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3.12.21 한 겨울밤, 추억의 꿀단지와 인절미 (23)
  2. 2013.09.28 정성 가득! 딸아이에게 전하는 '엄마의 작은 선물' (18)
  3. 2013.07.25 한여름! 지금 내 고향의 모습은? (24)
  4. 2013.06.17 추억 여행, 삶이 살아있는 완사 오일장 (23)
  5. 2013.05.07 많이 달라진 삭막하고 씁쓸했던 봄 소풍 (43)
  6. 2013.03.13 이런 사람! 대장암 요주의 인물 (8)
  7. 2012.11.01 추억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 파일 속 사진 한 장 (28)
  8. 2012.09.26 가을을 타십니까? 계절성 우울증 예방법 (27)
  9. 2012.09.17 아련한 추억이 있어 행복한 보리밥 (32)
  10. 2012.07.02 고향같은 아련한 추억과 행복 가득한 숲길 (29)
  11. 2012.06.22 낡은 사진 한 장에 가슴 찡했던 사연 (27)
  12. 2012.03.13 선생님을 웃게 한 딸아이의 재치있는 쪽지 (53)
  13. 2012.03.11 식탁에 자주 오르는 두부에 대한 오해와 진실 (33)
  14. 2012.01.20 가까워진 설날, 빠질 수 없는 추억의 뻥튀기 (51)
  15. 2011.12.24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 (46)
  16. 2011.12.13 아들 친구들, 식탁을 초토화 시켜버린 밥상 (68)
  17. 2011.09.25 시골 가을 운동회와 시어머님의 빈자리 (47)
  18. 2011.09.06 이물질로 손상된 사진 되살리는 법 (71)
  19. 2011.08.25 기다림의 미학! 봉숭아 꽃물 예쁘게 들이는 비법 (78)
  20. 2011.08.14 아련한 여름 날의 추억 '소 먹이기' (17)
  21. 2011.07.23 <공감 블로그> 분위기와 추억을 함께 먹는 녹차 수제비 (32)
  22. 2011.06.27 일주일의 여유, 친정엄마가 그리워지는 추억의 밥상 (65)
  23. 2011.05.24 그리움 가득한 추억 여행! 아카시아 파마 (22)
  24. 2011.05.17 여고시절로 시간을 되돌린 추억속으로의 여행 '써니" (83)
  25. 2011.04.09 딸아이를 통해 본 34년 전 나의 아련한 여고시절 (36)
  26. 2011.04.03 동화같은 동피랑마을 우체통에서 날아온 엽서 (39)
  27. 2011.02.03 옷고름에 걸려 주안상 쏟았던 새댁의 굴욕 (37)
  28. 2011.02.02 추억의 명절과 위급할 때 간단한 응급처치법 (46)
  29. 2010.09.08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이 살아 있는 내 고향 (56)
  30. 2010.07.13 추억여행을 떠난 '비 오는 날 진양호 풍경' (48)

한 겨울밤, 추억의 꿀단지와 인절미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밤,
유난히 밝은 달빛과 별들만이 세상을 향해 내려앉는 스산한 겨울밤,
일찍 먹은 저녁으로 인해 간식이 그리워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출장 갔다 돌아온 남편의 손에 토종꿀 한 통을 들고 왔습니다.

"어? 웬 꿀단지?"
"친구가 가져다 먹으라고 한 통 주네."
"가격 만만찮을텐데...공짜로?"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다 또 보답해야지"
"........"

아들 녀석이 감기로 시달리고 있고, 평소 허약한 탓에 그냥 주는 것 덥석 받아왔나 봅니다.

 

  꿀단지를 보니, 유난히 약하고 작았던 나를 위해 아버지가 가져다 준, 꿀단지와 엄마가 만들어 준 고구마 조청이 너무 생각나는 밤이되었습니다.

나의 아련한 추억속으로 온 가족을 끌어넣어 보았습니다.


토종 꿀단지

 

  우리가 자라던 60-70년대에는 먹거리라고는 없었던, 참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가마솥에서 갓 구워낸 군고구마와 동치미가 기나긴 겨울밤을 달래는 유일한 간식거리였던 그런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소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유난히 키도 자라지 않는 날 위해 원기소도 사다 주시고, 아주 작은 꿀 단지를 붙박이장 속에 넣어두고, 아무도 없을 때 한두 숟가락 받아먹고 나가 놀게 했던 행복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너무 많아서 작은 유리병에 옮기는 남편

 

  토종벌을 키우지 않아 사 먹어야 하기에, 엄마는 늘 겨울이면 밭에서 키운 고구마를 푹 고아서 조청을 만들곤 하였습니다. 가마솥에서 고구마와 물을 조금 붓고 장작불로 오래오래 지피다 보면, 이렇게 꿀처럼 까만 조청이 만들어지곤 하였습니다.

사 온 꿀로는 육 남매의 입을 다 채워주기는 힘겨웠기에, 이 조청 단지도 붙박이장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 많이 아플 때에 따끈한 물에 타 주시곤 하셨던 엄마입니다.

아무래도, 체질이 제일 허약한 막내에게 더 많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자,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오빠들은 나를 데려다 놓고 먹이는 척하면서, 정작 오빠들이 더 많이 퍼먹어버렸습니다. 달콤함에 자꾸자꾸 퍼먹다 보니, 결국, 바닥을 보이게 되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뚜껑을 닫아 넣어 두었습니다.

며칠 뒤, 텅 빈 조청 단지를 본 엄마는 그냥 피식 웃으시고 넘기시는 것이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다가, 우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었던 기억 생생합니다.

 



  꿀단지에 묻은 꿀을 손으로 닦아가며 손가락까지 빠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추운 한 겨울밤, 엄마가 해 주던 음식이 생각나,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집에있는 인절미와 떡볶이 떡을 후라이팬에 굽습니다.

 

▶인절미에 콩가루가 묻어 있어 조금 타 버렸습니다.

   그냥, 보기 좋게 노릇노릇, 노글노글하게 구워내어 꿀에 찍어 먹습니다.








▶그냥 주면 잘 먹지도 않는 인절미를 살짝 구워 꿀에 찍어 먹게 했더니,

   가족의 손놀림이 빨라집니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엄마! 더 주세요."
   "것 참! 생각보다 맛있네~"

 

 꽁꽁 얼어붙은 찬 기온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집에서는  따뜻한 행복이 넘쳐나는 저녁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육 남매의 손이 이렇게 오갔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쳐다만 봐도 미소가 번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추억은 이렇게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가 봅니다.

 

여러분은 한겨울에 생각나는 추억 하나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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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정성 가득! 딸아이에게 전하는 '엄마의 작은 선물'

 

어제 TV 뉴스에서 소중한 아이의 유아 때와 백일, 돌을 맞아 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드는데 오백만 원이나 하고 중간에 계약을 파기를 하고 싶어도 위약금을 많이 달라는 바람에 선뜻 하지 못한다는 말도 못하고 돌사진을 찍지도 않았는데 선금을 요구한다는 방송이었습니다. 부모는 내 아이의 모습을 전문가에게 맡겨 기념되도록 하기 위해 아무리 비싸도 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악용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었던 앨범 만드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33살의 노처녀가 결혼하여 얻은 첫딸, 나의 보물이요, 살림밑천입니다.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것만 골라서 먹고, 내 손으로 10달 동안 직접 만들어 태교까지 열심히 하였습니다.

정성을 쏟아서 그럴까요?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이 엄마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답니다.


추석에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딸아이에게 전하는 '엄마의 작은 선물'라는 앨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왜 이게 여기 있지?"
"엄마! 내가 보고 곶아 두었는데.."
"그랬어?"
"나 어릴 때 모습 보니 새삼스러워!"
딸은 글을 읽을 수 있었던 6살 때부터 엄마가 써 놓은 육아 일기를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쏟아져 글씨도 흐릿한 곳도 있어 작은 사랑을 담아서 만들어 주었던 앨범이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화질이 좋고 카메라 하나쯤은 기본입니다. 아이들 사진은 컴퓨터에 저장되어있어 요즘 같은 시대에 CD 구워주면 되지 필요 없다고 여기며 지내왔는데 사진을 뽑을 수 있는 프린터기도 있고 해서 사진관을 찾아갈 번거로움도 없을 것 같아 시간을 내어 만들게 되었답니다.


자라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하루하루 그 모습 달리하며 귀엽게 변해 가는 그 모습 담아낼 수 있어서....


자! 한번 보실래요?

 

 ▶ 물을 쏟아 훼손이 된 육아 일기

 

 ▶ 딸아이의 태몽 이야기..

 

저는 찍어둔 사진을 스캔 떠서 사용해 바로 찍은 사진과 화질이 다르겠지만 제법 괜찮았습니다. 

 

   

 ★ 프로그램을 불러내고, 사진을 선택한 뒤 크기에 맞게 인쇄를 하면 됩니다.

 


▶ 아주 선명하게 잘 나온 것 같지 않나요?

 

 

한 장의 사진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담아서 잘 쓰진 못해도 손글씨로 써 주었습니다.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할 앨범제작한 모습 한번 보실래요?

몇 장의 사진만 올려 봅니다.

 

 




















 

또박또박 손글씨를 써서 우리 딸에게 전해 주었더니

"엄마! 너무 고마워요. 재산목록 1호!~"라고 합니다.

볼따구에 금복주처럼 들었던 볼살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 아이 자라나는 모습, 한눈에 담은 앨범이기에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시집갈 때 들고 갈 꺼야?"
"그럼요 당연하죠"
"시집은 갈라나 보네?"
"아니다. 엄마랑 같이 살아야지~"

입에 발린 소리도 곧잘 하고, 엄마의 기분도 잘 맞춰주는 딸아이입니다.

하나하나, 한 장 한 장 더하기를 해 가면서 시집갈 때까지 간직하고픈 추억들을 담아내렵니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고 해도 아직은 아날로그가 더 좋은 세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엄마의 정성을 담아 만들어주면 더 값지지 않을까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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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한여름! 지금 내 고향의 모습은?




남쪽에는 연일 폭염이 계속되더니
어제는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갔습니다.

시원하게 내려앉은 단비로 인해
곡식들은 흠뻑 숨을 쉬는 기분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지만 고3 아들은 학교에 가고
남편도 교육 떠나버리고
오후에는 혼자 뒷산을 올랐습니다.

아파트만 벗어나면 포근한 고향 같은 풍경이 있어
사계절의 변화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터벅터벅 흙길을 걷습니다.
저 멀리 새소리, 매미 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방울방울 영글은 빗방울은 보석입니다.





봉숭아꽃입니다.
따와서 엄마 생각하며 손톱에 물을 들여야겠습니다.





옥수수가 알차게 열었습니다.

한여름밤 평상에 누워 별을 세며 하모니카 불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도라지꽃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배추가 타들어 갑니다.






호박꽃입니다.




까마중입니다.
까맣게 익으면 한 손 가득 따서 입에 넣곤 했습니다.





무화가가 익어갑니다.



 



 





하얀 박꽃이 피었습니다.




참깨꽃입니다.






색깔이 다르게 핀 인동초입니다.





쑥갓과 토란입니다.





보랏빛 영양덩어리 가지도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텃밭에 열린 방울토마토입니다.




▶ 이름도 독특한 며느리 밑씻게





들판에 벼도 제법 많이 자랐습니다.



고추도 빨갛게 익었습니다.




대추도 제법 영글었습니다.






해바라기꽃입니다.




유치원 담벼락에 핀 능소화입니다.





자연이 있어 여유롭습니다.
꽃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근심 내려놓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늘 우린 자연에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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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추억 여행, 삶이 살아있는 완사 오일장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단체로 체험을 떠났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랜만에 오일장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하던 시골장에 여자 40여 명을 내려놓으니
금방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완사 오일장은 시어머님이 시댁에서 생활할 때
자주 찾아오곤 했던 곳입니다.

정겨운 이들과 함께 구경하면서 추억속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추억의 도너츠를 파는 아주머니 입니다.






"새댁! 오이하나 사 가! 싱싱해!"











완사 오일장에는 피순대가 유명합니다.
아쉽게 먹어보지는 못하고 왔습니다.
오후라...다 팔리고 없었답니다.









뻥튀기도 하나 샀습니다.






추억의 풀빵입니다.
천원에 7개 주는 풀빵
여전히 맛있었습니다.

어릴 때 장남만 되면 엄마 따라 졸졸 가려고 했던 이유입니다.




늦은 점심을 먹는 아주머니






싱싱한 채소도 사 왔습니다.




시골버스가 도착하였습니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어르신들...
한 분 두 분 올라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먹었던 육회 비빔밥입니다.



▶ 고추전, 감자조림






▶ 김치류


 





쇠고기국과 함께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의 소통의 장소이기도 했던 오일장
여전히 운영되고 있어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삶이 살아있는 그런 시골 장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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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많이 달라진 삭막하고 씁쓸했던 봄 소풍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싼 김밥, 미지근한 사이다 한 병. 반별로 원을 그려 즐기는 수건돌리기, 장기자랑과 ‘백미’인 보물찾기 등 386세대 어른들이면 갖고 있을 이 같은 ‘국민학교’ 시절 봄·가을 소풍에 대한 추억이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학년별이 아닌 학급별로 가까운 공원이나 영화관람, 인근 박물관이나 야외 테마파크 등으로 1일 체험학습을 떠납니다.

바뀌는 세월 따라 소풍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했습니다.





첫째, 잠이 오지 않았던 설렘

국민학교 시절, 우리의 소풍장소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으로 공원으로 많이 갔습니다.
학교를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즐거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업어가도 모르게 자곤 했지만, 소풍 전날은 새벽같이 일어나
'혹시 비가 오지 않나?'
밖으로 나와 손을 내밀곤 했으니까요.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이기에 우리 아이들 이런 설렘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둘째, 엄마의 사랑을 담은 도시락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하고 있지만, 인근에서 사 먹거나 도시락을 사 와서 먹고 있어 엄마의 정성은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에는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가 맛있게 먹고 오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고등학생은 돈만 주면 알아서 해결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24시간 김밥집도 있어 사서 오는 학생,
그냥 소풍지에서 라면을 먹는 학생,

엄마가 싸 주는 김밥 속에는 단무지와 시금치 몇 알이 전부였지만 썰지도 않고 둘둘 말아주는데도 왜 그렇게 맛있던지요.
소풍 때만 얻어먹을 수 있었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
먹거리 지천으로 늘린 우리 아이들이 이해나 할까요?
"엄마! 먹을 게 없으면 라면 먹지 그랬어?"
요놈들아! 라면은 더 귀했단다!









셋째, 사라진 장기자랑과 보물찾기

체험학습장에서 장기자랑이나 보물찾기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새싹이 돋아난 들길을 친구들과 손잡고 노래 부르며 걷는 재미, 낭만도 없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김밥에 사이다 먹고, 빙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손수건 돌리기를 하고,
하이라이트인 보물찾기 시간. 부드러운 풀과 나무 사이에 보물 쪽지를 숨겨 놓고
와~ 흩어져 눈에 불을 켜고 함께 한 보물찾기는 또 얼마나 떨리고 마음 졸인 놀이였습니까?

여고 때에는 카세트테이프 틀어놓고 엉덩이 흔들며 삼각춤 추고 놀았던 기억 없으십니까?







 

셋째, 사라진 흑백사진

 

7080세대들은 돌사진도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어쩌다 선생님이 찍어주는 흑백사진 속에 담긴 우리의 모습.

어깨동무하며 찍은 사진 속의 친구들
벌써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들이 되어있지요.

똑같이 교복을 입고 새까맣게 탄 시골 촌놈들,
한 셔터 안에 담은 단체 사진 뒤로 풍경만이 소품이 되었던 시절.

손에 쥔 핸드폰으로 꾹꾹 눌려 찍어 카스나 홈페이지에 바로 올리는 시대에 사는 우리 아이들이라 변화 속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소풍입니다.








넷째, 선생님 도시락

소풍만 가면 선생님 도시락은 제 담당이었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엄마가 정갈하게 담아주면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둘러앉아 젓가락 싸움을 해가며 먹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동 학년 끼리 가게 되면 아예 학부모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도시락집이나 식당에 주문해 버리는 요즘입니다. 

반장인 고3 아들 녀석, 남해 보리암으로 소풍을 갔지만, 담임선생님 도시락 싸준다고 해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가져가라!"
"선생님들 알아서 해결해! 뭐하러. 커피 한 잔 사 드릴게."
딸아이는 가지고 가서 선생님께 드리곤 했는데 아들이라 그런지 들고 갈 생각조차 않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친정동네 경상남도 수목원(반성 수목원)으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역시 김밥을 사서 갔는데 정담임이신 선생님과 나무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습니다.
현미밥, 상추, 케일, 오이고추, 들깻잎, 쌈장, 족발, 탁주 1병, 종이컵
철저한 준비를 해 오셔서 배낭 속에서 꺼내 놓습니다.
"와! 선생님 우린 김밥하고 방울토마토 밖에 준비 안 했는데."
"같이 나눠 먹으려고 많이 싸 왔습니다."
"누가 이렇게 준비해 주셨어요?"
"우리 마누라가요."
"정담임과 부담임이 이렇게 다르군!"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해 가며 음식을 펴 놓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선생님! 요즘은 학부모들 선생님 도시락은 안 싸 보내나 봐요?"
"기대 안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싸 와서 먹음 됩니다."
".................."

학생들은 수목원 안에서 각자 친구들과 어울려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었습니다.
그저 우리는 다치지 않도록 안전에만 신경 쓰면 되었습니다.







우리 7080세대는 갈 곳이 가까운 강가라도 좋았고,
누구 하나 시들해하거나  질려 하지 않았습니다.

설레고 행복한 하루의 소풍장소로, 늘 보는 흔한 곳이어도 우리는 얼마나 흐드러지게 행복했던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할까요? 

나의 눈물 나게 그리운 시절을 이해는 할까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왜 그렇게 씁쓸해지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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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이런 사람! 대장암 요주의 인물





딸아이가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처음 엄마 곁을 떠나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엄마의 기우였습니다.
"엄마! 정말 재밌어 죽겠어."
아빠의 잔소리 듣지 않아서 좋고,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좋고,
마냥 즐겁다는 딸아이입니다.

입학식 날, 딸아이 대학과 불과 20분 떨어져 있는 둘째 오빠 집을 다녀왔습니다.
오빠는 은행을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하셨고,
올케는 중학교 선생님을 하다 오빠의 대장암 발병으로 명퇴했습니다.
오랜만에 오빠 집으로 들어서니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 오빠 다리가 왜 이래?"
"얼음판에 미끄러져서 저러고 있잖아."
"아이쿠. 조심하시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정말 좋았습니다.
오빠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계속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1. 대장암 위험군

㉠ 매끼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
㉡ 채소와 과일을 하루 1-2회 이하로 안 먹는 편이다.
㉢ 일주일에 술을 2회 이상, 매번 소주 1병 이상 즐긴다.
㉣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만 한다.
㉤ 단 음식을 잘먹는 편이다.







2. 이런 사람! 대장암 요주의 인물


㉠ 용종이 여러 개 있거나, 떼어낸 경우
㉡ 만성 염증성 장 질환 있는 경우
㉢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위
㉣ 부모가 대장암에 걸렸을 경우 유전율 2배
㉤ 형제자매에게 있을 때는 약 3배의 위험률이 있다고 합니다.







3. 대장암 부르는 생활습관

㉠ 육식파! : 과도한 육류 섭취
㉡ 군것질파! :  과도한 당분 섭취
㉢ 기분파! : 과도한 음주와 흡연









4. 대장암 예방하는 생활 습관

㉠ 식이섬유는 양껏 먹자 :
장 청소부 식이섬유

대변활동을 증가시켜 배변을 촉진시키고 대변 내의 발암물질을 희석 시켜줌,


㉡ 매일 먹자!
천연정장제, 유산균

면역 기능을 강화하고 염증성 반응을 억제해 줍니다.
매일 1회 이상 유산균 발료음료 섭취

움직여라.
   매일 꾸준한 운동

들여다봐라.
   정기적인 대장 내시경 검사








5. 대장암 차단하는 세 가지 식습관

㉠ 짜지 않고 맵지 않게 건강한 조리습관
㉡ 적은 듯, 배부르지 않게 건강한 소식습관
㉢ 하루 세끼 몸에 이로운 것들로만! 건강식 습관

▶ 암 발생 위험도 감소시키는 건강한 식사
과일, 채소, 살코기, 가금류, 저지방 유제품, 도정하지 않은 곡류 등





7. 대장내시경이 필요한 경우


㉠ 배변 시 출혈이 있을 경우
㉡ 하루 3회 이상 대변을 볼 경우
㉢ 변비, 설사를 자주 하는 경우
㉣ 점액 변이 나오거나 대변이 가늘어질 경우
㉤ 이유 없이 복통이나 원인 모를 빈혈이 오래갈 경우
㉥ 부모나 형제 등 가족 중에 대장암이 있을 경우








6. 생활 속 짬짬이 운동하는 법

㉠ 한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 다니기
㉡ 앉기보다는 서서 생활하기
㉢ 엘리베이터보다 계단 이용하기
㉣ 움직이면서 TV 보기
㉤ 걸을 땐 빠른 걸음으로







어릴 때 오빠 따라다니며 물고기 잡았던 이야기,
동네 어귀에 있었던 포구나무 열매 따먹기,
참외. 수박 서리,
호박에 말뚝박기,
추억만 가득한 오빠와의 대화는 끝이 없습니다.

이제 부모님 다 떠나고 없기에
더 안타깝고 안쓰러운 오빠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건강했으면 하는 맘 간절합니다.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건강관리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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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추억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 파일 속 사진 한 장





파일을 정리하다 보니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마 여름에 작은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산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 작두 아니야?"
"요즘 보기 힘들지."
잘라놓은 소나무를 가져와 싹둑싹둑 시범을 보이는 남편입니다.


작두를 보니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아버지가 소 장수를 하다 보니 우리 집에는 5~6마리나 되는 소를 키웠습니다.
수확하고 난 뒤 짚단을 묶어두었다가 작두로 썰어 소죽을 끓이곤 했으니까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막내야! 와서 작두 좀 디뎌라!"
"응. 엄마!"
신이 나서 다리를 들었다 올렸다 하면 엄마는 짚단을 밀어 넣곤 했습니다.
"아이쿠! 우리 막내 잘한다."
그 말에 더 신이 나서 열심히 디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밖에 나가 놀자고 우리 집으로 우르르 몰러 왔습니다.
친구들이 오면 엄마는 밥 위에 얹어 삶아 두었던 고구마를 꺼내 나눠 먹입니다.
조잘조잘
까르르
웃음소리 담 너머로 넘기며 수다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러다 친구 둘은 마당 가장자리에 늘어 둔 작두를 보고
어른들이 보기 전에 둘이서 소 여물을 썰었나 봅니다.
"엄마야!"
고함에 모두 놀라 뛰어갔습니다.
 
가보니 왼쪽 금지 손자락 끝이 잘라져 나가버렸던 것.
"엄마! 엄마!"
"이를 어째. 큰일났네."
집에 있는 수건을 쭉쭉 찢어 손을 칭칭 감고 십 리 길을 내달렸습니다.
1시간 간격으로 있는 시간 버스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의술도 없는 시골 의원이라 겨우 지혈만 하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상처는 아물었습니다.
친구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항상 명랑하게 웃던 친구라

부끄러워 여기지 않고 잘 성장하여 시집을 가고 벌써 사위까지 보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위험한 물건인 줄 모르고 잠시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치고는 너무 큰 아픔을 준 셈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무척 궁금하고,
보고 싶어집니다.



미영아!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은 엘범이라도 한번 뒤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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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계절성 우울증, 가을 노래 들으며 날려보세요!


가을을 타십니까?
우울하십니까?






★ 계절성 우울증이란?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 감소라는 계절적 특성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빛에 의해 생체 리듬을 조절합니다. 빛은 시신경에 의해 감지되며 이는 뇌의 송과선과 시상하부를 자극해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줍니다. 가을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드는 대신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세로토닌은 감정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데 부족하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계절성 우울증 예방법은?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에는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햇볕을 쬐는 '광선요법'이 효과가 있습니다.
㉠ 하루 최소 30분씩 햇볕을 쬐며 산책하기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돼 뇌 속의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므로 더 많은 빛을 쬐기 위해 실내 불빛을 밝히거나 창문 쪽을 향해 앉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  규칙적인 생활리듬 유지하기, 유산소 운동하기,

㉢ 신선한 과일과 채소 섭취하기, 비타민 복용하기 등의 방법도 좋습니다.






★ 가을은 남자의 계절?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의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얘기라고 합니다. 계절성 우울증은 오히려 여자들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여성이 감성적으로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40∼50대 중년 주부들은 특히 가을을 탈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입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

여러분은 무슨 노래를 들으십니까?




1.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생각나는 노래가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입니다.


가을이 오면이 수록된 이문세 씨의 4집 앨범은 <한국 가수 100대 명반>에서 16위로 뽑힐 정도로 호평받았고 지금까지도 온라인 음악 차트라든지 스트리밍 차트를 통계해보면 압도적으로 1위입니다.







2. 이용의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의 애절한 목소리가 마음을 울립니다.







3. 이상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올해는 코스모스 보기도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여름과 장마로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하늘하늘 가을을 부르는 코스모스의 향기가 그립니다.








4. 김광석의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이렇게 애잔한 노래를 남기고 떠난 가수 김광석
가을이면 생각나는 가수 중의 한 분입니다.






5. 가을우체국 앞에서



호소력 깉은 윤도현의 노래입니다.







가을 분위기의 노래 들으며
옛 추억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아마 계절성 우울증은 저 멀리 달아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가을맞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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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아련한 추억이 있어 행복한 보리밥




어릴 때 푹 삶은 보리, 선반 위에 올려놓고 밥을 지어먹곤 했었지요.
배가 고파 엄마 몰래 삶아놓은 보리를 꾹꾹 눌러 뭉쳐 간장 발라 가지고 다니며 먹기도 했구요.

보리밥,...보기만 해도 정겹습니다.
요즘에는 웰빙으로 건강식이지만, 그 시절에는 쌀이 모자라 보리를 깔고 쌀을 조금 놓고 밥을 지어먹었으니 말입니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열면, 검은 보리쌀만 가득해 부끄러워 반쯤 닫아놓고 먹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모임이 있어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아련한 추억의 맛이라 더욱 맛있었습니다.






▶ 식당 입구


▶ 명태찝입니다.
노릇노릇 구워내 양념장을 뿌렸다고 합니다.



▶ 배추김치



▶ 해초 초무침



▶ 단배추, 콩나물, 미나리나물



▶ 양념 된장


▶ 된장국



▶ 열무김치


▶ 박나물


▶ 물김치


▶ 도라지 초무침


▶ 우거지 된장국



▶ 보리밥과 흰 쌀밥 1:1
취향대로 보리밥만, 흰 쌀밥만, 반반씩 섞어 주기도 합니다.



▶ 완성된 상차림
사진 찍으라고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습니다.



▶ 이것저것 나물과 고추장 약간, 된장 양념을 넣습니다.




▶ 쓱쓱 비벼 먹음 그 맛 끝내줍니다.



▶ 1그릇 6천 원, 먹고 나온 자리가 어수선합니다.




추억의 맛,
건강한 보리밥이었습니다.
지인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왔답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여기 남부지방에는 태풍이 곱게 지나갔나 봅니다.
햇볕이 살짝 얼굴을 내밉니다.
쉽게 지나가는 것 같아 그저 감사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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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1동 | 청산에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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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고향같은 아련한 추억과 행복 가득한 숲길



지난 휴일, 남편과 함께 가까운 뒷산에 올랐습니다.
내리쬐는 햇살은 따사롭지만,
숲길을 걷는 기분은 행복하기만 하였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야생화가 고운 자태를
쪼르르 달려 오르는 청설모,
귓전을 울리는 아름다운 새소리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알싸하게 불어오는 솔바람이 시원하기만 했습니다.


청설모가 이리저리 나무를 타고 오르내립니다.



곱게 핀 까치수염에 나비가 날아앉습니다.









여러분은 깨묵을 기억하십니까?
여름,
책가방 집어던지고 소먹이로 가면
잘 익은 깨묵을 따 먹었던 어린 시절이 없으십니까?







삐삐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먹거리 없었던 시절,
삐삐 뽑아서 그것도 아까워 먹지 못하고 손에 가득 쥐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



보랏빛 엉겅퀴도 곱게 피었습니다.

 




나팔꽃과 개망초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우리 동네입니다.

 


남강다리입니다.



 







 





 아직 산딸기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남편은 손에 따서 꼭 제 입에 먼저 넣어줍니다.
그럴 때 자상함 느끼게 되는 행복함입니다.




자태도 곱게 핀 까치수염

  


단풍나무의 싱그러움



 





산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 핸드백을 들고 양산까지 쓴 아주머니의 모습입니다.




뒷산을 내려오면 가까이 텃밭이 있습니다.
고추 꽃입니다.



접시꽃



대추꽃


감자꽃


깨꽃


노란 계란후라이를 닮았다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만끽하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여러분 역시 즐거운 추억여행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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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낡은 사진 한 장에 가슴 찡했던 사연




요즘은 옛날과 달리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추억을 남기기도 하고 컴퓨터에 저장 해 두기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 공개하기도 합니다. 아이들 사진첩도 사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낮잠이 잠시 들었을까?
친정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남편과 함께 진양호 바람 쐬러 가는 길에
"여보! 엄마 한번 보고 가자."
"왜?"
"그냥 보고 싶네."


친정 부모님과 큰오빠의 산소는 농공단지에 영입되는 바람에 안락공원으로 모셔온 지 한 달 겨우 지났습니다.
깔끔하고 성묘를 하지 않아 좋긴 해도 찾아가면 사과 한 쪽이라도 놓고 절을 올렸던 게 생각나 마음 어수선해집니다. 그냥 부모님이 모셔진 문짝만 손으로 어루만지며
"엄마! 나 왔어."
"아부지! 막내 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무런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주위에 모셔진 분들은 사진과 꽃이 붙어있는데 우린 모셔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름만 달랑 붙어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면서
거제에 사는 조카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나 : 아빠 보고 간다.
조카 : 그려^^ 고마벼. 고모가 더 자주 보것네.
         아빠 사진이 생각보다 없더라.
        앨범정리 함서 찡했다.

나 :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도 없어~


큰오빠는 교장선생님을 하시다 환갑의 나이에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막내다 보니 부모님 대신이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큰아들로 태어난 죄로 동생들 데려다가 입히고 재우며 공부까지 시킨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너무 건강해서 병원 신세 안 지고 산 것도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병원 자주 다니는 사람은 몸 관리를 하니 말입니다. 오빠는 암 선고받고 6개월 후에 홀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평소 이상하게 사진 찍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오빠! 이리 오세요."
"너희나 찍어."
가족 여행 갔을 때도 카메라를 뺏으며 찍어주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앨범을 뒤져 붙일만한 사진을 찾아도 사진도 몇 장 되지 않고 있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역시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겨우 한 장 찾아서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전송해 줍니다.






부모님이 경주에 놀러 갔을 때 사진인가 봅니다.
사진 찍는데 익숙지 않은 촌스러운 모습이 가슴 먹먹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허긴, 언제 사진인데....
동네 사람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허리가 휘도록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희생한 분임을 압니다.
덕분에 우린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입니다.


일주일 전, 조카가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넣어 부모님이 모셔진 곳에 붙어두었습니다.
이제 부모님 사진을 보고 눈을 맞추며 웃고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여 여러분도 사진 찍기를 꺼리십니까?
좋은 모습,
행복한 모습,
많이 많이 찍어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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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선생님을 웃게 한 딸아이의 재치있는 쪽지



봄인가 했더니 꽃샘추위가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바람속에는 제법 따스한 봄이 숨어 있는 느낌입니다.

일요일이지만 고등학생인 두 녀석 도시락을 싸 독서실로 보내고 미뤄두었던 청소를 하였습니다.
공부하다 밀쳐둔 책이 여기저기 쌓여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안 하고 자라면 어떻게 될까?'
속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차곡차곡 정돈을 하면서 쓰레기통에 넣을 건 넣으려고 하는데 눈에 들어온 포스트잇
아마 선생님께 드리려고 했는데 전달하지 못했나 봅니다.

딸아이는 고3 학생회장입니다.
더욱 공부에 신경 쓸 때인데 인성부장 선생님이 3학년 간부도 급식지도와 교통지도를 해야한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3학년은 빼달라고 한 마디 하면서 선생님과 의견 충돌이 벌어진 것이었지요.





 




하오나 사과의 맛은 보장할 수 없사옵니다.
집에 있던 거라. 죄송하옵니다. ㅠ.ㅠ



밤늦게 돌아온 딸아이에게
"딸! 이 쪽지 선생님께 안 드렸어?"
"응. 전했는데 그 자리에서 읽어보시고 내 이마에 도로 붙여주었어."
"왜?"
"그 사과 정말 맛있었다고 하시면서"
딸아이의 재치있는 문구에 선생님들 모두 뒤로 넘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 문구 너무 웃긴다."
"그래야 선생님 화가 풀리지."

녀석, 학교생활도 제법 잘하고 있고,
화해할 줄도 알고,
사과할 줄도 아는,
당당하게 자기 주장도 말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받는 것도 모두 자기 하기 나름이라 여깁니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추억에 남는 여고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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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유용한 정보 나눔2012.03.11 06:03

식탁에 자주 오르는 두부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어릴때 명절이나 제사가 있는 날이면 엄마는 콩을 불려 맷돌에 갈아 두부를 직접 만드셨습니다.
맷돌이 돌아가면서 토해내는 하얀 콩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으면 가마솥에 물이 팔팔 끓어오릅니다. 그때 걸죽한 콩을 넣어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고소한 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잘 끓은 콩죽을 걸러내 간수를 치면 몽글몽글 두부가 엉기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순두부를 입에 넣어주면 지금도 잊지 못할 맛으로 남아있습니다. 요즘은 시장에 나가면 쉽게 살 수 있어 그 시절에 먹었던 두부만큼 맛있다고 느끼지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 식탁에 제일 많이 올라오는 두부입니다.



 



★ 두부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두부는 생으로 먹어도 될까?
생식용 두부가 따로 있다면 부침용 두부나 찌개용 두부는 생으로 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돕니다. 생식용 두부는 부침용 두부나 찌개용 두부보다 입자가 곱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므로 따로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즉, 식감에 따라 용도를 구분해놓은 것일 뿐 부침용 두부나 찌개용 두부 역시 생으로 먹을 수 없는 건 아닙니다.


2. 두부를 만들 때 기름을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콩물을 끓일 대 생기는 거품을 없애기 위해 기름을 사용합니다 옛날에도 두부를 만들 때는 기름을 사용해 거품을 가라앉혔습니다. 요즘에는 현미유나 올리브유 등 양질의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며, 브랜드에 따라 기름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3. 두부 제품에 사용하는 천연 응고제는 무엇인가요?
콩물 속 단백질을 서로 뭉치게 하기 위해서는 응고제가 필요한데, 가정에서 두부를 만들 때 간수나 식초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단백질과 단백질을 연결하는 염분이 바로 응고제입니다. 최근 두부 제품에 사용하는 천연 응고제란 미네랄 성분이 높은 바닷물을 끓여 농축한 뒤 얻은 조제 염화마그네슘을 말합니다.


4. 두부의 적정 보관 온도는?
식품위새법상 두부의 적젇 보관 온도는 10도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두부가 가장 맛있는 온도는 냉장실 온도인 2~5도입니다. 이때 두부 조직이 가장탄력이 좋으며 씹는 맛이 조습니다. 단, 두부의 보관 온도가 0도가 되면 영양 조직이 파과된다고 하니 보관에 주의 할 것. 적정 보관 온도에서 보관하면 개봉 전 2주 정도까지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5. 두부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 방법은?
두부를 요리하기 전 여분의 물기를 빼고 요리하거나 먹으면 특유의 냄새를 줄일 수 있습니다. 사용하고 남은 두부는 포장 용기의 물을 버리고 밀폐 용기에 생수를 부은 후 두부를 담가 보관해 산소를 차단하고 하루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면 두부 특유의 냄새도 없애고 신선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 두부와 먹으면 효과가 배가되는 찰떡궁합 식품

1. 미역이나 김과 같은 해조류
콩의 사포닌은 이로운 점도 있지만, 지나치게 섭추하면 몸속의 요오드가 많이 빠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요오드는 갑상선을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기 때문에 부족하면 갑상선호르몬인 티록신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콩 제품을 먹을 때는 요오드를 보충하는 식품을 곁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요오드를 가장 풍부하게 함유한 식품은 미역 김과 같은 해조류 입니다.


2. 어류
두부에는 필수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의 함량이 적고, 어류에는 메티오닌이 풍부합니다. 두부에는 칼슘이 많고 어류에는 비타민 D가 풍부해 같이 먹으면 칼슘의 흡수율이 높아집니다.


3. 쌀
쌀에는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이 적고 유황 함유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많은 편인 데 비해, 두부에는 단백질과 라이신이 마낳으니 메티오닌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쌀과 콩 제품을 같이 섭취하면 단백질의 영양 효과가 상승할 수 있습니다. 쌀밥과 두부는 찰떡궁합인 셈.


4. 무
두부와 무를 같이 먹으면 두부를 먹고 생긴 부작용을 무가 해독해줍니다. 또 무는 소화 작용이 강해 두부의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 함께 먹으면 두부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식품

1. 우유나 치즈 등 칼슘 함유 식품
콩에 많은 피틴신은 혈중 지질 함량을 낮추고 납과 수은 같은 중금속에 달라붙어 몸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이 유익한 성분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아연과 같은 무기질의 흡수를 방해하기도 한다는 점이니다. 그러므로 우유나 치즈 등 칼슘이 많은 식품과 같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시금치
시금치에 함유된 초산과 두부 안의 칼슘이 상호작용하면 초산칼슘이 생성됩니다. 이는 시금치의 철분과 두부의 단백질 흡수를 모두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국민반찬이라 불리는 두부,
추억의 맛 두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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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가까워진 설날, 빠질 수 없는 추억의 뻥튀기



이제 명절이 코앞입니다.
하나 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쌀을 봉지에 담아 어머님과 함께 갔던 뻥튀기 강정을 하러 나가보았습니다. 하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설날인데 빠지면 서운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불경기라 그런지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집안 식구가 나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5명이 분담을 해 척척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180~200도 가까이 열을 올려 뻥튀기하는 큰아들
튀긴 것을 받아 손질하여 넘기는 아버지
적당한 양으로 버무려내는 어머니
자동기계에 잘라내는 둘째 아들,
비닐봉지에 담아내며 돈 계산하는 막내 아들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뻥이요∼ 뻥튀기요…….
멀리 마을 어귀나 골목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면 꼬마들은 마음부터 들떴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딱지치기 구슬치기도 팽개치고 동네 아이들 모두 뻥튀기 장수 곁으로 모여들었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딱히 자기 집에서 뻥튀기를 튀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장구통 모양의 시커먼 기계에서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부풀려져 나오는 뻥튀기만 봐도 마음은 절로 풍성해지는 듯했습니다. 튀긴 후 뿌연 김이 솟아오르고 아이들은 구수한 그 냄새도 좋아 코를 연신 킁킁거리며, 철망 밖으로 튕겨 나오는 튀밥을 서로 먼저 주워 먹으려고 다투기도 했었습니다.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설이 가까이 오자 달군 솥뚜껑에 쌀을 놓으면 부풀어 올라 튀겨져 나왔습니다. 곤로 위에 물엿과 설탕을 녹여 튀겨놓은 쌀을 버무리고, 납작한 판에 골고루 펴 다듬이 방망이로 밀어내고 따뜻한 온돌방에 신문지 위에 늘어 말려서 칼로 자르곤 하였습니다. 먹을 땐 신문지가 묻어 있어 뜯어 내어가며 먹어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 모든 게 아련한 추억이었습니다.





㉠ 각설이 타령에 나오는 1되 들어가는 깡통

㉡ 어릴 때 봐 왔던 장작과 풍로가 아닌 가스 불


㉢ 펑! 하고 터졌습니다. 뽀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 뻥튀기와 땅콩으로 강정을 만들 준비를 합니다.



㉤ 작년에는 쌀 1되 가져가면 13,000원이었는데 올해는 14,000원으로 천 원 올랐습니다.
하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



이제 아주머니의 손으로 넘어왔습니다.
물엿과 설탕을 1:1로 넣고 튀긴 쌀에 골고루 버무립니다.
한 판이 될 양을 눈대중으로 잘 가름하여 능수능란한 손길을 봅니다.
뻥튀기 아저씨의 노련한 솜씨, 하얀 솜털 같은 크게 튀겨져 나온 펑 뛰기로, 아주머니는 설탕과 물엿을 적당히 넣어 방앗간에 있는 깨소금 볶는 기계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빙그르르 돌아가 잘 섞어 주었습니다.



㉦ 그 뒤, 네모 판 위에 부어 골고루 펴 줍니다.



조금 있다가 옆에 있는 기계로 밀어 넣습니다.



칼질도 하지 않고, 자동으로 네모나게 잘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변하자 강밥 하는 것도, 모두 기계화 되어있었습니다.





㉩ 완성된 강정입니다.
아버님 제사상에 올릴 것 5장은 크게 썰었습니다.




▶ 작은 것 1봉지에 만 원, 큰 봉지는 25,000원에 만들어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하나 둘 만들어져 나오는 강정을 보면서 시어머님을 떠올립니다.
"야야! 강정도 했나?"
"네. 어머님."
"잘 했다. 이제 살림꾼이 다 되었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습니다.
어머님은 설날이면 꼭 강정을 만들어 놓고 자식들에게 나누주곤 하셨으니 저 역시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 모습도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강정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 속을 여행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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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우리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딸아이한테 문자가 날아듭니다.
"엄마! 서점가서 생물 책 좀 사다 줘요."
"알았어."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 옆에 있던 서점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어? 언제 빵집으로 바뀌었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던 서점은 사라지고 없었던 것입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저기 여기 서점 아니었어요?"
"빵집으로 바뀐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네. 그랬군요."
씁쓸하게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사라지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1. 서점

우리 주위에는 문을 닫는 서점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서점들은 PC방 또는 다른 상호의 가게로 변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동네의 지식 충전소와 같은 역할을 했던 소형 서점은 2000년대 초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최근 들어서는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당일 배송 서비스 확대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점차 문을 닫는 곳이 늘고 있다는 것. 동네 서점은 마을의 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네 서점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책을 구입해 보게 하는 모세혈관과 같은 곳이었건만, 인터넷 등으로 실시간 정보는 빨라지고 있지만, 독서 등으로 얻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지식 습득은 쇠퇴하고 있습니다.
 
겉모습이 화려하기 위해서는 속이 꽉 차 있어야 하듯 동네 서점은 속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데 아쉽기만 하였습니다.





 

2. 공중전화기

여러분은 친구와 오랜 통화를 해 본 적 없으십니까?
여러분은 사랑을 속삭여 본 적 없으십니까?
핸드폰의 보급으로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는 공중전화기입니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추우면 추위도 막아준 곳이고,
보기 싫은 사람이 오면 슬쩍 들어가 숨기도 했던 곳인데 말입니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으로 손안에 인터넷이 다 되는 세상으로 바뀌었으니...






3. 빨간 우체통

1970년대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입니다.
친구와 다투었을 때에도 또박또박 눌러 쓴 편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펜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써내려간 러브레터
그저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고 미소가 절로 떠오릅니다.

하지만, 요즘은 컴퓨터의 보급이 보편화되자 연말 소중한 분들에게 보냈던 연하장도 사라지고 메일이 대신하고 있으니....


하루가 변해가는 세상...놀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동네 슈퍼

아주 어릴 때에는 가게라고는 없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점방이 생겨났습니다. 아버지의 조끼 담배꽁초 속에 있는 10원짜리 하나를 몰래 꺼내 눈깔사탕 사 먹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연탄 화로 놓고 국자에 설탕 녹여 먹었던 똥과자도 그립습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콩나물과 두부 그냥 가져가고 적어 두었던 노란 외상 시부 책이 떠오릅니다.


가까이 있던 동네슈퍼도 이젠 대형마트에 밀려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보급으로 구멍가게보다는 싸고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마트를 이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급변하게 돌아가는 세상
따라가기 참 어려운 요즘입니다.

또 무엇이 사라지고
또 무엇이 생겨날까?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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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유용한 정보 나눔2011.12.13 06:00


아들 친구들이 초토화 시켜버린 밥상



이제 고3, 고2가 되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주말 저녁, 기말고사 기간이라 늦은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자정이 되어가자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들 녀석은 깜깜무소식이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 안 와?"
"가야지. 아! 엄마! 친구 데리고 가도 돼?"
"자러 온다고?"
"응"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오라고 해. 그것도 추억이잖아!"
"알았어. 데리고 와!"
"공부 조금만 더 하고 갈게."

새벽 1시가 되자 친구 둘과 우르르 들어섭니다.
"엄마! 배고파! 뭐 먹을 것 없어요?"
"빵 사다 놓았어."
"짜파게티 끓여 주면 안 될까나?"
"알았어."
금방 먹을 수 있게 감을 깎아주고 짜파게티를 끓여주었더니 게눈 감추듯 해치웁니다.

새록새록 국민학교 다녔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집에 데리고 오기도 하고 가서 자기도 하며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요즘같이 친구집에 가는 것도 폐가 된다는 생각 있기에 잘 보내지 않았는데,
막상 손님들이 오고 나니 뭘 해 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엄마! 내일 아침 8시에 깨워줘요."
"알았어 얼른 자라."
녀석들의 이부자리를 펴주고 잠자리에 드는 걸 보고 나왔습니다.

새벽녘에 일어나 녀석들을 위해 뚝딱딱딱 맑은 도마소리를 냈습니다.





1. 브로콜리

▶ 재료 : 브로콜리 1개, 초고추장 약간

▶ 만드는 순서

㉠ 브로콜리는 손질하여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둔다.
㉡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면 완성된다.


 

2. 봄동나물


겨울에 무쳐 먹으면 달콤하니 맛있습니다.

▶ 재료 : 봄동 2개, 간장 2숟가락, 깨소금 참기름 약간

▶ 만드는 순서


㉠ 봄동은 손질하여 끓는 물에 삶아 낸다.
㉡ 삶아 낸 봄동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내면 완성된다.




3. 숙주나물


▶ 재료 : 숙주 1봉 150g, 깨소금 참기름 약간

▶ 만드는 순서


㉠ 숙주는 손질하여 끓는 물에 삶아낸다.
㉡ 삶아낸 숙주는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주면 완성된다.



4. 생미역

 

▶ 재료 : 생미역 1봉 150g, 초고추장 약간

▶ 만드는 순서


㉠ 생미역은 손질하여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다.
㉡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5. 두부 돼지고기 조림


▶ 재료 : 두부 1모, 돼지고기 갈은 것 100g, 붉은 고추 1개, 청양초 2개, 마늘, 깨소금 약간
             고추가루 1숟가락, 진간장 1숟가락, 물엿 1숟가락, 멸치 육수 1/3 컵

▶ 만드는 순서


㉠ 두부는 납작하게 썰어 노릇노릇 구워낸다.
㉡ 돼지고기는 간장 물엿 마늘에 제워두었다가 볶아준다.
㉢ 육수를 붓고 고기가 익으면 구워놓은 두부를 넣고 자작하게 졸여준다.
㉣ 마지막에 썰어둔 고추를 넣고 마무리한다.




6. 돼지고기볶음


▶ 재료 : 돼지고기 600g, 고추장 2숟가락, 매실액 2숟가락, 고추가루 2숟가락, 마늘 약간
             양파 1개, 느타리 1개, 대파, 당근 약간

▶ 만드는 순서


㉠ 돼지고기는 양념에 제워 두었다가 볶아준다.
㉡ 고기가 익으면 썰어둔 채소를 넣어 마무리한다.





7. 고등어구이

 

▶ 재료 : 고등어 1마리

▶ 만드는 순서


㉠ 간이 된 고등어는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주면 완성된다.





8. 꼬막전


▶ 재료 : 부추 한 줌(100g 정도) 꼬막 150g, 밀가루 1/2컵, 달걀 1개, 소금, 올리브유 약간
             붉은 고추 1개, 당근 약간

▶ 만드는 순서


㉠ 꼬막은 삶아 껍질을 제거한다.
㉡ 부추, 당근, 붉은 고추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 밀가루와 썰어둔 채소, 꼬막 삶은 물을 반컵 정도 붓고 반죽을 한다.
㉣ 달군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내면 완성된다.



 

9. 채소쌈말이


▶ 재료 : 무쌈 1팩, 오이 1/2개, 노랑 빨강 파프리카 1/2개, 맛살 2줄, 마늘 햄 100g, 당근 1/3개, 무싹 약간

▶ 만드는 순서


㉠ 무쌈은 물기를 빼주고 오이는 감자 칼로 얇게 져며 밑간을 해 둔다.
㉡ 파프리카 당근은 곱게 채를 썰어둔다.
㉢ 맛살과 햄은 알맞은 크기로 썰어준다.
㉣ 오이와 무쌈에 재료를 올리고 돌돌말아주면 완성된다.
    (소스는 머스터드 소스입니다.)


 

 

 





 


▶ 사골 국


▶ 김장 김치





고등학교 1학년이라 먹고 난 식탁은 초토화 되어 있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정말 생미역과 김치만 조금 남았을 뿐입니다.
"우와! 엄마 설거지하기 좋겠네."
"너무 맛있어서.."
"아니, 잘했다는 말이야."

밥 한 그릇 뚝딱 먹어치웠는데 간식 배는 따로 있는 걸까요?
감을 한 접시 깎아주니 금방 비워버렸습니다.
"잘 먹고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기말고사가 코 앞이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습니다.
어른들이 '무쇠도 녹일 때'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친정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가는 행복한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는 날로 휴일 아침을 부산하게 보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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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시골 가을 운동회와 시어머님의 빈자리



토요일 아침, 고등학생이다 보니 새벽같이 나가 저녁 늦게야 들어오는 생활을 하다가 오랜만에 늦도록 잠을 자는 녀석들입니다. 
"얘들아! 9시."인데 안 일어날 거야?"
"일어나야죠."
"여보! 몇 시라고?"
"9시 다 됐어"
"내가 일어나야겠다."
"어디 가요?"
"시골 가야 해. 오늘 면민 체육대회가 있어. 당신도 갈래?"
"혼자 집에 있으면 뭐해. 그냥 따라가지 뭐."

녀석 둘 챙겨 학교 보내고 쌩쌩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니 운동장엔 벌써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 만국기와 푸른 하늘


천천히 걸어 들판으로 혼자 가을여행을 떠났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은 따갑기만 하였습니다.
'남국의 햇살을 하루만 더....'
시인의 말이 생각났고 곡식은 하루 하루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들깨향 가득하였습니다.




▶ 팥이 다 익었습니다.




▶ 개울가에 핀 고마리


▶ 벼도 누렇게 익어 갑니다.



▶ 황금 들판과 푸른 하늘



 







카메라를 들고 꿀벌의 유희에 한참을 머뭇거리며 빠져있었습니다.
양발에 가득 묻힌 꽃가루를 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 고추잠자리



▶ 억새



▶ 아주까리 꽃
시골에서 자랐지만, 아주까리 꽃은 참 신기하였습니다.
꼭 처음 보는 것 처럼....



▶ 무와 배추



▶ 들깨 속에 활짝 피운 이름 모를 홀씨




▶ 입을 다물어 버린 나팔꽃




▶ 꽈리
어릴 때 참 많이 불었습니다. 소리를 내며...



▶ 어머님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안녕하세요?"
"뉘고?"
"내동댁 며느리입니다."
"아이고! 자네가 왔나?"
"네. 잘 지내셨어요?"
"나야 늘 그렇지."
"밭에 갔다 오시나 봐요."
꼬부랑한 허리로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누가 남의 들깻잎을 따나 했지."
"이렇게 밭일도 다니시고 건강하시죠?"
"건강하긴, 텃밭에 토란대 조금 끊어 오는데도 이렇게 숨이 가쁜데."
"그래도 우리 어머님 보다 훨씬 좋잖아요."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아니에요."
"요새 며느리 시어머니한테 잘하는 사람 별로 없어."
"왜 없어요. 다들 잘하고 있어요."
"아니야."
"어머님과 함께 지내시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그저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왔습니다.




   


어머님은 올해 85세로 알츠하이머와 치매가 찾아와 요양원 생활을 한 지 2년이 되어갑니다.
추석날 친구를 만나면서 두 손을 잡고 어찌나 우시던지
가슴이 짠해 보는 것 조차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시댁은 시어머님의 실수로 불에 타 버렸고 그 땅엔 들깨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웃에서 텃밭에도 농사를 지어 김장 무와 배추도 알이 차고 있었습니다.




▶ 어릴 때 운동회가 생각났습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장난감 파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갖고 싶은 장난감을 고르기도 합니다.
돼지국밥 한 그릇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놀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 500원을 내고 뽑기를 하는 모습
가만히 보니 한쪽에는 500원을 내고 뽑기를 하는 복지 복걸 게임 같은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 아이와 비눗방울 놀이도 하였습니다.

비눗방울을 따라가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시댁 동네 대천리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어르신들은 모두 이웃분들이었습니다.
옹기종기 앉아 맛있는 음식도 먹고 운동장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을 즐기고 계셨습니다.
"아이고! 내동댁 셋째 며느리 아이가?"
"안녕하세요."
"시어머님은 잘 계시나?"
"네."
"추석에 보긴 했제."
 "....................."
"맛있는 것 좀 무거라."
"네. 그럴게요."
어머님이 계시면 이것저것 챙겨주며 먹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괜히 머쓱하고 먹는 것에도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조금만 건강하셨으면 함께 운동회를 바라볼 수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오늘 따라 어머님이 그리워집니다.
전화라도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
"어머님! 접니다!"
체육대회 다녀왔다고 어머님의 절친한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전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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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유용한 정보 나눔2011.09.06 05:50

 

이물질로 손상된 사진 되살리는 법



얼마 전, 아이들 사진첩을 정리하였습니다. 요즘에야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관리하다보니 엘범이라는 자체가 없어졌지만, 우리 아이들 어릴때에는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차곡차곡 끼워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추억이 담긴 필름사진에 커피나 주스 등을 쏟아 손상 되었다면 대략난감일 것입니다.  필름이 있다면 다시 뽑거나 스캔을 해서 뽑을 수는 있지만, 추억의 세월을 같이한 사진이 훼손되어 있다면 정말 속상한 일일 것입니다.

몇해전에 바닷가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다 그만 실수로 커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이걸 어쩌나?'
언젠가 메모해 두었던 게 생각나 찾아 보았습니다.


자! 그럼 사진 되살리는 법 한 번 보실래요?



㉠ 이럴 때 물만 있으면 됩니다. 사진을 통째로 물에 담가서 닦기만 하면 OK!~ 
     절대 손이나 휴지로 닦으면 안 됩니다.




㉡ 손으로 문질러 이물질을 제거한다.




㉢ 드라이로 찬바람으로 살살 말려준다.



▶ 어때요? 감쪽 같지요?




▶ 그 원리는 무엇일까요?


사진은 종이위에 젤라틴 층과 젤라틴 층을 보호하는 얇은 비닐코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진 전체를 사진 전체를 물에 담그게 되면 젤라틴 층이 부드러워져 이물질이 씻겨 나가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리고 사진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세대는 사진이 더 좋고,
여행 다녀오면 남는 게 사진뿐이라는 생각 가지고 지냅니다.
아무리 발전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옛날이 그리운 건...추억때문이겠지요.

이물질이 묻었을 때 티슈나 손수건으로 닦으면 사진을 영영 복구 할 수 없음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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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여름의 끝자락! 봉숭아 꽃물 예쁘게 들이는 비법

아파트 화단에 핀 봉숭아꽃을 보니 손톱에 물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작년에 들이며 사 두었던 백반도 있고 하여 경비실에 말을 하고 꽃과 꽃잎을 뜯어왔습니다.

성격상 손톱도 길게 기르지 못하고 색깔있는 매니큐어는 아예 바르지 않지만, 일년에 한 번 봉숭아꽃물을 꼭 들이고 있습니다. 추억의 시간이라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생각나기도 하구요.


학원을 가기 위해 일찍 집으로 온 딸아이에게 테이프를 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딸! 너도 해 줄까?"
"아니, 시간없어. 학원가야 해."
얼른 일어나 달아나 버립니다.

하룻밤을 지내고 저녁이 되자 밖으로 나갔던 가족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맨 먼저 들어온 남편이 손톱을 보여줬더니
"우와! 이쁘게 들었네."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들 녀석
"꼭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엥???"
"징그럽다구!"

참 묘한 반응이었습니다.
남편의 말과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말입니다.
그래도 남편은 엄마와 딸과 다정하게 공감하며 꽃물들이는 나눔을 알고 있기에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녀석은 그저 핏빛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녀석들에게 무슨 추억을 남겨줘야 할까요?


봉숭아 물을 들이고 나면 손톱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 들어버려 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방법 1. 꽃잎과 꽃을 함께 찧어 바로 올려둔다.


 

작년에 물들인 것이며, 분홍빛으로 조금 연하게 들여집니다.

3~4시간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단점입니다.

 



★ 방법 2  : 매니큐어와 테이프를 이용한다.



㉠ 손톱만 제외하고 손 마디 하나 정도까지투명 매니큐어를 발라준다.
㉡ 봉숭아꽃 잎을 찧어 손톱 위에 올리고 비닐을 감고 테이프로 감아준다.
    (실을 사용하면 잠잘 때 이리저리 움직여 이불에 물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테이프로 감아주면 아침까지 곱게 물들일 수 있답니다.) 

 ㉢ 손가락에 칠했던 매니큐어는 아세톤으로 지워주면 손톱에만 곱게 물이 들어 있답니다.



세월이 가면 손톱이 자라날 것입니다.
조금씩 잘려나가고 반쯤 보일 때가 제일 예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손톱 끝에 남은 봉숭아꽃물.....

손톱을 쳐다보며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어야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무언가 쫓기며 사는 우리
하룻밤을
기다리는 여유로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추억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여름의 끝을 잡아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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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아련한 여름 날의 추억 '소 먹이기'





방학이지만 여유로운 생활은 꿈같은 세월이었습니다.
37일간의 연수로 인해 더운 여름을 잊고 지내고 있습니다.

휴일은 일찍 일어나 가족들 아침밥 해 먹이고 서둘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시험을 치고 나니 마음의 여유는 조금 있어 뒷산을 오르는데 저 멀리 산천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농부로 인해 풀을 뜯고 있는 소 한 마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사료를 먹이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은 우리에서 살만 찌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를 본다는 건 힘든 일이 되어버렸지요.






우리가 어릴 때에는 집집마다 소 한 두 마리씩은 다 키웠습니다.
잘 먹여 새끼를 낳아 자식들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름에는 일일이 풀을 베다 먹이고, 겨울에는 여름 내내 베어서 말린 건초와 볏짚을 썰어서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습니다.
그래서 풀을 모으는 일은 일거리가 되었습니다.  꼴망태를 메고 저도 풀 베는 일은 자주 했습니다. 일이 서툴러 낫만 들고 나갔다 하면 반은 다쳐서 오기 일쑤였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왼손가락에 수도 없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나 여름 방학 때는 소와 관련된 추억이 많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놀다가 오후가 되면 각자 소를 몰로 나옵니다.

산기슭에서 소를 방목하고는 해질녘쯤에 산꼭대기에 소와 아이들이 다 모입니다. 그 시간까지는 여자아이들은 땅 따먹기나 공기놀이를 하고, 그것이 싫으면 가지고 간 책을 나무 그늘에 앉아 읽기도 했습니다. 또, 편편한 잔디밭 찾아 패차기등
특히나 즐겨했던 진똘이 놀이 여러분은 알까요?
요즘 야구와 같은 것으로 투수가 검은 고무신을 던지면 손으로 치고 내 달리는 게임이었습니다.

기한 것은 소들도 길을 알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곤 했습니다.
소를 다 먹이고 집으로 향하면서 고삐를 잡으려다 뒷발질을 하는 바람에 숨도 못 쉬고 헥!~~~ 넘어 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후 소가 무서워져서
"아부지!~ 나 소 먹이려 안 갈래요!~"
"허허..괜찮어 소는 무서워하면 더 덤벼..그러니 무서워하지 말고 눈으로 이겨봐" 하신다.

해가 니읏니읏 질 때까지 잘 놀다가 집에 갈 때가 되어 각자 자기 소를 찾는데
아무리 봐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 소!~~
놀란 토끼 눈으로 집으로 달려와
"아부지!~ 우리 소가 없어요!~ , 어딜 갔는지?"
"그래? 어두워지기 전에 찾아보고, 안되면 횃불 준비해야지.."
동네 어르신들 모두 총동원되어 찾아 나섰던 밤길...목에 방울을 달았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녀석은 고개를 하나 넘어 묘지 옆에서 편히 누워 있어 데리고 와 한시름 놓곤 했던 기억도 있었지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하는 소는 우리 어릴 적 든든한 일꾼이었지요.
논, 밭 갈아야 할 때 어김없이 나가 열심히 아버지와 함께 하고 우리 집 마구간에 버티고 있는 정겨운 동물이었습니다. 커다란 눈 껌벅껌벅 잘 길들여진 암소의 모습은 이제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저 그리움만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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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공감 블로그> 분위기와 추억을 함께 먹는 녹차 수제비



며칠 전, 고등학생인 두 녀석은 휴일이지만 학교에 가 버리고 우리 부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도시락을 싸 보냈기에 그냥 간단하게 먹으면 될 것 같아 점심을 차리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옵니다.
"여보! 우리 밖에 나가서 점심 먹자!"
"당신 약속하는 것 같더니."
"옆 자리에서 먹으면 되지. 혼자 어떻게 먹어 그냥 가"
"뭐 먹으러 가는데?"
"응. 수제비"
수제비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진양호 부근에 있는 '백 년이 필 무릅'입니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어릴 때 보고 자랐던 귀한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 백련의 유래
연꽃은 단지 아름답다는 뜻만 가진 게 아닙니다. 즉, 진흙탕에서 나서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합니다.  
"곧 더러운 물을 털어내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비유컨데 고원이나 육지에서는 나지 않고 낮고 습기가 있는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납니다. 또한 백련화는 연실동시하 랍니다. 꽃이 피는 것과 열매를 맺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복숭아 등 많은 꽃의 경우 꽃이 먼저 폈다가 지고나서야 열매를 맺는 것이 보통입니다. 또, 반대로 오이나 참외처럼 멸매를 맺고나서야 꽃을 피우는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






○ 입구에 능소화가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 밖에서 보면 연꽃을 닮은 토담집입니다.





▶ 식당 입구는 고향 시골 집 대문같은 느낌입니다.



               ▶ 진흙으로 만든 용입니다. 곧 하늘로 승천 할 것 같은 모습입니다.



▶ 소멍애입니다.


▶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피웠던 등잔입니다.




▶ 연꽃등입니다.



▶ 엄마가 사용했던 배를 짜던 배틀입니다.



▶ 숯을 채워 사용했던 다리미와 가위
 


▶ 다리미와 화로



▶ 불을 지필 때 사용했던 풍로입니다.



▶ 주인의 배려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해 두었습니다.


                  ▶ 메뉴판


▶ 우리가 시켜먹은 수제비입니다.


▶ 미역줄기, 배추김치, 오이양파생채입니다.


 

 


▶ 수저도 따로 나와 무엇보다 위생적이라 기분좋았습니다.


▶ 녹차와 함께 반죽한 수제비


▶ 깔끔하게 비웠습니다.

우리는 식당에 가면 어지간하면 더 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냥 나온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다 먹어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물쓰레기가 없으니 그릇 치우는 일도 설거지도 쉬울 것입니다.
깔끔한 맛....빈 그릇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2층에 올라가 봤더니 고상한 인테리어로 깔끔한 분위기가 풍겨 나옵니다.




어릴 때 보고 자랐던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추억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가까이 진양호도 있어 구경하기도 좋은 곳이랍니다.

한 번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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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 백년이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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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맛 있는 식탁2011.06.27 06:02


일주일의 여유, 친정엄마가 그리워지는 추억의 밥상



정말 세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쏘아 버린 화살처럼...
벌써 6월 말이니 말입니다. 태풍 피해는 없으신가요?

태풍과 함께 장마가 시작되는 바람에 집안 가득 눅눅한 습기가 사람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뭘 해 먹지?' 고민을 하면서 재래시장에 들렀더니 여름이면 친정엄마가 어렸을 때 자주 해 주었던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울외, 호박잎, 우엉잎, 죽순, 장록 등 ...
아버지가 장사를 나가시고 나면 들일과 집안일은 모두 엄마 몫이었습니다.
6남매 거둬 먹여가면서 부지런히 손놀림하셨던 엄마가 그리워졌습니다.
언제나 손끝이 야물어 못하는 게 없었던 엄마였습니다.
"막내야!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는 거야."
자상하게도 가르쳐 주었었는데....

이제 내가 딸에게 배워 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공부하느라 배울 시간조차 없는 딸이지만 언젠가 나 역시 하나하나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그리워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입니다.
여러분도 추억에 한 번 빠져 보세요.








1. 울외볶음


▶ 재료 : 울외 1개, 풋고추 2개, 붉은고추 1개, 간장 2숟가락, 올리브유, 깨소금, 참기름, 마늘 약간

▶ 만드는 순서


㉠ 울외, 풋고추 붉은 고추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향을 내 준다.
㉢ 썰어 둔 울외와 간장을 넣고 다글다글 볶아준다.
㉣ 거의 익을 무렵 고추를 넣고 깨소금 참기름을 마지막에 넣어 마무리한다.





2. 호박잎과 우엉잎쌈


▶ 재료 : 호박잎 100g, 우엉잎 100g, 양념장(간장 3숟가락, 깨소금, 참기름, 마늘 대파 약간)
▶ 만드는 순서


㉠ 호박잎과 우엉잎은 깨끗하게 씻어 삼발을 놓고 쪄준다.
㉡ 양념장을 만들어 준다.





3. 파래부각


▶ 재료 : 파래 한 줌, 깨소금, 참기름, 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건 파래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잘게 손질해 둔다.
㉡ 프라이팬에 참기름과 소금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준다.
㉢ 불을 올리고 바삭하게 구워주면 완성된다.


* 맛짱님에게 배운 요리입니다.


 

4. 무볶음


▶ 재료 : 무 1/3개, 파프리카(노랑, 빨강) 반 개, 간장 2숟가락, 물 2숟가락,
             깨소금, 참기름, 마을, 올리브유, 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무와 파프리카는 곱게 채 썬다.
㉡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향을 먼저 낸다.
㉢ 간장과 물 무를 넣고 볶아준다.
㉣ 무가 익으면 파프리카를 넣고 마무리한다.
    맛을 보고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5. 두부 참치볶음


▶ 재료 : 두부 1모, 참치 캔 1개. 붉은고추 1개, 청량초 2개, 올리브유, 깨소금, 마늘 약간
             양념(물 3숟가락, 간장 3숟가락, 물엿 2숟가락)

▶ 만드는 순서



㉠ 두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올리브유에 노릇노릇 구워준다.
㉡ 참치는 양념과 함께 냄비에 붓고 볶아준다.
㉢ 두부를 넣고 졸여주고 썰어둔 고추를 넣고 마무리한다.
    매콤한 청량초가 들어가 더 맛있었습니다.


* 옥이님에게 배운 요리입니다.



6. 닭날개 간장조림

 

▶ 재료 : 닭날개 1봉(15개 정도) 양파, 파프리카 반개식, 청량초 2개,
             양념장(진간장 3숟가락, 물엿 2숟가락, 깨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닭날개는 손질하여 노릇노릇 구워준다.
㉡ 양념장을 붓고 자작하게 졸여준다.
㉢ 고기가 익으면 채소를 넣고 마무리한다.

 

 

7. 장록(자리공) 초무침



▶ 재료 : 장록 100g, 고추장 1숟가락, 식초 2숟가락, 깨소금, 마늘 약간
▶ 만드는 순서


㉠ 장록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삶아낸다.
㉡ 삶아낸 장록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양념에 무쳐주면 완성된다.




8. 멸치 견과류볶음

 

▶ 재료 : 멸치 100g, 견과 약간
                양념(진간장 1숟가락, 물 3숟가락, 물엿 2숟가락)


▶ 만드는 순서


㉠ 멸치는 이물질을 제거한다.
㉡ 멸치와 양념을 넣고 볶아준다.
㉢ 맛이 들면 견과류를 넣어 마무리한다.


 




 

9. 마늘종볶음


▶ 재료 : 마늘종 100g, 적양파 반 개, 적파브리카 반 개, 올리브유, 깨소금, 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마늘종, 양파, 파크리카는 먹기 좋은 크길 썰어둔다.
㉡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을 넣어 볶아준다.
㉢ 맛이 들면 양파와 파프리카를 넣고 볶아준 뒤 마무리한다.




9. 죽순초무침


▶ 재료 : 죽순 1개, 사과 반 개, 풋고추 1개, 양파 반 개, 고추장 1스푼, 식초 2스푼, 깨소금

▶ 만드는 순서


㉠ 사과, 죽순, 풋고추,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준다.
㉡ 양념을 넣고 버무리면 완성된다.

 

 


 

11. 무청 시래기 된장국


▶ 재료 : 시래기 한 줌, 된장 1숟가락, 쳥량초 1개, 들깨가루 1숟가락, 마늘, 소금 약간
             멸치육수 3컵

▶ 만드는 순서


㉠ 시래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둔다.
㉡ 멸치육수에 무쳐 둔 시래기를 넣어 준다.
㉢ 들깻가루를 풀어 간을 맞춘다.

 

 

 

▶ 완성된 식탁 - 콩나물 깍두기 파김치와 함께 차렸습니다.



휴일 아침, 기말고사가 며칠 남지 않아 고등학생인 녀석 둘 7시에 깨우니 벌떡 일어납니다.
"엄마! 오늘은 뭐야?"
"얼른 먹어."
아침이라 그런지 선뜻 쌈을 싸 먹지 않아
"이것 한번 먹어 봐. 맛있어."
"호박잎이야?"
"이건 호박잎, 이건 우엉잎이야."
딸아이는 두 가지를 다 싸먹어 보고는 비슷한 맛이라고 말을 합니다.
아들 녀석은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아 쌈을 싸서
"아들! 한입만 먹어봐. 엄마가 어릴 때 먹었던 추억의 맛이야."
참새마냥 입을 크게 벌려 받아먹습니다.
"어때?"
"맛있네."
무슨 맛을 알긴 하겠습니까?
엄마가 먹었던 추억의 맛이라고 하니 받아먹는 것이겠지요.
"우리 엄마 오늘 외할머니 생각 많이 나는가보다."
"외할머니 얼굴 생각나?"
"어릴 때라 가물가물 하지."
"난 생각나"
그런데 우리 딸
"응. 엄마, 난 기억나. 공부 열심히 해라. 항상 그러셨거든."
우리 집에 오면 장난감, 우유통, 기저귀, 금방금방 치우고 삶고 빨아 늘어야 했던 성격이었고, 아직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너희 외삼촌처럼 공부 잘해야 한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게 하셨던 것 처럼 말입니다.
4~5살 때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 맞을 겁니다.
흐릿하게라도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저 행복한 추억의 식탁이었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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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그리움 가득한 추억 여행! 아카시아 파마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습니다.
담을 따라 빨갛게 핀 아름다운 장미와 냄새로 사람 발길을 끄는 아카시아 꽃입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만 조금 벗어나면 뒷산과 이어지는 농로가 있어 나란히 손잡고 걸으면 30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입니다.
코를 실룩거리며 아카시아 꽃이 핀 곳으로 가 아른거리는 추억 속으로 여행을 하게 됩니다.
"여보! 우리 잎 따서 가위바위보 놀이하자!"
"애기처럼 왜 그래?"
"왜? 재밌잖아! 얼른얼른!~"
"그럼 굴밤 맡기다."
"알았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습니다.
무엇을 하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굴밤을 맞아가며 도전하곤 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집에까지 들고 와 아이들에게 한 번 해 보라고 하니
"싫어! 엄마는 꼭 아기같애."
"한번만 해봐! 재밌어."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잠시 놀아 줍니다.


 ▶ 가위 바위 보를 하고 난 뒤, 잎을 떼어 내고 줄기만 남깁니다. 
▶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돌돌 말아줍니다.
▶  부드러운 머리는 1분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잘 나옵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미장원도 읍내로 나가야 있었습니다.
동네 이발소에서 깎거나 엄마가 직접 가위로 잘라주곤 했으니까요.
어쩌다 외지에서 하이힐을 신고 볕 양산을 들고 머리 파마까지 한 멋쟁이 아가씨가 지나가면
"양갈보, 똥 갈보!" 하며 놀려대곤 했었습니다.

사실은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워 아카시아 줄기로 파마를 하곤 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자 개구리 울음소리가 한창입니다.
내 귀에는 울음소리이건만, 노래소리이며 짝을 찾는 소리라고 하는 남편입니다.
아니, 내겐 고향의 소리였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헤며 꿈을 키웠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누렇게 익어 갈 보리와 밀 몰래 베어왔고,
남의 밭에 심어 둔 감자 캐서 구워 먹었던 감자 서리와 밀 서리,
과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숨어들어 따 왔던 참외 수박 서리....
이 모두가 아련한 추억이며 그리움이었습니다.

"엄마! 요즘 그러다간 경찰서 끌려가!"
"맞어."
그래도 엄마 아빠의 추억을 들을 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줘야 할까요?
그저 안타깝고 아쉬움만 남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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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나의 친구 우리들의 추억 ‘써니’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



감독/강형철
출연/ 유호정(나미),진희경(춘화), 홍진희(진희), 이연경, 심은경,진소라 ,김민영,박진주,민효린...


 


전라도 벌교 전학생 나미는 긴장하면 터져 나오는 사투리 탓에 첫날부터 날라리들의 놀림감이 된다. 이때 범상치 않는 포스의 친구들이 어리버리한 그녀를 도와주는데… 그들은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배틀 대표주자 진희, 괴력의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 나미는 이들의 새 멤버가 되어 경쟁그룹 ‘소녀시대’와의 맞짱대결에서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사투리 욕 신공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대활약을 펼친다.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공주 ‘써니’를 결성하고 학교축제 때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25년 후, 잘 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을 둔 나미의 삶은 무언가 2프로 부족하다. 어느 날 ‘써니짱’ 춘화와 마주친 나미는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는데… 가족에게만 매어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추억 속 친구들을 찾아나선 나미는 그 시절 눈부신 우정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

-다음 영화 홈페이지-





친구 같은 딸아이는 여고 2학년입니다.
중학생일 때는 늘 엄마와 함께 영화관을 찾곤 했는데 공부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이 혼자 다녀왔습니다.

영화관 앞에서 무얼 볼까? 하다가 바로 시작하는 '써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주부의 일상은 늘 그렇듯,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나'란 존재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인공 나미는 친정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7공주의 보스였던 암 말기 선고의 춘화와 추억을 나누던 중, 죽기 전 옛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춘화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20년 만에 친구 찾기를 선언하며 써니의 맴버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나미는 그 과정을 통해 그녀가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여고시절의 추억과 써니 맴버들과의 감동적인 재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나미의 기억을 통해 펼쳐지는 과거시절, 교복 자율화 시절 원색 옷으로 멋을 내고, ‘젊음의 행진’에 환호성을 지르며, 나미의 ‘빙글빙글’에 맞춰 춤을 추는 등 1980년대 소녀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살아내기 급급한 현실에 일곱 명의 아줌마가 예전에는 꿈 많고 발랄한 소녀였다는 사실은 70~80년대 문화를 누렸던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1. 아름다운 나의 여고 시절속으로


풋풋한 여고생인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 할 때면
"엄마는 친한 친구 없었어?"
"왜 없었겠어. 5 공주였어."
"정말?"
가끔 비가 오는날이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오래전 나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고,
아무런 걱정 없이 보냈던 10대 시절이 내게도 있었던가 싶어 아련하지만,
그저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고 3년 내내 우리 5명은 같은 반이었습니다.
분식집을 오가며 맛있는 음식을 사 먹었고,
몰래 몰려다니며 영화관을 찾기도 했으며,
깔깔거리며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노래를 잘 불렀던 친구,
부자의 딸이면서 깍쟁이였던 친구,
애교가 많아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친구,
성격이 좋아 누구에게나 인기 많았던 친구,
문학소녀를 꿈꾸었던 나,
우린 그렇게 함께 꿈과 희망을 키우며 여고시절을 보내었답니다.







모두가 도시 출신이었지만 유일하게 시골뚜기였던 나,
큰오빠 집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주말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시골로 향하였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가끔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몰러 가 시골 정취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여름엔 무쇠솥 밥 위에 호박잎 삶아 된장과 싸 먹었고,
겨울엔 소죽 끓인 가마솥에 고구마도 구워먹었습니다.

특히, 여름밤이면 고향 남자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잠자는 물고기를 칼등으로 두드려 잡아 매운탕도 끓여 먹었습니다. 뒷산에 올라 카세트테이프 눌려놓고 삼각 춤을 추기도 했으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가곤 하였습니다.



2. 영원한 밤의 친구였던 라디오와 음악

요즘은 개인별로 가지고 다니는 컴퓨터가 소통의 수단이었지만, 우리가 다니던 여고시절에는 라디오가 영원한 밤의 친구였습니다. 




이제는 중년이 된 주인공들의 사춘기 시절이 이야기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70~80년대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DJ가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틀어주던 음악다방을 찾아 내가 신청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정성스럽게 쓴 편지로 사연을 담아 보내면 내 이름이 전국 방송을 타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밤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 저에겐 향수 어린 감성을 느끼게 해 주었고, 젊은이들에게는 재미있는 풍경으로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 시절의 감성을 일깨우는 음악에 대한 추억으로 '써니'는 충분했습니다.

  그저 핑크빛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환상에 부풀어 있었던 10대 학창시절의 추억은 지금 각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였고, 순수했던 나의 여고시절 모습을 오랜만에 돌아보게 하는 기분 좋은 추억여행을 하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우리 다섯 명 중의 한 명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버렸고,
또 한 명은 남편 따라 중국에서 생활하고,
같은 하늘나라에서 사는 두 명의 친구는 이제라도찾아보렵니다.
만나, 아름다운 추억여행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 써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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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딸아이를 통해 본 34년 전 나의 아련한 여고시절


얼마 전, 여고 2학년인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공부에서 해방되어 신나게 놀다 오라고 옷 가방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방 속에 책이 보여
"야! 책은 뭐 하러 들고 가?"
"엄마! 수학여행 갔다 오면 바로 수학 수행평가야."
"그래도 여행 가서 공부하는 아이가 어딨어?"-
"아니야. 공부할 거 가져갈 꺼야. 못하고 와도."
그냥 가져간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것 같아 그냥 두었습니다.

3박 4일 아름다운 제주도를 보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조잘조잘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여행가방을 열어 빨랫감을 챙기는데 눈에 설은 옷가지가 보입니다.
"딸! 너 친구 옷을 가져온 거야?"
"엄마는. 빌러갔던 옷이잖아!"
"아! 그랬지! 내 정신 좀 봐"
기특하게도 친구들과 옷을 서로 빌려주고 빌려 입었던 것입니다.


                  ▶ 딸아이 친구의 고맙게 잘 입었다는 메모
 

깨끗하게 빨아 친구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는데 며칠이 되니 딸아이가 빌려 주었던 옷도 되돌아왔습니다. 옷 봉투 속에 든 친구의 메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와! 우리 딸 대견하네. 친구와 이렇게 잘 지내니."
"엄마는 그런 친구 없었어?"
"있었지."





오랜만에 여고시절을 담고 있는 노트 한 권, 나의 보물상자를 꺼냈습니다.
"우와 우리 엄마 문학소녀였었네"
친구들이 적은 편지, 명언, 시, 낙서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곱게 접어두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 들어 있는 노트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큰오빠댁에서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교복을 입고 까르르 웃으며 분식집으로 영화관으로 몰려다니곤 했던 여고생 네 명이 있었습니다. 1977년 ~ 1979년 삼 년 내내 같은 반을 하면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사이였으니 말입니다.

도시생활만 하던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시골로 함께 놀러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봄이면 봄나물도 뜯으러 소쿠리 들고 들판으로 나갔고 여름이면 소 먹이러 산으로 한여름밤 까까머리 남자 친구들과 횟불들고 물고기 잡으러 갔던 일, 가을엔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음이 난다는 수다쟁이들의 단풍놀이, 겨울엔 소죽 끓인 가마솥에 노릇노릇 군고구마 만들어 먹었었고, 청바지에 통기타 들고 고고 춤 추던 친구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하지만, 유독 가슴 아프게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누가 봐도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한 부부였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배가 많이 아파 병원으로 옮겼지만 ‘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00아! 잘 지내지?”
“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친구도 잘살고 있지요? 전화 안 한 지 제법 되네요.”
“....................”
“어머님! 어머님!”
“어........응.”
“무슨 일 있으세요?”
“사실, 00이가 저세상으로 떠났어.”
“네?”
“가수나. 무심도 하지. 그렇게 쉽게 우릴 떠나 버리네.”
장례까지 치르고 제게 전화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울먹이십니다.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가족들을 두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딸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면서 나 역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단발머리 여고시절과 25년 전의 기억 속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아이도 꿈많은 여고시절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꾸며나가길 바라는 맘입니다.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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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동화같은 동피랑마을 우체통에서 날아온 엽서

통영 여행 

일시 : 2011년 3월 31일 봄소풍

통영 근무할 때에는 이런 게 없었습니다.
통영 중앙시장 뒤편, 남망산 조각공원과 마주 보는 봉긋한 언덕배기에 '동피랑'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동피랑은 '동쪽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동피랑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있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달동네에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찾아듭니다.




동피랑 마을에서 두 번째 벽화 전이 열리나 봅니다.
4월 2일 ~ 4월 16일까지입니다.
아마 화가의 손에 또 다른 벽화의 모습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벽화가 그려지기 전 동피랑 마을은 철거 예정지였습니다.
통영시에는 마을을 철거하고 충무공이 설치한 옛 통제영의 동포루를 복원하려고 했고 주변은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던 것.

하지만, 2006년 11월 '푸른 통영 21'이라는 시민단체가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공모전을 열었더니 전국에서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골목마다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허름했던 달동네는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재탄생되었던 것입니다.



▶ 천가가 되어봅니다.



▶ 경상도 사투리 : 어서 오세요.






골목골목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합니다.
 




잠시, 통영 앞바다를 내려다 봅니다.



동피랑 구판장입니다.
빼때기 팥죽, 추억의 먹거리를 팔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자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숨바꼭질, 패차기 등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났습니다.
 


어린왕자
 



 









 






 
노을이가 늘 사용하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동피랑 마을을 다 보고 내려오는 길
"추억하나 만들고 가세요."
"네?"
"여기 보시고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이리 와 보세요."
나를 끌어당겨 클릭을 하고 메일 주소를 적어 넣으니 쏭하고 날아가는 게 아닌가.
"우와! 신기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메일을 열었더니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빨간 우체통에서 바다향 가득 싣고 날아온 사진입니다.

아련한 추억 여행을 하고 온 행복한 하루였답니다
.

즐거운 휴일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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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옷고름에 걸려 주안상 쏟았던 새댁의 굴욕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설빔 , 새 신발, 음식. 세뱃돈까지

가지지 못하고 입지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더 그리운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아이 둘도 사촌 형제들 만나는 재미로 명절을 기다리는 것 같더니 이제 중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기다려지지도 않나 봅니다.

어제는 딸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엄마! 우리 설빔 안 사 줘?”
“설빔?”
“응. 설빔 말이야.”
“며칠 전에 옷 사 줬잖아!”
“그것하고 같아?”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와는 달리 부족함 없이 가지고 싶은 것 말만 하면 되는 녀석들이지만 설빔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모처럼 실컷 먹고 주머니까지 훈훈했던 그 마음을 말입니다.

 

어릴 때에는 설을 앞두고 거미줄도 걷어내고,

가마솥의 황톳빛 엿물은 깨를 만나 강정과 유과가 되고

맷돌은 돌고 돌아 두부와 도토리묵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 해 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칼로 썰었었고,

형제들과 만날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린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설을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날이 다가와도 가슴이 뛰지 않고

더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때만큼 맛있지 않습니다.


명절이 되면 나를 부끄럽게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서른넷, 서른셋 노총각 노처녀가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처음 시댁에서 설을 보내는 날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계시다 보니 친척들과 이웃어른들이 많이 찾아와 술상을 계속 차려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새댁이라 평소 입지 않는 한복까지 차려입고 말입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지만 내색도 못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시어머님의 친정조카들이 우르르 몰려와 세배를 드리고 나니

“아가! 떡국 좀 끓여라.”

“고모님! 우리 그냥 갈게요. 안 먹어도 됩니다.”
“점심때인데 한 그릇하고 가”

“네. 그럴게요.”

얼른 술상을 먼저 차렸습니다. 어머님이 직접 만든 신문지가 붙은 강정과 형님들과 남편 흉보며 부친 전, 달콤한 식혜, 막걸리, 아껴두었던 문어 등을 담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옷고름이 밟혀 문지방에서 상 가장자리에 있던 강정과 전이 담긴 그릇을 방바닥에 쏟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옷 안 버렸으니 다행이다.”

“조심 좀 하지. 그랬냐?”

“죄송합니다.”

“괜찮다. 얼른 치워라.”

“...........”

주섬주섬 치우고 나오면서 어른들 앞에 얼마나 부끄럽던지....

 
장농 속 깊숙히 들어있는 한복이 되어버렸지만,
그 후 정확히 익혀 둔 옷고름 매는 법 잊지 않고 있답니다.

★ 옷고름 매는 법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젠 초가집 저녁연기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을 뿐, 어느새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도 무디어지고 입맛도 변해가는 것인지 설날에 대한 즐거움도 입맛도 예전 같지가 않지만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늘 우리의 가슴을 방망이질하던 첫사랑처럼,

다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행복에 젖어봅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osted by *저녁노을*


추억의 명절과 위급할 때 간단한 응급처치법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설은 5일간의 긴 연휴에다 맹위를 떨치던 한파의 기세가 꺾이면서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이 3,100만으로 예년에 비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힘이 들어도 언제나 엄마 품 같은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 있기에 어려움 참고 견뎌낼 것입니다.


  어머님의 실수때문에 시골집은 불타고 당신은 치매로 요양원에서 생활 한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우리 집은 시댁과 가까이 살고 있어, 멀리 있는 시동생들에겐 쉬어가는 간이역이었습니다. 이젠 음식을 만들어 사랑채에서 차례를 지내고 아버님 산소에 들렸다 와야하기에 분주히 손님맞이를 위해 더 신경 써 먼지를 털어 내었습니다. 오늘은 시끌벅적 삼 형제가 모일 것입니다.


섣달 그믐날이면 거미줄을 걷어내며 청소를 하시던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며 나의 어릴 때를 회상해 봅니다.


참 많이도 변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가족이 모여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조상을 생각하는 우리 고유의 명절의 풍속은 그래도 유지되는 것 같아 마음 흐뭇합니다.


하지만, 설날이 다가오면 설레었던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요? 명절에 대한 의미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과 변해가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첫째, 먹을거리의 변화


 

먹을거리조차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 눈깔사탕, 고구마 등이 유일한 간식이었고, 명절 때가 되어야 지글지글 기름 냄새 풍기며 전을 붙어 내었고, 육 고기, 과일들을 제사상에 올리고 난 후 배불리 먹을 수 있기에 한없이 기다렸던 어린 마음. 지금은 내 입맛에 맞는 것 골라 먹을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니 말입니다.



둘째, 사라진 설빔


 

때때옷, 검정 고무신 오일장에 가셨던 아버지, '우리 막내 꺼' 하시며 내 손에 쥐여주면 내일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품에 꼭 안고 잠자리에 들곤 했었던 그 시절. 어제는 딸아이에게 옷 하나를 사주며 ‘설빔이야’라고 했더니, “설빔은 무슨~”라고 하는 게 아닌가. 허긴, 언제나 가게에 가기만 하면 늘린 게 좋은 옷들인데 무슨 설빔이 필요하겠는가. 설빔보다 소풍 가는 날, 여행 가는 날 옷 하나 사 주는 걸 더 좋아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셋째, 목욕문화


 

목욕탕 시설 되어 있지 않은 시골에서 섣달 그믐날이면 가마솥에 물을 끓여 차가운 공기 맨몸으로 맞으며 앉아 있으면 거친 어머니의 손길 닿아 깔끔하게 씻어 주시곤 했었습니다. 요즘에야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잘 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씻을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시어머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갔더니 머리를 닦아주는 저를 보고 아주머니 한 분이

“친정 엄마여?”
“아뇨. 시어머님입니다. 엄마는 벌써 하늘나라 가시고 안 계십니다.”

“아이쿠! 씻겨서 감겨서 잘하네.”

“난 엄마 모시고 한번 도 목욕탕 못 와 봤는데.”
“...........”

그러고 보니 정말 나도 엄마랑은 목욕탕 같이 한번 가보질 못하였습니다. 뭐가 그렇게 바쁘셨는지....괜히 그 말씀을 듣고 보니 미안한 마음 가득하였습니다.




다섯째, 세뱃돈


 

용돈이란 걸 모르고 살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떡국 끓여 머리에 이고 다니며 온 동네를 돌고 돌아오면 손이 꽁꽁 얼었고, 그래도 방앗간을 하시며 돈을 만지시는 큰엄마가 세뱃돈 주시는 10원짜리 한 장에 입이 귀에 걸렸던 나의 어린 시절. 지금은 초등학생에게도 만 원짜리 한 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 자라면서 설날엔 용돈을 받으려 가야 한다는 녀석들의 얄팍한 마음도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밖에만 나가도 먹을 것 지천으로 깔려있고, 멋진 마네킹이 폼을 잡고 서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발길 머물게 하고 있어 우리가 자랐던 정서와 너무도 많이 변한 아쉬울 것 없는 풍족한 생활이요, 삶인 것 같습니다.


그 추억, 그 그리움은 지금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오늘은 시댁에 가서 우리 아이들과 흙을 밟으며, 지혜로웠던 우리 조상님들의 정서와, 어릴 적 없이 살아왔어도 온정 가득하였던 그 시절의 이야기보따리를 온 가족이 모여 나눠 보는 그런 섣달 그믐날 되었음 합니다.






한정된 길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차들로 고향 가는 길은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 와중에 또 멀미까지 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입니다.

간단한 응급처치법 알려드리겠습니다.

1. 차멀미에는 박하사탕

차멀미에는 사탕이 효과가 있을까?

멀미는 비장과 위장이 허약한 사람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비, 위장의 힘을 강화해주는 맛이 바로 단맛입니다. 따뜻한 꿀차가 가장 적격이지만 차 안에서는 무리이며 가장 휴대가 간편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사탕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박하향은 매운맛이기 때문에 늘어지고 지친 위를 도와줍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박하사탕이 좋다는 것. 그리고 명심할 것은 본래 비장과 위장이 허약한 경우도 있지만 요즈음은 차가운 음료와 물, 음식의 섭취로 위가 허약해진 경우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멀미가 잦은 사람이라면 평소에 위장이 지치지 않도록 잘 관리해주고 차가운 음용수를 줄이며 사탕을 휴대해 보길 권합니다.



2. 변비가 심하거나 복부에 가스가 찰 때

운동부족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변비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손바닥 중심이 배꼽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상행결장, 횡행결장, 하행결장이 위치해 있다. 대장의 활동을 도와주기 위해 그림과 같이 압박 마사지를 해 주면 좋다. 급성이나 만성변비 모두 효과적이며 특히 오랫동안 누워서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나 노인성 변비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좋으며 수술 후 장운동을 촉진하는 데 응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① 손바닥 중앙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쓸어 주듯 압박 마사지를 한다. 
  ② 가운뎃손가락을 뒤로 젖힌다.

  ③ 양손을 교대해서 압박한다.



3. 열이 날 때와 체했을 때


멀리 떠날 때에는 볼펜처럼 생긴 침을 가지고 다니면 도움이 됩니다.
시골에서 병원은 멀리 있고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프고픈 게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음식을 잘못 먹고 체했을 때
갑자기 열이 날 때
응급처치법으로 좋습니다.

사혈 침이 없다면 꾹꾹 눌러줘도 도움이 된답니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명절 되시길 빕니다.

고향 잘 다녀오세요.^^







Posted by *저녁노을*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이 살아 있는 내 고향


사람은 자라고 꿈을 키워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죽어서도 고향 땅에 묻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니 말입니다.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내 고향 친정집에는 지금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6남매의 막내라 부모님의 사랑 오래도록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휴일 남편과 함께 다녀온 친정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기에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 같은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이 살아 있는 곳이기에 언제나 정겹기만 합니다.












가을은 벌써 우리곁에 와 있었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과 그리움만 가득한 곳입니다. 
친정하면 떠오르는 것들입니다.


첫째, 부모님 산소

아버지는 막내가 시집가는 것도 보질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몸이 아파 누워계시면서도
"우리 막내 시집가는 건 보고 죽어야 할 터인데."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건만 결국 불효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6남매 공부시키기 위해 농사일을 하시며 5일장을 도시며 소 장사를 하셨습니다. 엄마는 아이들 키워가며 집안일과 들일을 알아서 해내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큰오빠가 대학을 다니니 모두가
"저 사람 미쳤어. 미쳤어." 놀려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의 집 머슴살이까지 해 가며 살아오신 아버지는 서당 앞에도 가 보질 못했기에 자식공부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흉을 보고 욕을 하던 동네 사람들이 세월이 흐른 뒤, 가장 부러워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번듯하게 잘 키운 자식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부모님 덕임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리운 것 같습니다.




둘째, 큰오빠의 산소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참 많은 희생을 하신 분입니다. 국민학교 선생님으로 발령받아 늦은 결혼을 하여 이북에서 내려온 처가 식구들과 동생들을 데려다 먹이고 학비까지 마련해주며 항상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맏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운명 같다고 말을 합니다. 그 많은 식구 아무런 불만없이 챙겨가며 살아가는 큰오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 대신이었습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수목장을 원하였으나 형제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부모님보다 조금 앞쪽으로 평 묘를 하게 되었습니다. 봉분이 없어 성묘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장갑 낀 손으로 쓱쓱 문지르면 반질반질 빛을 발합니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바뀌어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 큰오빠'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따뜻한 분이 환갑의 나이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립지 아니하겠습니까?
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아픔입니다.


셋째, 재래식 화장실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가끔 한 번씩 가면 가게 되는 재래식 화장실입니다. 한여름밤 이웃집 할머니가 들려주는 귀신이야기를 듣고 나면 화장실 가는 일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엄마! 나 화장실"
"갔다 와."
"무섭단 말이야."
"아이쿠! 우리 막내 할머니 이야기 듣고 더 무섭나 보네."
엄마는 호롱불을 들고 화장실 앞에 서 있어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에는 엄마가 오빠를 시켜 앞에서 지키고 서 있으라고 명령을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할 수 없이 하면서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갑자기 호롱불이 사라져 버리면
"오빠! 오빠! 어디 간 거야? 나 무섭단 말이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얼른 걸어 둔 책 한 장 쭉 찢어 대충 닦고 나오면
"으히히히히히~"
손전등을 얼굴에 갖다 대고 귀신 흉내를 냅니다.
"엄마야!" 화들짝 놀라 달아나고 보면 오빠임을 알아차립니다.
오빠들은 놀라 울음보를 터뜨리는 막내의 모습이 재밌었나 봅니다.




넷째, 고추장 간장이 익어가는 장독대 

햇살 먹으며 간장이 익어가고 고추장 된장이 맛 들어갑니다. 온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곳입니다. 엄마는 늘 반질반질 빛이 나도록 깔끔하게 장독을 닦으셨습니다. 장맛은 그 집의 음식 맛을 좌우하였기에 그렇게 정성 들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장독대만 보면 엄마 생각이 절로 납니다.

엄마는 몸이 안 좋아 우리 집에서 3개월 정도 생활하시다 몸을 가누지 못하신 지 3일 만에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정말 그렇게 쉽게 가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효도도 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장독을 뒤져보니 온갖 물건들이 다 나왔습니다. 야무지게 담아놓은 연시, 말려놓은 나물과 콩, 그것을 본 큰 올케는
"우리 어머님 정말 대단해. 부엉이 엄마야."
"왜 부엉이 엄마야?"
"온갖 것 다 모아두잖아."

비를 맞고 먼지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 꼭 엄마가 손질해 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장독 속은 텅 비어 있어 마음 씁쓸할 뿐입니다.


  

다섯째, 아련하게 들려오는 문풍지 소리와 무쇠솥

방에 보일러만 놓여 있는 개량하지 않는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조카들이 와서 침을 발라 문구멍을 내고 놀기도 했고 추운 겨울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얼어붙어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코를 시리게 했던 겨울바람에 사각사각 문풍지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부엌에는 아직도 반질반질한 무쇠솥이 걸려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들에 나가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아 불이 지펴가며 처음 밥을 했는데 3층 밥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 막내딸 기특해. 잘했어."
하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물은 손등 위로 올라오게 붓고 불은 끓어오르면 조금 있다가 꺼 버려야 타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뒤에는 정말 맛있는 밥을 척척해 내곤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오지 않아 아쉽습니다.)
   


여섯째, 현대의 자동차와 같았던 리어카

어릴 때 리어카는 지게와 함께 유일한 운송수단이었습니다. 좁은 들길을 걸어올 땐 아버지가 지게를 태워주었고, 큰길에는 리어카를 태워주곤 했습니다.
"우리 막내. 아부지가 태워줄까?"
"응."
두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손에 들려 올라타곤 했으니까요.

한 번은 리어카로 크게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오빠들이 짐을 실으면서 막내인 나에게 리어카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뒤를 발로 눌러 실어야 할 텐데 그냥 무거운 짐을 올리다 보니 리어카가 들려 나의 턱을 올려쳐 유치가 부러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엄마는 놀라 뛰어왔고 오빠들은 혼이 났습니다.

방아를 찧으러 가면서 남편이
"당신 오랜만에 한 번 타 볼래?"
"좋지."
천천히 굴러가는 두 바퀴로 나의 추억도 뒷걸음질치고 있었습니다.




일곱째,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정미소
▶ 동네 앞 느티나무
어릴 때 둘째 오빠는 호박에 말뚝을 박을 정도로 장난이 심했습니다. 동네 무슨 일만 생기면 어른들은 우리 집으로 찾아와 둘째 오빠를 찾을 정도였으니까요.
가을이 되면 포구나무에는 검은 열매가 많이 열립니다. 워낙 높다 보니 여자 아이들은 따먹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나무타기 전공인 오빠는 쪼르르 올라가 열매를 따서 나눠주곤 했습니다.
"포구 줄게. 아~ 해 봐."
한 개 얻어먹어 보려고 크게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으면 침을 뱉어 놀리기 시작합니다.
"엄마! 오빠 좀 봐! 응 응 응" 울음보를 터뜨리면
"알았어. 알았어. 줄게 줄게."
오빠가 겁을 내는 사람은 엄마뿐이었습니다.






▶ 정미소 풍경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니 50년은 넘었고 아마 꽤 오래된 정미소입니다. 지금은 사촌오빠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락 한 포를 찧으면 쌀 1되 받고, 아니면 5천 원 현금을 받기고 합니다. 운영상 애로가 있지만 가지고 있으니 그냥 정미소를 돌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요즘 아이들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고 지냅니다. 오죽하면 쌀나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정미소에서 왕겨가 나오고 현미와 하얀 쌀이 내려오는 걸 보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걸 보면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덟째, 여자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수다가 가득했던 빨래터

토닥토닥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방망이 소리가 들려와 달려가 보았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디서 예쁜 새댁이 와서 사진을 찍노?"
"안녕하세요? 저 정수댁 막내딸입니다."
"아이쿠! 그래 말을 하니 알아보것네. 우리 딸하고 동기 아이가."
"네. 맞아요. 친구도 잘 지내죠?"
"응. 부산서 잘살고 있다."
"어머님은 건강하시죠?"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지."

친정에는 아직도 빨래터가 남아 있습니다. 여자들이 모여 이런저런 일들로 수다를 떨며 빨래는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곳입니다.

저렇게 어르신들을 보니 먼저 가신 엄마가 더욱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홉째, 입가를 검게 물들이며 따 먹었던 까마중

우리가 자랄 70년대는 먹거리가 없어 늘 배고픔에 허덕였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들판에 산에서 나는 열매가 어린 녀석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습니다. 여름이면 까맣게 익어 있는 까마중을 따서 입이 검어지도록 먹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열 번째, 멱감던 시냇가


학교 갔다 오면 책보를 마루에 던져놓고 익지도 않은 감 하나를 따서 시냇가로 달려갔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물가에서 수영을 즐겼습니다.
'감을 던져놓고 먼저 잡기'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놀고 나면 돌멩이로 감을 쪼개 떫은 풋감을 나눠 먹곤 했습니다.

또, 막내로 자라 동생이 없었기에 큰오빠가 늦장가를 가서 낳은 조카가 왜 그렇게 예쁘던지. 중학교 때인가? 시골로 놀러 온 조카를 데리고 물놀이를 하다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 조카가 자라 35살이 되어 시집까지 갔으니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물이 아니지만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옛날이 더욱 떠올랐습니다.

고향은 그래서 엄마 품 같다고 하나 봅니다.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니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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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추억여행을 떠난 '비 오는 날 진양호 풍경'


휴일,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청소를 끝내고 나니 할 일이 없어 멍하니 TV만 보고 앉았습니다.
"우와! 심심해. 우리 어디 갈까?"
"비가 오는데 어딜가?"
"비 와도 차 타고 가는데 뭘."
"드라이브 가자."
비를 뚫고 밖으로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마땅찮습니다.
"우리 진양호 갈까?"
"응. 찻집이나 갔다 오자."

금방 도착하는 진양호는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옛날 우리가 맞선을 보고 난 뒤 첫 데이트 장소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잔잔한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고,
은은한 촛불이 있고,
심금 울려주는 노래가 흐르고,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행복을 찾아 나선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십팔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레스토랑은 변함없는 분위기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 데이트 장소였던 찻집 풍경


▶ 진양호 전망대 풍경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 형성된 서부 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각종 위락시설을 고루 갖춘 관광객의 쉼터입니다. 이곳은 경남 유일의 동물원을 두고 있어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기린 등 야생동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 참 많이 찾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3층 규모의 현대식 휴게 전망대로 시원하게 트인 넓은 호반과 주변 시가지, 지리산·와룡산·자굴산·금오산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진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이곳은 영화 하늘정원(안재욱, 이은주 주연)의 촬영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멀리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1년 계단과 연결되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상락원 가족 쉼터와 연결된 가족들의 휴식코스로, 동물원·진주랜드와 연결되어 오락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진주의 명소랍니다.



눈빛만 보아도 행복하고, 손 깃만 스쳐도 사랑스러웠던 때, 설레임 가득 안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몰고 갔던 차가 어찌 된 영문인지 펑크가 나 있어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릅니다.
당황만 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알아서 척척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보기와는 다르게 차분하게 가까운 정비소로 몰고 가도록 하고, 펑크 난 타이어를 바꾸어 끼우고 집으로 몰고 가게 했던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차 한잔을 마시며 
"우리가 언제 또 이런 시간 내 보겠어? 정말 좋다."
"그러게"
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한가한 시간 낸다는 건 쉽지 않기에 말입니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안개비에 쌓인 호반을 내려다보며 행복함에 빠져들었습니다.

▶ 전망대





▶ 오디 스무디 한 잔을 마셨습니다.


▶ 까치 한 마리가 빗방울에 젖어 날개짓을 합니다.


▶ 안개속에 쌓인 진얀호는 포근하기 까지 합니다.


▶ 365 계단 입구


▶ 남인수 동상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진양호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365 계단도 밟아보고, 남인수 동상과 버튼을 누르니 바로 흘러나오는 8곡의 노래, 어둠이 내려앉는 진양호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하루였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하지말고 가끔 이렇게 뒤돌아 보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여유 부리며 누린 추억속으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둘만의 추억을 가진 장소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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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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