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의 작은일상2011. 2. 3. 05:30

 옷고름에 걸려 주안상 쏟았던 새댁의 굴욕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설빔 , 새 신발, 음식. 세뱃돈까지

가지지 못하고 입지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더 그리운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아이 둘도 사촌 형제들 만나는 재미로 명절을 기다리는 것 같더니 이제 중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기다려지지도 않나 봅니다.

어제는 딸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엄마! 우리 설빔 안 사 줘?”
“설빔?”
“응. 설빔 말이야.”
“며칠 전에 옷 사 줬잖아!”
“그것하고 같아?”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와는 달리 부족함 없이 가지고 싶은 것 말만 하면 되는 녀석들이지만 설빔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모처럼 실컷 먹고 주머니까지 훈훈했던 그 마음을 말입니다.

 

어릴 때에는 설을 앞두고 거미줄도 걷어내고,

가마솥의 황톳빛 엿물은 깨를 만나 강정과 유과가 되고

맷돌은 돌고 돌아 두부와 도토리묵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 해 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칼로 썰었었고,

형제들과 만날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린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설을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날이 다가와도 가슴이 뛰지 않고

더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때만큼 맛있지 않습니다.


명절이 되면 나를 부끄럽게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서른넷, 서른셋 노총각 노처녀가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처음 시댁에서 설을 보내는 날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계시다 보니 친척들과 이웃어른들이 많이 찾아와 술상을 계속 차려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새댁이라 평소 입지 않는 한복까지 차려입고 말입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지만 내색도 못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시어머님의 친정조카들이 우르르 몰려와 세배를 드리고 나니

“아가! 떡국 좀 끓여라.”

“고모님! 우리 그냥 갈게요. 안 먹어도 됩니다.”
“점심때인데 한 그릇하고 가”

“네. 그럴게요.”

얼른 술상을 먼저 차렸습니다. 어머님이 직접 만든 신문지가 붙은 강정과 형님들과 남편 흉보며 부친 전, 달콤한 식혜, 막걸리, 아껴두었던 문어 등을 담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옷고름이 밟혀 문지방에서 상 가장자리에 있던 강정과 전이 담긴 그릇을 방바닥에 쏟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옷 안 버렸으니 다행이다.”

“조심 좀 하지. 그랬냐?”

“죄송합니다.”

“괜찮다. 얼른 치워라.”

“...........”

주섬주섬 치우고 나오면서 어른들 앞에 얼마나 부끄럽던지....

 
장농 속 깊숙히 들어있는 한복이 되어버렸지만,
그 후 정확히 익혀 둔 옷고름 매는 법 잊지 않고 있답니다.

★ 옷고름 매는 법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젠 초가집 저녁연기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을 뿐, 어느새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도 무디어지고 입맛도 변해가는 것인지 설날에 대한 즐거움도 입맛도 예전 같지가 않지만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늘 우리의 가슴을 방망이질하던 첫사랑처럼,

다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행복에 젖어봅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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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보고 갑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아늑한 설명절 되세요^^

    2011.02.03 08:26 [ ADDR : EDIT/ DEL : REPLY ]
  3. 명절 잘보내세요 ^^

    2011.02.03 08: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크핫 ~ 굴욕 ㅎ 그래도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었습니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언제나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세요!!

    2011.02.03 08: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실수하지 않도록조심해야겠네요^^
    옷고름 매는 법은 매번 보면서도 잊는 것 같아요..

    2011.02.03 08: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노을님 새해복많이받으시고 가족모두 건강한 한해보내시길 바랩니다.

    2011.02.03 09: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20년이 되어간다면
    노을님도 나이가....
    저와 비슷할 것 같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02.03 09: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시는 일 잘되시고 돈많이 버시고 신묘년 내내 행복하시길 바래요... ⌒⌒;

    2011.02.03 09: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옷고름도 간단하지가 않은것 같네요 ^^;;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

    2011.02.03 10: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그린레이크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셔요~~~

    2011.02.03 10:18 [ ADDR : EDIT/ DEL : REPLY ]
  11. 아, 에버그린님의 댓글에 순간 웃음이. ㅋㅋ
    노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 연휴 되세요. ^^

    2011.02.03 13: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ㅎㅎㅎ
    그래도 뜨거운 국물 있는 음식이 없었으니 다행이지요.
    만일 찌게라도 들고 들어가다 그랬으면 어쩔 뻔 했어요.
    명절이라 바쁘시지요?

    2011.02.03 14:25 [ ADDR : EDIT/ DEL : REPLY ]
  13. ㅎㅎㅎ 에버그린님...댓글에 빵 터졌습니다.
    역시...재미있으셔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계시지요?
    행복한 명절 되시고요...건강하신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

    2011.02.03 15: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추억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일인것 같아요^^
    저녁노을님 인사가 좀 늦었네요~
    즐거운 명절 보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새해 복 마니 받으세요!

    2011.02.03 17: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정말 있을 법한 일이네요. 예전 할아버지댁이 한옥이라 상차릴때마다 완전 전쟁이곤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네요.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명절 즐겁게 보내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02.03 1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옷고름 매는법이 한복을 입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어려운 건데....잘보고 갑니다.^^ 결혼초에는 시댁가는것 자체가 모험인지라 여러가지 실수를 하는것 같아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2011.02.03 19: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새댁이 되어 명절을 보내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이라죠. ^^
    즐거운 설명절 보내세요.

    2011.02.03 23: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공부 잘하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엇보다도 올 한해 꼭 대박 나세요.

    2011.02.04 00: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겠습니다 ^^
    그리고 정말 옷고름 매는 법은 잊을 수 없겠습니다~
    저도 오랜 설날의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2011.02.04 00: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한일휘

    노을 샘,

    설 차례 상 준비에 고단하셨지요...?

    어머님께선 오셨는지...
    차도는 좀 있으신지 못내 궁금하군요.

    우리 고향 '水谷'...
    그야말로 물좋고 꼴짝 깊은 곳이지요...
    고딩 이후엔 고향 떠나 우짜다가 가끔 가곤 하는...

    나이 들면 고향가서 살아야쥐요...

    진양호 생기기 전엔,
    대평으로 해서리 하루에 차가 4~5번 정도였던 그야말로 깡촌이었담다.

    타향살이 하는 제게
    고향을 묻는 사람들에겐 딱히 뭐 말하기 어려울 땐,

    철종 때의 민란 첫 집결지가 '수곡 장터'라고 야그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시내 버스가 다닌다는...후후.

    명절은 주부들에겐 그야말로 고난의 일상...
    무던하신 노을 샘의 성정으로도 힘든 날들이었지 싶슴다.

    이제 머잖아 새 학기도 시작되고,
    바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시것구만유...

    신묘년 새 해에도 좋은 일상이 되시길...

    2011.02.04 00:49 [ ADDR : EDIT/ DEL : REPLY ]
  21. 그 새댁 참 귀여우신데용? ㅎㅎ
    저도 맨날 옷고름 매는 것은 헛갈립니다.
    공연하면서 한복을 입어야 할때는 맨날 선배들한테 꿀밤을 맞았더랬습니다^^
    남자선배들이 옷고름을 매주고 있으면 교수님이 오셔서 니들 뭐하냐~ 그러시구,,ㅎㅎ

    2011.02.05 06:50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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