”
“응. 훈이 오빠 부인 말이야.”
“얼마 줬어?”
“응. 3만원씩”
“...............”
어려운 형편인데도 우리 아이들 용돈까지 챙겨주는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여보! 다음에 언제 모이는 날에 질부 병원비에 보태게 돈 좀 챙겨 줘!”
“알았어.”
“정은 나누며 사는 것이야.”
힘이 들어도 힘겨운 줄 모르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어려움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삶이지만 행복이라 여기며 사는 우리 조카,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오빠! 하늘에서 보고 있지요?
당신의 아들이 반듯하게 자란 모습이 너무 대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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