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정보 나눔2014.01.28 06:01

명절 음식 쉽게 만드는 노하우





명절이 가까워졌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 마음만 바쁩니다.
차례상에 오르는 설날 음식 은근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요령만 알고 있으면 아주 쉽고 간단하게 또 맛있게 할 수 있답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남편 흉봐가면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곤 합니다.
 
20년 넘게 명절을 보내면서 차례 음식과 손님 치르는 일이 스트레스가 아니라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온 가족이 함께 나가 영화를 보거나 찜질방에 가서 피로를 푸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짐이 뒤집는 삼촌, 이것저것 심부름하는 조카, 누구 하나 앉아서 노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그럼, 초보주부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달걀 지단, 깔끔하게 잘 부치는 법

▶ 재료 : 달걀 3개, 올리브유, 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알 끈을 제거하고 식초를 한 두 방울 넣어준다.
㉡ 거품이 나지 않게 아래위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끈을 끊어준다.
㉢ 거품은 걷어낸다.
노른자에는 수분이 없어 벅벅 함으로 흰자를 두 숟가락 정도 넣어 저어구워낸다.


★ 곱게 부치는 노하우

 달걀을 깬 후 거품기로 노르자와 흰자를 천천히 저어주어도 됩니다.
거품이 나지 않게 살살 저어주셔야 합니다.
거품이 일면 프라이팬의 열기 때문에 달걀 속의 공기가 팽창하면서 지단이 우툴두툴해지고 모양이 잘 안 잡혀 보기 싫어진답니다.

그리고 풀어둔 달걀에 식초를 한두 방울 떨어뜨린 다음 약한 불에서 익히면 프로 주방장 작품처럼 깔끔하게 부칠 수 있답니다. 식초의 아세트산 성분은 달걀 단백질 사이의 결합구조를 강화시킵니다. 따라서 기포도 없고 모양이 잘 잡힌 단단한 지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동그랑땡 아주 쉽게 부치는 법


▶ 재료 : 두부 반 모, 돼지고기 갈은 것 100g, 청량초 2개, 달걀 3개, 밀가루 4숟가락, 대파, 당근, 적양배추, 부추 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두부는 면보에 꼭 싸 준다.
㉡ 돼지고기는 양념(간장 2숟가락, 참기름, 깨소금)하여 전자렌즈에 살짝 돌려준다.

㉢ 청량초 대파는 잘게 썰어 넣어 주고 소금으로 간한다.
㉣ 랩에 싸서 신선도 실이나 냉동실에 약간 얼려 썰어준다.


㉥ 비닐에 밀가루를 넣고 이리저리 흔들어 옷을 입힌다.
㉦ 
풀어놓은 달걀 물에 옷을 입혀 노릇노릇 구워내면 완성된다.








3. 돼지고기 수육 맛있게 삶는 법


▶ 재료 : 돼지고기 삼겹살, 굵은 소금, 월계수 잎, 생강
▶ 만드는 법

㉠ 물은 돼지고기가 잠길 정도, 굵은 소금 한 숟가락, 월계수 잎 3~4장, 생강 1쪽을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돼지고기를 넣어준다.
㉢ 뚜껑을 닫고 1시간만 삶아준다.







4. 초등학생도 따라 만들 수 있는 밥솥으로 쉽게 식혜 만들기


엿기름은 소화를 촉진하는 아밀라제가 풍부합니다.

▶ 재료 : 밥솥, 엿기름 티백 5개, 물 10컵 정도, 설탕 1컵, 찹쌀 1컵

▶ 만드는 순서


㉠ 밥물은 평소보다 적게 부어 짓는다.
㉡ 밥이 다 되면 물을 붓고 엿기름 티백을 넣어준다.
㉢  밥솥을 보온상태에 두고 5시간 정도 둔다.
밥솥 뚜껑을 열어 둔 채 설탕을 넣고 취사버튼을 눌러 끓여주면 완성된다.
㉤ 밥알 일부분을 물에 넣고 따로 끓여야 식혜 위에 동동 뜬다.






5. 문어, 부드럽게 삶는 비법


▶ 재료 : 문어 1마리, 설탕, 식초 약간

▶ 삶는 방법

㉠ 설탕을 2숟가락 정도 넣어 조물조물 문질러가며 씻어준다.
㉡ 문어 먹물과 내장을 살짝 떼어낸다.
 
* 손질을 할 때는 설탕으로 하면 문어가 좀 더 부드러워지면서 탄력을 유지한답니다.

소금을 쓰면 더러운 모래를 씻어내는 것 외에도 살에 탄력을 주고 상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맛까지 함께 나간다는 데 문제가 있답니다. 소금이 아닌 설탕을 사용하면 소금과 반대로 재료에 배어있는 수분을 유지하면서 오래 저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물로 깨끗하게 씻어준다.

㉣ 무를 썰어 넣어 끓이다 문어를 넣고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


끓일 때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는 것도 또 다른 아이디어. 무를 함께 넣으면 디아스타제라는 소화효소가 문어살을 한층 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식초 문어 특유의 맛을 없애주고 육질을 부드럽게 해 줍니다.



 ㉤ 물이 끓어오르면 바로 건져내 찬물에  씻지 말고 불순물만 제거한다.
㉥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차례상에 그대로 올린다.

 



6. 마른문어 모양 예쁘게 내는 노하우


▶ 재료 : 마른 문어 1마리, 가위

▶ 만드는 순서


㉠ 문어를 2등분으로 나눠 문양을 내야 합니다. 같은 크기로 여러 번 가위질을 해 줍니다.
㉡ 여러번 자른 것을 길게 한 모양이 되게 해 줍니다.
㉢ 양쪽으로 똑 같은 모양을 냅니다.
㉣ 손으로 모양이 나게 펴 줍니다.






7. 나물 맛있게 만드는 노하우

나물을 무칠 때 어간장을 추천합니다. 어간장은 생선을 삭혀 만든 장으로 피시 소스라고도 하는데, 제주도와 통영에서 많이 먹습니다. 나물 양념으로 어간장 몇 방울과 국간장을 섞으면 감칠맛이 난답니다.

▶ 재료 : 고사리, 밀가루 약간

▶ 만드는 순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말린 고사리는 질긴 식감을 없애는 것입니다. 고사리를 삶을 때 밀가루를 한 수저 넣으면 고사리가 쉽게 부드러워지면서 식감도 좋아집니다. 또 고사리를 볶을 때 육수를 넣으면 고기를 갈아 양념해 볶아서 넣은 것보다 훨씬 깔끔하면서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한편 도라지는 반드시 육수를 넣고 볶아야 도라지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잡아주면서 감칠맛이 나고 맛도 좋아진답니다.




8. 잡채 만드는 노하우


▶ 재료 : 당면 50g, 파프리카 1/2개식, 진간장 3숟가락, 양파 1/2개, 마늘, 대파, 달걀지단, 콩기름, 참기름, 깨소금

▶ 만드는 순서

 

㉠ 파프리카, 양파, 대파는 곱게 채를 썰어 볶아준다.
㉡ 당면은 삶아낸 후 간장으로 무쳐낸 후 볶아준다.
㉢ 달걀은 지단을 부쳐낸다.

 


볶아낸 당면과 채소를 섞어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마무리한다.

* 당면은 삶아낸 뒤 찬물에 담그지 말고, 참기름과 간장으로 코팅해 두면 끝까지 퍼지지 않고 먹을 수 있답니다.












9. 산적 쉽게 부치는 비법


▶ 재료 : 김밥 재료(햄, 맛살, 우엉, 어묵 ) 10줄 기준, 잔파, 달걀 3개, 식용유 약간

▶ 만드는 순서

㉠ 어묵은 간장 1숟가락, 꿀 1숟가락, 물 1숟가락을 넣고 졸여준다.
㉡ 햄, 맛살은 프라이펜에 구워낸다.
㉢ 씻어둔 잔파, 햄, 맛살, 우엉, 어묵을 차례로 보기 좋게 끼운다.
㉣ 밀가루 달걀 순으로 입혀준다.

㉤ 중간중간 달걀 물을 부어 빈틈없도록 해 주고 노릇노릇 구워내면 완성된다.

 



정성까지 담아낸다면 맛있는 음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만드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음식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힘겹지만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면 '명절 증후군'은 저 멀리 사라져 있을 것입니다. 내 친척들이, 내 부모, 내 형제, 내 아이가 먹을 것이니 말입니다.

이번 명절에는 간단한 방법으로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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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크리스마스만 되면 생각나는 그리운 친정엄마




며칠 전, 친정엄마의 기일이었습니다.
몸이 안 좋아 제일 가까이 사는 우리 집에서 6개월 정도 생활하셨던 엄마,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던 6남매의 철부지 막내였습니다.

큰오빠마저 엄마 곁으로 떠나 시골에서 기일을 보내지 않고
오빠 댁에 형제들이 모여 간단한 추도식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케가 차려주는 시원한 물메기국으로 많이도 장만한 음식으로 배부르게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형형색색의 목도리를 내놓는 게 아닌가?
"우와! 너무 예쁘다."
"창원 올케가 못 온다고 보내왔네."
"아! 카톡에 올라와 있기에 하도 예뻐 '언니! 나도 갖고 싶어.' 그랬는데."
"어제 택배로 왔더라."
각자 마음에 드는 색으로 골라 목에 둘렀습니다.
"막내 오빠! 올케 안 왔으니 해 봐!"
우리는 이제 하나 뿐은 오빠에게 목도리를 두르게 하고 깔깔깔 재밌게 웃었습니다.

세월이 가니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는 형제들이 늘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 올케가 짜 보낸 목도리(언니! 고마워!)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이 날이면 어릴 적 빠지지 않고 나갔던 교회와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납니다.
수십 년을 깊은 불심으로 절에 다니시다가 돌연 교회로 발길을 돌리신 나의 어머니십니다.
"엄마! 절에 안 가고 왜 교회 나가?"
"어. 한집에서 두 개의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단다."
"오빠들보고 절에 가라고 하면 될 걸 엄마가 왜 바꿔?"
"나 하나 바꾸면 만사가 편안 해 지는걸 뭐..."
"그래도"
"다 큰놈들 어디 내 말 듣겠어?"
"참나, 말 한번 안 하더니만.."
"됐어. 그냥 집안 편안한 게 최고야"

4남 2녀 자식들을 키우면서, 모두가 유학을 하고 객지 생활을 하면서, 큰오빠, 셋째, 넷째 모두 교회 나가시고, 둘째 오빠 내외도 성당을 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부모님 기일 날만 되면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제사상처럼 근사하게 차려놓고, 오빠네 가족이 찬송가 부르고 예배를 보고 나면 언니와 우리 식구 그리고 사촌 오빠들 차례로 절을 올리곤 했으니까요. 그냥 먹는 밥에 예배만 부르고 말면 될 것을 오빠들은 시집간 우리를 위해 꼭 그 번잡한 제사상을 꼭 차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에 다니는 사촌오빠들, 시집간 딸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늘 배려하며 살아가는 오빠 때문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곤 합니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대충하라고 해도 하지 않아,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하냐고 물으니
'엄마가 우리를 위해 종교를 포기하신 그 뜻 고맙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큰오빠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상차림도 줄었고, 딸 둘 절하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기에 말입니다.

신앙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마음의 여유를 찾는 데는 좋을 것입니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하고 플 때
내가 어느 누구에게 의지 하고픈 마음 생길 때
찾아가 떨쳐 버리고 생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기에...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시던 엄마가 그리운 크리스마스입니다.

터벅터벅 검정 털신 신고 돌아오시는 그 발걸음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당신의 그 희생 있었기에 우리 가족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운 엄마.....

오늘따라 더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성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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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설날, 시어머님의 행동에 남편이 화가 난 이유




연일 계속되는 한파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 있었습니다.
막내 동서와 함께 제수 음식을 준비하여 정성껏 차례상을 차려 공손히 절을 올렸습니다.
손자 손녀가 돌아가며 술잔을 붓고 올리며 할아버지를 생각하였습니다.




▶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는 모습

뒤에 앉으신 시어머님
"하나도 안 빼고 잘 차렸네."
칭찬도 잊지 않으시는 어머님이십니다.




▶ 삼촌에게 세배하고 세뱃돈도 받았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덕담도 주고 받고 떡국 한 그릇으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서둘러 산소를 가기 위해 떡국과 전, 과일을 챙기고
어머님을 모시고 시골로 향하였습니다.




▶ 동네 앞 정자나무


▶ 산소를 향합니다.



▶ 증조 할아버지부터 절을 올렸습니다.



▶ 서리가 내렸습니다.


▶ 땅속에도 서릿발이 내려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 신기하게 이끼 속에서 빨간 꽃이 피었습니다.



▶ 양지쪽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있어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 바깥에 있는 수도꼭지는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 따지 않은 토마토가 축 늘어져 있습니다.





▶ 큰 집에 달린 메주

큰 집 형님네에 들어가 사촌 형제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명절 분위기에 빠졌습니다.
시어머님이 걱정되어 오래 있을 수가 없어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남편의 외가에 들러 어머님의 동생을 만나러 갔습니다.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얼마나 더 저렇게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가슴 저린 순간이었습니다.



▶ 집으로 돌아오자 점심 먹으러 온 고3이 되는 아들이 할머니와 눈을 마주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어머님은 파킨슨병과 치매로 요양원 생활을 하신 지 3년이 되어갑니다.
다행히 막내아들 집과 5분 거리에 있어 자주 찾아뵙고 있고 대학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시면 이렇게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 하룻밤을 보내고 가시곤 합니다.

막내 동서 가족도 친정으로 가고 어머님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초저녁에는 잘 주무시더니 12시를 넘기자 잠에서 깨어 자꾸 집에 가자고 일어나 앉으십니다.
"어머님, 낮에 시골 다녀오셨잖아요."
"그렇제."
그래놓고 또 앉으시며 시골 가자고 야단입니다.
금방 잊어버리시고 하시는 행동이었습니다.

사실, 시댁은 어머님의 실수로 불타고 사라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억은 생생하게 살아있기에 자꾸 엉뚱한 말만 하십니다.
"일꾼들 왔는데 밥 차려줘야지."
"너거 시아부지는 밥을 우쨌는지 모르것다."

"네. 어머님 제가 차려드릴게요."
잠도 주무시지 않고 새벽까지 계속되자 남편은 화가났습니다.
"내가 욕을 안 하려고 했는데, 호로자식 때문에 미치겠네."
큰 형님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남편이 나서 집과 산, 논 등을 모두 큰 형님 앞으로 이전해 주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기에 형제간에 나눌 것도 없다는 생각에 아무렇지도 않게 6남매가 도장을 찍어주었던 것.
교회에 다녀 제사도 못 지낸다 하셔도 형수님이 갑상선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명절에 찾아오지 않아도 형제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골집이 사라지고 터만 덩글하니 남아있어 집터에 집을 짓자고 해도 안된다 하시고,
그럼 터만 주면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해도 안된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저렇게 집에 가고 싶어하시는데 말입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음은 전혀 걷지 못하시는데도 마음은 훤하신 모습을 뵈니 마음이 아파 옵니다.

시간은 새벽을 지나 아침이 다가오는 시간인데도 저녁도 안 먹었다 하시는 어머님.
총명하셨던 그 기억 어디로 가고 오늘따라 더 뒷걸음질치는 모습입니다.

치매환자는 내 기준으로 대하면 안 되고
장단을 맞춰줘야 하는데 남편은 그만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속이 상해서 그러겠지요.
잠시 밖으로 나가 화를 삭이고 온 남편,
엄마를 안고 곤히 잠든 모습을 봅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한지 모를 일입니다.ㅠ.ㅠ
치매로 정신은 조금 오락가락하셔도 건강하게 지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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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나이 들면서 추석이 서러운 몇 가지 이유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갑니다.
개천절까지 끼어 휴일이 더 길었던 느낌입니다.

며칠 전부터 혼자 부산하게 음식장만을 하였습니다.
치매와 알츠하이머로 요양원 생활을 하시는 시어머님이 오시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형제들도 하나 둘 모여들고 가족이 주는 행복함을 만끽하게 됩니다.




준비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성묘까지 마치고 나면 동서들은 친정 나들이를 준비합니다.







1. 사라져 버리고 없는 친정

시골에서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내 나이 오십을 넘기고 보니 하나 둘 다 떠나보내고 쓰러져가는 집만 남아있습니다.
항상 부모님 대신이었던 큰오빠마저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에 찾아갈 곳조차 사라진 기분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동생들 고향 찾아오라고 시골집에서 차례를 지냈고,
일주일에 한 번 찾아와 깔끔하게 청소도 해 놓고 가곤 했습니다.
막내 동생 오기를 기다려 친정엄마가 싸 주는 것 보다
더 많이 차에 실어주던 오빠와 올케였습니다.



 



딸아이가 동생이 보고 싶은지...
카톡으로 오빠와 대화를 합니다.
"오빠. 오나? 애기 보고 싶다."
"아니, 이번엔 못 간다."
"아, 진짜? 왜?"
"다른 데 와 있다."
"그래, 그럼 설날에 봥."

옆에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 서운하게 들릴까요?
교회 다니다 보니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멀리 여행을 간 모양입니다.
찾아갈 친정도 없는데, 올케와 조카들 얼굴을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그런 서운한 마음이 생기나 봅니다.







2. 친정 가는 동서들이 부럽다!

차례를 지내고 시골 시아버님 성묘까지 마치고,
의레 코스처럼 되어버린 시외삼촌댁, 시어머님의 친정인 동생네를 다녀옵니다.
"이렇게 오기 쉽지 않은데 늘 찾아줘서 고마워."
"외숙모님도. 어머님 살아계시니 모시고 와야지요."
점심까지 맛있게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사촌 형제들이 모여 즐겁게 놀다가 헤어짐의 시간이 됩니다.
동서 둘은 친정 나들이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아서 그런지
난 사돈 어르신들께 양말 하나를 챙겨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이거, 엄마 갖다 드려라."
"고맙습니다. 형님."
"엄마 얼굴 많이 보고 가."
"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동서도 고생했어. 조심해서 가."
설날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별을 했습니다.






3. 보고 싶은 부모님과 큰오빠

부모님과 큰오빠의 산소가 있었으면 고향이라도 다녀올 텐데
얼마 전 산소가 공장용지로 들어가는 바람에 납골당으로 이전을 하였습니다.




 


우리 집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안치되어있습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어 좋고,
납골당이라 벌초를 하지 않아 편리한 점도 있지만,

술 한잔, 과일 하나 놓지 못하고,
절을 올리지 못하니 마음이 너무 허전했습니다.

엄마 아버지 오빠의 사진을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두 손 모아 기도 올리며 보고 싶다고 말해 봅니다.

차츰 익숙해지겠지요?



엄마!
오늘 같은 날이면 더 보고 싶어요!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 하는 여러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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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즐거운 추석, 차례상에 대한 8가지 궁금증 풀기




작년 추석부터 시골에서 지내지 않고 명절이면 우리 집으로 모입니다.
멀리 떨어진 형제들 모두 모여 함께 일을 합니다.
밤늦은 시간에 출발하여 아침 일찍 도착하는 착한 동서들입니다.

차례를 준비하면서 곁에 있던 아들의 말이 생각나 차례상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엄마! 과일을 왜 저렇게 위를 잘라 놔?"
"응. 할아버지 드시라고 그러지."
그냥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던 것.

먹는 밥상에 절만 올린들 어떻겠습니까?
많이 차리는 것보다 정성이라 여깁니다.







1. 차례상 어떻게 차리지?



차례상은 병풍을 기준으로 하여

첫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다
.

둘째 줄은 어동육서
(魚東肉西) 원칙에 따라 왼쪽부터 육적, 어적, 소적 순으로 하여 적과 전을 놓게 된다. 이때 생선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왼쪽으로 놓는 게 일반적이다.

셋째 줄은 탕을 놓게 되는데
, 육탕, 소탕, 어탕 순으로 놓게 되며,


넷째 줄은 죄포우혜(左脯右醯) 원칙에 따라 왼쪽인 포를 놓고 그다음 나물 순으로 올린다. 오른쪽 끝은 식혜를 놓아둔다.


마지막 다섯째 줄은 과일을 놓아두게 되는데, 과일은 홀수로 올리는 게 원칙입니다. 또한 홍서백서(紅東白西) 원칙에 따라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둡니다.
여기에 왼쪽부터 대추, , , 감 순으로 올리는데 이건 조율이시(棗栗梨枾) 원칙에 따르는 것.







2.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로 놓는 이유가 뭐야?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례에도 음양오행을 따졌습니다.
▶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색은 양이라 동쪽을 상징하고 흰색은 음이라 서쪽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 어동육서(魚東肉西) 
땅은 음이요, 바다와 강은 양입니다. 그러니 육지에서 난 고기는 서쪽에, 물에서 난 고기는 동쪽에 놓는 것입니다.

▶ 조율이시
 음양오행이 아닌 관직과 관계가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대추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뜻하니 처음에 놓는다는 것.
- 밤은 한 송이에 세 개가 들어 있어 3정승을,
- 배와 사과는 씨가 6개니 6조 판서를,
- 감은 씨가 8개라 8도 관찰사를 의미해 순서대로 놓았다고 합니다.





 

3. 술잔을 향불 위에서 돌리는 이유는?

 

  조상들의 은덕과 기운을 받는다는 의미. 차례상에서 향과 술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차례상 준비가 완료되면 향로에 향을 피우고 종손이나 장손이 2배를 합니다. 그리고 잔에 술을 따르고 향불 위에서 3번을 돌리는 이유는 조상들의 기운을 받아 은덕을 받는 의미입니다.



 




4. 나물은 3색이 기본이다?

나물은 3색이 기본입니다.
3가지 색을 쓰라는 게 아니라 3이란 숫자가 홀수로 길하고, 콩나물·숙주나물 등 곡물에서 길러낸 집 나물, 시금치·무 등 들나물, 고사리·도라지 등 산나물 등을 기본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5. 왜 차례상 음식은 홀수로 올릴까?

왜 차례상 음식은 홀수로 올릴까?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홀수로 올라갑니다
.
왜냐하면, 동양권에서 홀수가 길한 숫자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양의 기운을 지닌 홀수를 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세를 이룸으로써, 설날(11), 삼짇날(33), 단오(55), 백중(77), 중양절(99)을 음력의 수가 겹치는 날을 정한 이유 또한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명절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의 수도 모두 홀수로 올리는 것입니다.





 

6. 차례상에 놓으면 안 되는 음식이 있다?


차례상이 지역마다 다른 이유는 그 지역에서 나는 귀한 음식을 함께 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례상에 꼭 올려야 하는 음식이 있듯 올리지 말아야 할 음식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해당되는 건 복숭아와 고춧가루 그리고 마늘입니다.
복숭아는 무당들이 귀신을 쫓는 굿을 할 때 올리는 대표적인 과일로 혼령을 쫓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 역시 혼령이 싫어하는 붉은색이기에,

▶ 마늘은 향이 강하기 때문에 차례 음식에는 쓰지 않습니다.

▶ 갈치, 꽁치, 삼치 등 ‘치’자가 들어간 생선도 차례상에 올리지 않으며 잉어와 붕어처럼 비늘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생선 역시 올리지 않습니다.




7. 과일의 종류는 짝수로 과일 개수는 홀수로?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음식은 양의 숫자인 홀수로 하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음식은 음의 숫자인 짝수로 한다는 것입니다. 과일은 땅에 뿌리를 두고 나는 것이니 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과일의 종류는 음의 성질을 가지는 짝수로 놓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한 접시에 올리는 과일 개수는 홀수로 합니다. 이는 과일이 음이므로 양의 숫자인 홀수로 올려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고
, 예로부터 홀수를 길한(좋은) 숫자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답니다. 





8. 과일은 왜 위아래만 깎지?


우리는 입으로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다는 걸 느끼지만, 조상님들은 음식의 느낌, 그 기운을 흡수하는 방법으로 음식을 드신다고 합니다. 특별히 조리하지 않고 날로 먹는 과일의 경우, 껍질 안에 갇혀 있으면 그 향기가 밖으로 잘 새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일은 조상들이 향을 맡고 그 기운을 드실 수 있도록 위, 아래를 조금 깎아 두는 것이랍니다.





올 추석에는 아들의 물음에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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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나를 울컥하게 한 동서가 보내온 사진 한 장



우리 가족은 말 못할 응어리 하나를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육 남매 번듯하게 잘 키워내신 시어머님이 몸이 아파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도록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찾아온 치매로 어쩔 수 없이 형제들끼리 의논하여 떠나 보내었던 것.
내 가진 것 모두 내줘가며 오직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았는데 소라껍질처럼 당신 홀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요양원은 막내아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아들은 자주자주 찾아뵙고 있지만, 직장에 다니는 동서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빠지지 않고 아이들 데리고 어머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가서 함께 먹으며 즐겁게 지내고 옵니다.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기에 미안한 맘 감출 수 없습니다.
"부모님 한테 하는 일을 귀찮다 여기면 안되잖아요."

지난 일요일, 고3인 딸과 고2인 아들 도시락을 싸서 학교 보내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집 안 청소를 막 마치고 침대에 앉았습니다.
"딩동"
메시지가 날아듭니다.
핸드폰을 보니 카카오톡으로 형제들에게 그룹 채팅을 신청해 왔습니다.








어머님 사진 한 장을 먼저 보내며

 


어머님한테 왔습니다.
건강도 좋아요.




동서가 찍어 보내주는 사진을 보니 제법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얼굴이 붓는데 그런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동영상을 찍어 보냈습니다.





잘 있나? 내다!
회사는 잘 댕기고?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있제?
언제나 다정하게 잘 지내라이
나는 잘 있다.
걱정하지 마라.

빠이 빠이~



어머님은 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형제들 언제나 사이좋게 잘 지내거라.'
평소 노래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의 모습을 뵈니 어찌나 울컥하던지요.
가슴이 먹먹해 오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님이 머리 위에 손을 들어 올려 러브 표시를 한 사진을 전송해 줍니다.
"엄니, 사랑해요."
어머님이 별일이 다 있다고 하셨답니다.
바로 보고 답을 한다며 말입니다.
참 좋은 세상을 사는 우리입니다.



 

맘씨 고운 막내 동서 때문에 우린 앉아서 어머님을 볼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제수씨! 고맙습니다. 가까이서 항상"
"아니에요. 약을 드시고 계서서 그런지 좋아요."
한의원에 다니는 동서가 약까지 지어 드시게 하고 있나 봅니다.






"동서가 늘 수고가 많다."
늦게서야 보게 된 인천 동서가 고마워하는 맘을 전합니다.
"땡큐, 다음 주도 기대하세요."

참 착한 동서입니다.
맘 씀씀이 하나가 어찌나 예쁜지요.

손안에 잡히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도 건강하세요.
우리 곁에 이렇게 있어줘서 늘 감사합니다.

동서야 고마워^^







Posted by *저녁노을*


추억 가득한 놋쇠그릇 신비의 맛, 진주비빔밥




부모님의 묘를 이장하는 날, 몹시도 흐린 날이었습니다.
유골을 화장하여 자그마한 단지에 넣어 보자기로 쌌습니다.
아버지, 엄마, 큰오빠....
나란히 안고 납골당으로 향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항아리에서 전해오는 따스함이 꼭 체온을 느끼는 기분이었습니다.
육 남매의 막내다 보니 잠을 잘 때에도 아버지 곁이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아버지의 다리 사이에 끼우기도 하고 또 들어 올리기도 하면 언제나 막내가 편안하도록 해 주신 다정한 분이었습니다. 엄마는 잔정은 없지만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부숴놓으면 엄마가 뚝딱 제대로 만들어 놓곤 했으니 말입니다. 큰오빠 또한 장남으로 태어나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동생들 데려다 공부시킨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 분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자주 만나지 못합니다.
그날은 형제들이 다 모였습니다.

봉안식을 마치고 나니 12시...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가까이 사는 형부가 추천한 '설야' 진주비빔밥 전문점이었습니다.








               ▶ 식당 입구




▶ 시장통입니다.



▶ 메뉴판



▶ 각종 나물에 육회가 올라갑니다.
    제가 먹은 건 육회가 아닌 살짝 익혀달라고 주문했습니다.




▶ 아삭했던 김치



▶ 마늘과 풋고추


▶ 오징어포무침


▶ 석쇠구이



▶ 맛이 깔끔했던 오이 양파무침




▶ 여린 상추



▶ 부추전



▶ 물김치


▶ 땅콩조림




▶ 한 상 가득 차려졌습니다.



▶ 무국(빛이 들어가서 사진은 좀 이상합니다.) 맛은 괜찮았습니다.





▶ 쓱쓱 비벼 석쇠구이와 함께 먹었습니다.



▶ 상추쌈도 싸 먹었습니다.




▶ 누룽지





▶ 맛있게 먹는 가족들 모습
 


▶ 다 비운 빈그릇




밥을 먹으면서 이 집의 특징인 놋그릇을 보고 또 어릴 적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이거 엄마가 닦는 것 많이 봤지."
기왓장을 부드럽게 깨 짚으로 닦으면 반짝반짝 윤이 났습니다.
"막내 오빠는 잘 닦았었잖아."
교감 선생님이신 막내 오빠는 참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무쇠솥에 밥을 했습니다.
나보다 6살 많은 오빠는 불을 지피는 것도 밥물 잡은 것도 가르쳐주고 성냥을 켜 불을 부쳐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밖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하면 모른 척 나가버리곤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놋그릇으로 우리 모두를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비빔밥을 먹으며 추억여행도 함께한 행복한 점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언니네로 가서 과일을 깎아 먹으며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늘어놓았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자 각자의 일터로 떠났습니다.

피붙이와 나눈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습니다.
그저 사는데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이제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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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1동 | 설야(진주전통비빔밥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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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할머니 생신에 쓴 조카의 가슴 뭉클했던 편지



주말 저녁은, 치매와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나와 생신 잔치를 하였습니다. 가까이 사는 막내 동서네에서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음력 6월 25일, 월요일이 시어머님의 85번째 맞이하는 생신이었습니다.
모두가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어 주말에 모이자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막내 동서네에서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였습니다.
연수 중이라 사실 손님 치르는 게 작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으로 모셔올까 하고 시누인 형님에게 전화했더니
"엄마 멀미를 해서 멀리 못 가. 그냥 가까운 데서 하자."
"그래도. 동서한테 미안하잖아요."
"뭐가 미안해. 너만 하라는 법 어딨어? 한다고 하니 아무 말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동서 역시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을 하며 음식을 차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운 여름이라 더욱 말입니다.





 


아들 녀석 봉사활동이 있어 6시에 마치고 출발하니 주말이라 차도 막혀 저녁 8시나 되어 도착하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와 있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하였습니다.
"형님! 식사하세요."
맛있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회는 부산 형님(고명 딸 시누이)이 사 오셨어요."
"우와. 이 많은 음식 어떻게 한 거야? 오늘 출근했잖아."
"새벽에 일어나 해 놓고 출근했어요."
"고생했어."
"아닙니다. 형님은..."
잡채, 무 쌈말이, 갈비찜, 각종 나물, 생선, 미역국, 오징어튀김과 전, 샐러드 등
손이 어딜 갈 지 모를 정도로 차려냈던 것입니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조카 둘이 장만했다는 케이크와 과일이 차려지고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 사랑하는 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온 가족이 입을 모아 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머님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였습니다.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조카가 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어 드렸습니다.






                    ▶ 초등학교 4학년 조카의 편지입니다.


<중략>
케이크를 오빠랑 저랑 돈을 모아서 샀어요.
좋아해 주면 좋겠네요.
제가 요즘 할머니께 평일에 못 가서 죄송해요.
시간이 잘 안 맞아서 못 갔네요.
이제는 자주 갈게요.
그리고 할머니! 100살 넘게 사셔야 되요.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상상은 안 해 봤거든요.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없으면 아빠가 없고, 아빠가 없으면 저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녀 올림




손녀가 읽어주는 편지를 듣고 어머님은 살며시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입니다.
우리 모두의 눈가는 촉촉해져 버렸습니다.
 "우리 예린이 다 컸네. 그런 생각을 다 하고."
부끄러워 하며 수줍은 미소만 짓고 있는 녀석입니다.

어머님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하룻밤을 자고 왔습니다.
동서는 만들어 놓은 반찬에 얼큰한 대구탕 한 그릇으로 아침밥을 차려냈습니다.
"어제 술도 안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
남편이 제수씨를 향해 칭찬합니다.
천사같은 동서와 그것을 보고 자란 조카의 고운 마음을 보았습니다.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각자의 생활터로 떠났습니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홈페이지 관리도 잘하고 있어 하루 하루의 생활이 사진으로 올라와 어머님의 근황은 늘 살피고 있습니다. 많이 좋아지신 어머님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집에서 걸어 1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은 곳이라 막내 아들은 자주 들락거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았음 하는 맘뿐입니다.

동서야!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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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어머님 한 분 모시질 못하고 사는 여섯 불효자 



어제는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뉴스에는 징검다리 연휴로 많은 사람이 구경을 나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부모 공경은 '옛말'이라고 하면서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고 나 몰라라 하기에 결국 법정까지 가서는 월 35만원의 생활비를 드리라는 판결이 났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50대 이후 우리의 부모님은 오직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사셨고 노후대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자식이 봉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10명 중 7명은 노후대책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통계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습니다.

우리 시어머님 역시 6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 허리가 휘고 지금은 아무런 기운조차 없으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올해 84세, 작년부터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시는 시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지내다 요양원에서 생활하신지 일 년을 조금 넘기고 계십니다.

마침 일요일이 어버이날이라 형제들이 요양원 근처에 사는 막내아들 집에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동서! 그냥 어머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면 안 될까?"
"어머님이 차 멀미를 하셔서 모시고 가기가 좀 그렇습니다."
"손님 치루기 힘들잖아."
"괜찮아요. 형님은 힘 안 드세요? 그냥 우리 집에서 할게요."

착한 막내 동서는 주말만 되면 김밥이나 먹을 것을 싸서 시어머님을 찾아갑니다. 일 년을 조금 넘겼지만, 아직도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막내 아들에게 전화해
"나 언제 데리려 올 거야?"
토요일, 일요일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바쁜 일이 있어도 엄마가 기다리는 것 같아 꼭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을하는 막내아들입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두 녀석은 주말에만 학원을 갑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찾아뵐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
"딸! 아들! 내일 어버이날이라 할머니 뵈러 가는데 같이 갈 수 있지?"
"나 학원 있는데."
"학원 하루 빠져라 그냥. 내년에는 고3이니 갈 수도 없어."
"그럴까?"
아무 말 없이 따라가겠다고 하는 두 녀석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소파에 앉아 계셨습니다.
몹시 야위고 기운 없으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오냐. 왔나?"
들어서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는
"아이쿠! 우리 손자 왔나?"
"어머님 누구야?"
"응. 00이 아니가?"
또렷하게 이름까지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할매! 내 왔다."
"그래 내 새끼."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다 볼 수 있어 행복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할머니 옆에 앉아 고시랑 고시랑 정겹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 형제들을 위한 상차림



동서는 한의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까지 근무하고 와 이렇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냈습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오리백숙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리불고기 등 한 상 가득 담아내고 나니 조금 늦게 도착한 고명딸인 시누이가 회를 사와 정말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늦게 도착하는 형제들을 기다리다 어머님은 배가 고플까 봐 먼저 오리백숙을 드시게 하였습니다. 며칠 사이 더 악화되셔서 잠도 못 주무시고 먹는 것도 소홀했다고 하였습니다. 죽을 떠먹이니 오물오물 한 그릇 뚝딱 비워내셨습니다. 자식들이 모여 정담 나누는 모습을 보며 편안하신지 잠이 드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어머님은 어제보다 훨씬 또렷해지신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님! 잘 주무셨어요?"
"응. 잘 잤다."
"많이 드셔야 해요. 입맛이 없어도."
"넘어가야 먹제."
"어머님 밥 드릴까요? 배 안 고프세요?"
"밥 안 먹을란다."
"왜요? 그럼 죽 끓여 드릴까요?"
"응."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고 남의 부엌이라 어색했지만, 얼른 일어나
"동서. 쌀하고 야채 좀 내나 봐."
"형님. 찹쌀 불린 것 있어요."
"그래? 그럼 금방 하겠네."
동서가 내 주는 야채를 받아 뚝딱 금방 만들어낸 죽입니다.  



★ 채소 아몬드 죽


재료 : 불린 찹쌀 1컵, 물 3컵, 아몬드 10개 정도, 표고버섯 1개, 피망 1/4쪽, 당근 , 참기름, 소금 약간

만드는 순서


㉠ 채소는 잘게 다져준다.
㉡ 불린 쌀을 냄비에 붓고 참기름을 약간 두르고 볶아 준다.
㉢ 물을 붓고 끓여주다가 쌀이 퍼지면 믹스기에 간 아몬드를 넣어준다.

*불린 쌀이 없을 경우, 쌀을 반쯤 갈아서 사용하고 더 빨리 만들어야 할 경우에는 밥으로 만들면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 썰어둔 채소를 넣어준다.


㉤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담아내면 완성된다.



▶ 어머님을 위한 아침 밥상


세수를 시켜 모시고 나온 어머님은 얌전하게 앉아계십니다.
"어머님! 식사합시다."
뜨거운 죽을 식혀가며 입에 넣어 드리니 오물오물 잘 먹어 주십니다.
"아이쿠! 우리 어머님 잘 받아 드시네."
"어머님! 입 맛없다고 안 드시고 그럼 안 됩니다."
"많이 드셔야 오래 사시지요."
"그래야 우리 딸 시집 보는 것도 보실 수 있어요."
아무 말 없이 받아 드시기만 합니다.


오후가 되어 점심까지 드시고 요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시설은 제법 깔끔한 곳입니다.
요양보호사들이 어머님을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잘 다녀오셨어요?"
"응."
"우리 할머니는 얼마나 착하신데요. 심성도 곱고."
평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싫어하시기에 시설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꾸 집에 불이나 가 봐야된다며 침대를 내려오시려고 해 난감했다는 말을 해 주십니다. 거동조차 하시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고 하여 오래 머물 수 없어 그렇게 또 이별을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
"오냐. 조심해 가거라."
"................"
잡았던 손을 놓고 밖으로 나오니 마음은 왜 그렇게 허전하던지....


휠체어를 타고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많기도 해라. 한 부대가 왔네."
그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자식이 여섯이면 무엇하겠습니까.
모시질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머님께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전화 자주 드릴게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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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노을이가 읽는 책2010.12.05 06:01

가족이자 평생의 라이벌, '형제라는 이름의 타인'





서른셋 늦은 결혼을 하여 이제 여고생인 딸, 중3인 아들입니다. 친구들은 시집 보내 사위를 보는데 말입니다. 연년생이다 보니 둘이 싸울 때가 많습니다. 어릴 때에는 딸아이가 모든 걸 다 챙겨주고 보살폈었는데 이제 아들 녀석이 누나보다 커다보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작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누나편을 듭니다.

"누나한테 덤비지 마! 아빠한테 혼나!"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늘 불만입니다.
"왕싸가지 짓을 하는데도 아빠는 늘 누나 편이야!" 하면서 말입니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딸아이라 깍쟁이 짓을 하긴 합니다. 그럴 때 아빠 몰래 엄마는 아들 편을 되어주기도 하지요.




  얼마 전 읽어 보았던 책 중에 <형제라는 이름의 타인>이라는 책에 심리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형제 이야기였는데 사실 그 내용보다는 책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습다. 세상에서 부모 다음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형제인데, 형제 자매와 갈등 없이 지내는 경우가 드문 것이 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다를 형제와 사는 것은 마치 낯선 타인과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제 관계는 애정과 증오라는 양면성에 뿌리를 둔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태도와 애정을 보이느냐에 따라 상대 형제에게 느끼는 감정의 종류와 수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이좋은 형제자매로 키우기 위한 노하우입니다.




카인 콤플렉스란?
 
아무리 부모가 똑같은 사랑을 준다고 가정해도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차이가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더 차지하기 위해 형제간에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이나 적대감, 경쟁력을 '카인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넌 왜 그러니? 형은 저렇게 의젓한데."
"넌 형이 되어서 형 노릇도 못 하니?"
"동생은 말도 잘 듣고 착한데."
비교를 당하며 크는 경우 콤플렉스는 훨씬 커집니다.
그러나 모든 콤플렉스가 그렇듯 부정적 에너지는 해가 되지만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되는 경우 발전의 자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형제간 지나친 경쟁이나 적대감은 서로에게 해가 되지만 선의의 경쟁은 도움이 됩니다. 앞다투어 심부름하고, 칭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노력하고,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문제는 지나친 비교와 편애로 콤플렉스가 내면에 심각한 상처를 남기는 경우입니다.



형제간 갈등, 최소한의 원칙으로 해결하자.

모든 자녀를 똑같이 사랑하며 키우고 싶어도 사실 맘처럼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부모가 형제의 갈등에 개입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다툼은 부모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부모의 개입이 오히려 갈등을 증가시키기도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면 방치와 다름없습니다. 최소한의 육아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충실히 한다면 갈등 유발요인 자체가 줄어들 것입니다. 형제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원칙 몇 가지입니다.



1. 형제간 위계질서를 세운다.
형제 사이에는 호칭을 비롯하여 위계질서를 확실히 정리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엄마가 맏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동생은 형을 무시하게 됩니다. 한편, 터울이 적은 두 아이를 동시에 돌보는 것이 힘들더라도 아이들은 한집에서 부대끼고 자라면서 정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물건의 소유를 확실히 한다.
형제지간에는 물건 대부분을 공유하게 되지만 몇 개씩이라도 각자 개이니 소유물을 만들어주도록 하며, 상대방의 것을 원할 때는 주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물건을 선뜻 빌려주었을 때 칭찬도 잊지 마세요.


3. 아이들 싸움에 끼어들어 편들지 않는다.
형제간의 싸움은 대개 동생을 때리거나 물건을 가지고 싸우다가 형이 혼나거나 양보하는 것으로 결론이 압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나름의 기준이 있으므로 어른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가 해결사 노릇을 하기를 과감히 포기하면 아이들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4. 싸움하더라도 일관된 규칙을 지키도록 해준다.
때리거나 꼬집는 등의 폭력은 금지, 막말이 오가서는 안 될 것, 서로의 행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벌을 받을지도 함께 정해놓습니다. 엄마가 싸움 일지를 적으면 어떤 문제, 어떤 패턴으로 싸우는지 알게 되므로 미리 대응할 수 있습니다.

5.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시키지 않는다.
한 배에서 나왔어도 아이가 서로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에 따라서 발달의 방향과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엄마는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두 아이를 비교하거나 한 아이의 행동을 다른 아이에게 본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은연중에 형제간의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듭니다. 또한 무언가 함께 해냈을 때 칭찬을 해줌으로써 서로 경쟁상대가 아닌 협력 상대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6.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혼낸다.
형제 사이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부모의 편애, 두 아이에게 똑같은 애정을 표현해 주고 마음이 덜 가는 아이에게 더 많이 스킨십을 해 줍니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혼나야 하는 상황과 혼나는 방법 등의 규칙을 같게 정해서 같은 행동을 두고 누구는 혼나고 누구는 봐주는 결과가 없도록 주의합니다. 조건없는 양보도 금물입니다.



출생순서에 따른 육아법
 
형제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으로는 출생순위, 성별, 나이 차이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출생순위입니다.  둘 이상의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공정한 태도입니다. 경직되고 조건 없는 공정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차별이 아닌 구별된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1. 맏이를 키울 때
맏이에게는 언제나 부모의 욕심이 앞서는 법입니다. 맏이를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고쳐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네가 형이니까 참아야지."
"첫째인데 넌 왜 그 모양이야?" 라는 식의 말은 삼가해야 합니다. 비난과 비교는 맏이에게 강박감과 피해의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2. 형제가 셋이면 둘째는 맏이와 막내와는 다른 상황
맏이는 첫아이라 기대감이 크고, 막내는 막내라서 귀엽게 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둘째 아이는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둘째 아이에게는 일부러라도 이름을 많이 불러 주는 것이 좋습니다. 상황에 따라 아이의 이름을 넣어 말하게 되면 자신도 생활의 중심에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막내는 버릇이 없거나 장난이 심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예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정확히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또 형제끼리 싸우거나 잘못을 똑같이 했을 때 막내라는 이유로 덜 야단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막내에게는 왜 똑같이 혼나야 하는지를 가르쳐 줘야 형, 누나에 대한 피해의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자매와 형제, 그리고 남매

1. 자매
자매는 형제보다 친화력이 훨씬 강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각자 가정을 꾸릴수록 더 가까워지는 관계가 자매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도 눈에 보이는 큰 싸움이 없어 집안이 평온하고 비교적 수월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대체로 언니는 모성 본능을 발휘해 동생을 돌보려 하고 놀이 상대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언니는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 동생은 부탁하는 사람이라는 관계가 성립되기 쉬워, 언니의 스트레스 요인이 도기도 합니다. 또한, 동생은 깍쟁이가 되거나 자신보다 앞에 있는 언니의 행동을 보완, 모방하므로 똘똘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매만 있는 집안의 여자아이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리더의 기질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친구이자 라이벌은 형제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붙어 지내며 가장 많이 싸우는 관계입니다. 특히 형은 권위 의식을, 동생은 형에 대한 경쟁심을 가지고 자라게 됩니다. 남자 아이들은 서로 싸우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애정을 키워나가므로 경쟁 관계가 지나치지 않도록 부모가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3. 형제 다음으로 싸움이 많은 관계가 남매지간이다.
오빠와 여동생일 때는 여자아이가 언어 및 인지 발달이 빨라 말싸움 등 다양한 싸움이 일어나며 이때 오빠가 동생을 때리게 됩니다. 남자아이가 소꿉놀이를, 여자아이가 로봇 놀이를 하며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커가면서 이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지므로 사회생활을 더 원만하게 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성별에 따라 엄마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것이 남매 육아의 포인트입니다.



가장 이상적은 터울과 맞는 육아법

1. 2년 이하의 터울, 첫째를 대접하라.
연년생 또는 2년이하 터울이 형제자매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첫 아이를 제대로 대접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갖도록 칭찬도 아끼지 않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동생 돌보는 일에 참여시키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형의 역할을 강조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커가면서 차츰 또래와 주변으로 관심사를 확장시키므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더 많이 만들거나 책읽기 등 감성을 강화시켜주는 노력도 유용합니다.

2. 5세 이상 터울, 부모의 균형 있는 사랑이 관건
형제간 터울이 5년 이상 나면 '세대 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형제 사이에 서로에 대한 관심도 덜하고 공감대 형성도 어렵습니다. 부모는 첫째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동생에게 첫째가 부모 다음 가는 어른이므로 형의 말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이야기해 줍니다. 또 첫째만의 개인 공간을 인정해주고 동생에게 형을 훼방하지 말라는 나름의 규칙을 세워주도록 합니다.

3. 3~4년 터울, 가장 원만한 사이
육아전문가들은 3~4년 터울을 가진 형제.자매가 비교적 원만하다고 말합니다. 이들 사이엔 어느 정도 위계가 잡혀 있어 놀이 등을 함께 하는 데는 어려움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형 아우를 구분하여 역할을 강조하기보다 형제가 서로 위하고 격려해주는 협력 관계임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른들이 자식농사가 제일 어렵다는 말을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에서 다툼은 일어나기에 조금만 양보하고 '이 세상에 단 둘뿐이 오누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부모님이 돌아 가시고나면 의지 할 곳은 오누이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서로 보듬어 가며 살아갔음 하는 맘 간절해 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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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부모님이 지식을 낳아 기르면서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두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키웠을 것입니다. 시어머님 연세 83세, 6남매 번듯하게 키워내셨기에 어디 한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신 이빨 빠진 호랑이입니다. 여태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다 더는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안 될 정도라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남편은 넷째입니다. 평소 가장 가까이 살아서 무슨 일만 있으면 남편이 달려가 해결하곤 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시어머님은 몸이 허락하는 한 친구가 있고 텃밭이 있는 시골이 좋다고 하시며 자식들에게 기대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내리사랑으로 다 내어주고 남은 건, 기운 없는 몸 하나뿐입니다. 의지할 곳 없기에 이제 자식들에게 기댈 만도 한데

“내가 어쩌다 이래 됐는지 모르겠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시어머님 모시는 일이 힘들지 않는 이유


첫째, 간섭하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 가진 시어머님

평소 몸이 아프지 않을 때에도 ‘내가 뭘 아노? 너그들이 알아서 해라.’하시는 호인이십니다. 고집은 있으신 분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격입니다. 어제도 어머님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밖으로 내 보내고 욕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문고리를 잡고 비누로 닦고 있는데 남편의 큰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어머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다.”
“문이 잠겨서 못 나온다고 저런다.”

“하이쿠! 우리 어머님 며느리 갇혀서 못 나올까봐 걱정되셨나 보네.”

안에서 문고리를 잡고 청소를 하는데 열릴 리가 있겠는가.

또 얼마 전에는

“야야! 니가 고생이 많다.” 하시면서 호주머니에 있는 오만 원을 꺼내 주십니다.

“네. 어머님!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넣는 척 하면서 다시 어머님 호주머니에 넣어드렸습니다.


둘째, 시동생과 동서

요즘에는 은행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 인터넷 뱅킹을 하다보니 통장 찍어볼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입금된 게 없나 확인할 일이 있어 은행에 갔더니 통장을 바꿔야 될 정도로 장수가 넘어가 있었습니다. 월 빠져나가는 돈이 왜 이렇게 많지?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누구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밑 인천 사는 동서였습니다. 우리 집에는 형제들이 월 3만 원씩 제 통장으로 입금됩니다. 그 돈으로 어머님 생신 제사 명절도 보내고 있습니다. 추석때인가? 동서와 통화를 하면서

“형님! 늘 고생하시는데 돈 조금 보낼게요.”
“아니야 삼촌이 보내왔어! 안 그래도 돼.”
“그건 그거고 제 마음이에요.”
“너희 부부는 왜 재무관리를 따로 하면서 돈을 쓰냐? 절대 보내지 마. 알았지”

“가까이 살면 우리 집에도 모시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아무나 하면 어때.”

그렇게 흘려 넘겼는데, 따로 작은 돈이 아닌 50만 원을 보냈던 것입니다. 효자 아들인 삼촌 또한 40만 원을 보냈는데도 말입니다. 삼촌이야 아들이니 효자라고 소문났지만, 돈이 문제가 아닌 늘 마음씀씀이기 고운 동서입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부모 눈에 밟힌다는 막내아들, 엄마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집을 나갔을 때도 한걸음에 달려오는 삼촌입니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 둘은 저녁마다 전화를 합니다.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응. 밥 묵었다. 너거는?”

“우리도 먹었어요.”
“할머니! 뭐하세요?”
“TV 안 보나.”

오랫동안 통화는 못하지만 안부를 물어주는 귀여운 녀석들입니다.


셋째, 고명딸인 시누이  

속상할 때 고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상의하게 되는 남편 바로 위 누나입니다.

토요일에는 시댁 집안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니 집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들! 아빠가 청소기 밀었어?”
“아니, 고모가 청소했어.”

“그래?”

엄마를 뵈러 결혼식장에 가기 전에 들렀던 것입니다.

“엄마! 고모가 김치냉장고에 오리고기 들었다고 하더라.”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큰 조개 몇 마리도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시어머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 놓고 가셨던 것.


넷째, 우리 아들과 딸

시어머님은 한 걸음 떼어 놓기가 힘겨워 보일 때가 잦습니다. 식탁에 앉을 때도 밥을 많이 흘려 앞치마를 꼭 합니다. 딸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 앞치마를 해 주고 의자를 밀어 넣어줍니다. 할머니 심심하다며 화투놀이도 가끔 해 주기도 합니다. 며칠 전, 호주머니에서 돈 정리를 하시던 어머님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만날 날 돌보느라 고생이 많다.”하시며 오만 원을 녀석들에게 줍니다. 딸아이는 받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아들 녀석은

“할매!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주노?”그러더니 만 원 한 장만 가지고

“이건 할매 가지고 있어야지.” 하면서 할머니 호주머니에 도로 넣어주는 게 아닌가.

어느새 나보다 키를 훌쩍 넘기면서 속 깊은 녀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누이와 통화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00이가 학교 갔다 오더니 할머니 옆에 앉아 고시랑고시랑 이야기도 잘하고 누나 방 서랍도 정리하는 것 보고 놀랬다.”

“그러게요. 마냥 어리게만 봤는데 어른이 다 되었어요.”

“야! 00이 대학 등록금은 내가 책임진다. 어딜 가던지.”
“형님! 정말이죠? 두 말하기 없기."
”알았어. 공부나 열심히 잘 해라고 그래.“

“네. 고맙습니다.”

정말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놓고 둘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자식들 모두가 부모님을 향한 그 마음 한결같기에 어려움 모르고 지낼 수 있는 것 같고,  고생하는 것 다 알아주고 한마음이 되는 걸 느낄 때 힘겨움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자식을 위해서 다 내어주신 그 사랑 받았기에  이제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것뿐입니다. 모시는 일에 큰아들 작은아들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또한, 이렇게 마음 써 주는 형제들이 있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계신 동안만이라도 편안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고모! 삼촌! 동서!

없어서 못 주고 있으면 나누려고 하는 우리는 가족이기에 그 마음 다 헤아립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내 맘 알아줘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세요.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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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TV 속으로~2009.09.28 16:54

 

KBS2 주말연속극 솔약국집 아들들

이 드라마는 할아버지, 부모, 아들 넷, 3대가 한집에 살아가면서 하나 둘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드라마입니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마 이 드라마는 우리가 자랄 때의 정서와 비슷하여 끌리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는 핵가족화로 단란하게 부모와 하나 아니면 둘뿐인 자식들이지만, 5~6명의 형제가 한집에 살면서 지지고 볶아가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9월 27일 KBS ‘솔약국집 아들들’이 시청률 45%를 돌파했습니다. 28일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27일 방송된 ‘솔약국집 아들들’은 전국 시청률 45.0%. 수도권 시청률 45.8%를 기록했고, 올해 방송된 드라마 중 45%대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SBS ‘찬란한 유산’ 뿐이었다고 합니다.





마흔에  늦장가를 든 진풍이는 수진이와 함께 하지 못해 속을 태웁니다.

“수진씨! 왜 오늘 전화 안 했어요?”
“어머님이랑 함께 있는데 어떻게 전화를 해요?”
“바쁜 줄 알았어.”

특유의 웃음으로 히죽히죽 웃는 진풍이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합니다.


수진이는 시집오기 전, 부모는 돌아가시고 올케조차 없는 오빠와 조카 둘과 지냈습니다. 엄마 없이 자랐다고 무시당할까 봐 혼자 인터넷을 뒤져가며 예의범절을 배워 혼수도 장만합니다. 하지만, 시집오면서 이바지 음식을 깜박 잊고 준비하지 않아 동서네 엄마가 해 주는 음식으로 상을 차려내야만 했었습니다.


이 날, 수진이는 수첩을 들고 가족들의 생신과 할머니 제삿날을 남편에게 물어보고 메모를 합니다. 또, 첫 출근을 하는 수진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갈비찜을 해 놓고 나갑니다. 아침 준비를 하려고 나온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 가 보니 ‘요리책’이 부엌에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를 심하게 했지만, 제법 그럴사하게 맛을 내고, 열심히 하려는 큰며느리를 대견스러워합니다.


셋째아들이 먼저 결혼을 했고, 천방지축인 며느리와 찬찬하고 말이 없는 큰며느리. 살다 보면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 시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두 가지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첫째, 작은 며느리와는 달리 큰며느리는 집안의 모든 일을 챙겨야 한다.

우리나라의 큰아들 큰며느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큰 자식은 하늘에서 내린다.”라는 말이 생겨난 모양입니다. 어른 공경하고 동생들 챙겨가면서,  다가오는 추석과 제사도 지내야 하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채 큰 숙제를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6남매의 장남이었던 큰오빠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타리였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 대신이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래도 살아계실 때에는 동생들 마음을 읽어 텅 비어 있는 시골집에 주말이면 들러 집을 돌보면서 명절이면 동생이 찾아오길 기다렸습니다. 고향이 있어야 한다며....그렇게 삭막했던 집에 온기를 불어넣곤 했습니다. 시끌벅적 많은 형제가 모여 추석을 보내고 나면 큰오빠 내외는 마지막까지 남아 막내가 오기를 기다려주었습니다.

“오빠! 나 때문에 아직 안 간 거야?”
“아이쿠! 우리 막내 친정 오는데 오빠가 기다려줘야지.”

“............”

"우리 아가씨 엄마 많이 생각나지?"
오빠가 아닌 아버지였고, 올케가 아닌 엄마였습니다. 하나 가득 트렁크에 실어주는 쌀이며 명절 음식은 엄마보다 더한 마음이 듬뿍 들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올케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오빠가 주고 싶다고 해도 올케가 싫어하면 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동생들 데려다 먹이고 재워주고 공부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고마움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큰며느리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둘째, 다른 며느리와 비교되는 친정  

분위기 내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국장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셋째 며느리인 오은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그럴까? 톡톡 튀는 신세대 며느리로 애교가 넘칩니다. 처음부터 부모가 없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정상 먼저 이별을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으로 인해 명절이 되면 저는 우울해집니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 때 형제들이 다 모이긴 해도 명절날 친정을 찾아가도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어 남편과 산소만 들렀다 오곤 합니다. 이제 큰오빠 마저 떠나고 없으니 친정은 사라져버린 기분입니다. 동서들은 조카들 때때옷으로 갈아입히고 자신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친정으로 떠나기 위해 나서는 것을 보면 부럽기까지 합니다.


또, 둘째 아들의 장면으로, 복실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어머니 묘소에 다녀오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아버지와 동생, 대풍의 동행에 불편함도 잠시,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간 쌓아뒀던 마음의 벽을 조금은 허물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묘소에서 내려오는 길, 옛날 김간시절 혼자 어머니의 산소를 찾을 때 동행해주던 대풍을 생각하는 복실이. 언제나 장난기 많지만 “이렇게 아파야 엄마 생각 안 나는 법이야.”하며 목을 조이는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살며시 손을 잡는 대풍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맞잡는 복실의 미소 띤 얼굴이 훈훈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10월 3일 토요일 51회 방송될 미리 보기에는 옥희는 며느리 둘을 거느리고 추석 장을 보는데 촐싹거리는 셋째 며느리와는 반대로 큰며느리가 자꾸 눈치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어 합니다. 그리고 추석이라고 동서의 아버지가 찾아 와 선물보따리를 풀어놓는 걸 보니 수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갔습니다.


한편, 대풍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련한 마음으로 복실이를 대하지만 복실이는 좀처럼 대풍에게 마음의 문을 다시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대풍은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추석 날 저녁, 모두가 떠나고 난 뒤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진씨! 기운내세요.
큰며느리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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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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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추석때 사진)


꿈속에서라도 한 번 뵐 수만 있다면.....


아버님을 떠나보낸 지 벌써 10년이 가까워옵니다. 친정아버지를 여의고 난 뒤, 꼭 아버지처럼 대하고 응석부렸던 셋째 며느리였습니다. 당신아들, 34살의 늦은 결혼 때문이었는지 무척이나 저를 예뻐 해 주셨고, 며느리의 직장생활로 손녀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신은 혼자 시골에 계시고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보내시며

"아가야! 너희 시어머님 모시고 가서 아이 키우거라!" 하셨던 분이십니다. 당신 끼니는 걱정 말라시며...


  우리 아버님은 한량이었습니다. 모시옷에 백구두 신으시고 궁터로 활 쏘려 다시셨던 자그마하시고 건강한 촌로였습니다. 한번도 병원신세를 져 본 적 없었는데, 막내아들의 권유로 종합검진을 받고 난 뒤,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흉선 암이었습니다. 평소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암 선고를 받고 난 뒤에는 쉬엄쉬엄 시들어 가는 꽃이었습니다. 말기였기에 약도 없다고 하셔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병원과 가까운 우리 집에서 몇 개월 지내시다가, 시골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 뒤로는 매일 매일 퇴근을 하고 아이 둘 어린이집에 가서데리고 아직 어린 아들은 앞에 안고 운전을 해 가며, 시댁과의 50분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려 가 할아버지와 함께 얼굴 맞대고 놀아 주었습니다.그 고통 속에서도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시간만큼은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 몸은 피곤하지만, 아마 오래 견디시지 못 하시고 우리와 영원한 이별이 찾아 올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받은 그 사랑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점점 세월이 흐르자,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쉬셔야 했고,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주무시는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그렇게 앓으신 지 1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쉽게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49제까지 집에서 모시다가 마지막 날(49제)은 사찰에서 공양을 올리며 보내드렸습니다. 매일 저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지어 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자박자박 걷는 아들 녀석이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인 음식을 잡아당겨 한바탕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일까요? 아직도 그 때 일을 기억 하고 있는 녀석들입니다.


  어제는 아버님의 제사였습니다. 평소 국물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해 치우시는 반찬 투정 없으셨던 우리 아버님. 육 남매의 정성어린 제사상 하나 가득 차려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뒤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보시는 시어머님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엿보였습니다. 든든한 아들 5명이 엎드려 아버님께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계셨던 것입니다. 

 

  상다리가 휠 정도의 음식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만은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아가시다 세상을 등졌기에 제 마음 더욱 아픈 것을....아버님 덕분으로 6남매의 가족과 우리 아이 둘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계실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했던 두 손녀 손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중간고사 있다며 따라 나서질 않아 그냥 두고 왔습니다. 녀석들이 더 자라고 나면 꼭 참석 하여 아버님의 그 사랑 느끼도록 하겠습니다.



제사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 30분....

꼭 12시를 넘겨야 제상을 차리고 절을 올리기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늘 피곤함에 시달리곤 합니다. 셋째며느리로서 조퇴를 맡고 음식을 하러 달려가야 하고, 서울 사시는 둘째 형님은 제수음식을 준비하고, 시장을 보기 위해 하루 전날 내려오셨습니다. 대구, 인천 사는 아주버님 삼촌도 바로 올라가지 못하니 학교에도 사무실에도 연가를 내고 온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가지가지 놓을 것도 많고, 챙겨야 하는 것도 많은 제사문화 요즘엔 많이도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윗대 어른들은 한 개로 합쳐 한 번만 지내고 초저녁에 많이 지내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며느리인 우리는 입도 못 벌리고 있는데 손위 시누가 어머님에게

“엄마! 우리 내년부터 제삿날 하루 늦춰 초저녁에 지내면 안 되나?”
“..................”

80평생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씀 같았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큰집 아주버님도

“너희들 편할 대로 해~”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큰집에도 12시 30분이 지나야 제사를 지내는 분이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어머님 하자는 대로 해요.”
“이렇게 늦게 가면 피곤하잖아. 시대도 많이 변했고...”
“그래도 어머님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몇 년 아녜요.”

“허긴, 우리 대에 제사 제사 하지 우리 아이들 제사 지내지도 않을 거야.”
“남의 눈 의식 많이 하시고 체면 따지시는 어머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아요.”

“당신이 힘드니 그렇지!”
“어? 당신 나 생각해서? 아이쿠 고마워라”


11가지의 나물 볶고 무쳐야하고, 생선 다려 쪄내고, 튀김 전 굽는 일 보통일 아니지만, 대대로 내려온 쉽게 버릴 수 없는 제사문화이기에 적응하며 살아가나 봅니다. 변화를 기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어야 하는 지 다 알기에 남이 변화하길 바라는 것 보다 내가 변화하는 게 더 빠르다는 말이 있듯 어머님의 뜻 따라주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 마음 똑 같진 않겠지만, 어머님의 그 마음 읽고 아무도 거역하지 않고 더 이상 입을 다물어 아들들의 효심을 보며 돌아왔지만, 맘 약하신 우리어머님 또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또 의논하면 간소화할 수 있는 좋은 합의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우리, 서로 사랑하며, 서로 배려하며, 나누며 사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또한 살아 계실 때 효도하시길 간절함 담아보는 날로, 그저 아버님을 생각하며 멀리 떨어져 지내는 형제들 만날 수 있다는 기쁨하나로 피곤함 잊는 날이 됩니다. 


오늘따라 무척 그리워집니다.

오늘따라 무척 보고파집니다.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나 뵐 수만 있다면....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저녁노을*

결혼 16년차, 혼자 처음해 본 '김장'

 

 

마른가지 끝에 매달린 낙엽마저 떨어져 버린 지 오래 되었고,

추위에 웅크리고 서서 긴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나무들이 대견 해 보입니다.

어제는 결혼을 하고 난 뒤, 처음으로 내 힘으로 겨울준비를 했습니다.

토요일 마음껏 쉬어 보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늦잠 즐기고 있는데 전화가 울립니다.

"이모야~ 김장 안 할래?"
"김장? 해야지..."
"배추 좀 가져가라."
"배추가 어디서 났어?"
"응 누가 좀 줘서 말이야. 얼른 와~"

요즘 배추값 장난 아니게 비싸다는 말도 생각나 벌떡 일어나 차를 끌고 배추밭으로 갔습니다.

옹기종기 줄지어 앉아있는 배추 30포기를 얻어 차에 담아 실고 왔습니다.

 

노랗게 속이 찬 배추, 맛있어 보이긴 해도, 아무것도 준비 하나 해 놓지 않았고 또 소금에 절일 생각을 하니 막막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집 앞 가게에 들러 굵은 소금을 사러 갔습니다.

"저~ 30포기 정도 담을 건데 소금은 얼마나 하면 되나요?"
"10kg 정도 하면 됩니다."

"새댁 김장 하려고?"

"네~"

"친정 엄마 없어?"
"............."

그냥 씩 웃기만 하고 소금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사실, 신혼 때에는 시어머님이 김장을 할 때 거들어 드리면 되었고,

그 후에는 친정 올케와 함께 텃밭에 배추를 심어 1년 내내 먹을 김장을 하곤 했는데, 올 해는 그냥 각자 해결하기로 했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해 내야하고, 어차피 손 벌리며 의지해야 하는 마음 버려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에 혼자 일어서는 연습을 해야 하는.....



 ▶ 배추를 4등분 합니다.


 ▶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많이 넣어 간물을 만듭니다.


 ▶ 간물에 배추를 담궜다가 속에 굵은 소금을 조금씩 뿌려 줍니다.


 ▶ 욕조에 차곡차곡 담아 놓고, 크다란 다라이에 물을 가득받아서 절인 배추위에 올려 놓으면 뒤집어 주지 않아도 된답니다.


 ▶ 8-9시간 있다가 깨끗한 물에 3-4차례 헹구어 줍니다.

   (오후 2시부터 절여 밤 11시쯤 씻었습니다.)



씻어 놓고 보니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 멀리 살고 있는 막내 동서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달려 와 주는 동서와 둘이서 김장을 했습니다.


 

 ▶ 다시마 100g, 건표고버섯 7개, 다시멸치 100g, 찹쌀 100g 정도를 넣어 다시물을 만들었습니다.


★ 배추 30포기 기준

   고추가루 7근(4kg정도), 마늘 3kg,  생강 1kg, 생새우 1만원, 참조기 1만원, 청각 3천원, 미나리 3단, 무 큰것 2개, 멸치앶젓 1통 반(1.8L), 석화 1만원


   - 전문가가 전해주는 양념의 기준은 배추 4포기에 고추가루 1근(600g), 10포기에 마늘 1kg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입맛에 따라 가감하면 되는....


 ▶ 속재료를 만들어 김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김장에 빠질 수 없는 수육과 막 버무린 생김치




아직 어린 조카 녀석들이 달려와

"숙모! 아~"하며 갓 버무린 김치를 참새들처럼 입을 벌려 받아 먹습니다.

힘겨운 줄 모르고 30포기를 담그고 나니 버무려 놓은 양념이 남는 것이었습니다.

"형님! 배추 몇 포기 더 사서 담가요."

"그럴까? 요 밑에 가게에 가면 배추 간 절여서 파는데.."
"그럼 담는 김에 더 담아요."

양념 묻은 장갑을 빼고 슈퍼로 가 보았더니 다행히 내일 아침에 가져 갈 절임배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포기에 4,000원이었습니다. 속으로 너무 비싸다는 생각 들었지만, 할 수 없이 10포기를 사 들고 왔습니다.

배추 한 포기 2,800원, 절이고 씻어주는 삯이 1,200원이었던 것 입니다.

"형님, 그래도 너무 비쌉니다."
"어쩌냐? 비싸도 먹어야지.."

결국 40포기의 김장을 했습니다.

동서네 한 통 주고, 우리 시어머님 한 통 담아서 보냈습니다.

이제 당신 몸도 가누기 힘들기에 김장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시는 것 보니 마음 한 컨이 짠 해 집니다.

당신이 주신 그 사랑 한 없이 받았기에 우리가 되돌려 줘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어머님! 맛 있게 잡수세요.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지만, 겨울채비를 해 두었기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것 같아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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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마감하는 뜻으로 블거거기자상 네티즌투표를 합니다.

많이 봐 주시고, 찾아 와 주신 여러분으로 인해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시사성을 가진 글도 아니고, 그저 살아가는 작은 일상 으로 적어 나가는 한 사람으로서,

많이 모자라기에 사실 부끄럽기조차 합니다.

다들 쟁쟁한 전문블로그 지기님들 사이에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영광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쁨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3분을 추천 할 수 있습니다.

http://bloggernews.media.daum.net/event/2007award/poll.html

많은 관심 부탁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저녁노을*


 

어릴 때  엄마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간다는 생각 가지고 있는데 이젠 어딜 가도 관심도 없는 것처럼  "엄마. 다녀오세요!" 하니 제법 의젓함 보여 주는 녀석들입니다.


며칠 전, 사촌형부의 아들결혼식이 있어 친정 식구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어린아이 소풍가는 것처럼 신나 하며 큰올케가 와 계신 시골집으로 갔습니다.


옆에 사는 언니, 형부와 함께 시골에 도착하니 큰 올케 주말마다 와서 농사지은 배추, 무치 담을 수 있게 간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맛있게 양념 버무려 김치 담가 놓고, 깊어 가는 가을을 눈에 넣으며 오손 도손 오가는 정겨운 대화 나누며 한참을 달려 예식장에 도착하니 결혼식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지 않았는가?


"우리 나온 길에 쇼핑이나 하자"

"다리 아픈 작은오빠는 차집에 가서 쉬세요."

"허허 그러지 뭐"

큰 올케, 언니, 형부와 쇼핑을 하러 지하상가로 내려가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며 돌아 다녔습니다.

"와! 가을 옷 세일하네, 벌써 겨울옷 나왔어"

"올해는 밤색이 유행한다던데..."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형부가

"저거 예쁘다. 처제 한번 봐"

"우와  가을 분위기 나고 예쁘다."

"한번 들어가 보자"

가게 문을 열고 들어 가 이것저것 들러보고,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입으니

"됐다. 그거 그냥 입고 가자"

"고모야 내가 사 줄게"

"언니는. 그냥 내 카드 긁을게."

한참을 보고 있던 점원 아가씨 형제간에 우애가 너무 좋네요. 하니

"친언니가 아니고 올케가 사 준다하네요"

"그래요? 우와 부럽다."


이렇게 큰 올케한테 옷 한 벌 얻어 입고 나니 저쪽 가게에서 형부가 부르며

"처제, 가방 한번 봐, 맘에 드는 걸로 골라 내가 사 줄게"

"오늘 왜들이래?"

"그냥 사 주고 싶어서 그렇지."

곁에서 보고 있던 언니는 맨 날 오는 날 아니니 그냥 가만있으라고 하며

"예쁜 것으로 골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인심 좋은 우리형부 큰올케 손지갑 오래되었다며 하나 덥석 사 주시니

"어머나! 나까지? 고마워요 잘 사용할게요."

서로 사 준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그저 마주보는 눈길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구질구질하게 보였나?'

'내가 없어 보이나?' 별 생각 다 해 보았지만,

형제가 주는 그 마음들을 알기에 그냥 생각 없이 받아 왔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나오면서

"작은오빠! 나 오늘 선물 많이 받았다!"
"무슨 선물을?"
"응, 올케는 옷 사주고, 형부는 가방 사 주고"
"허허 우리 막내 오늘 기분  좋았겠네."
"응"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막내가 제일 눈에 밟힌다 하더니 오빠, 언니들의 마음에 항상 내가 걸리나 봅니다. 시집을 가서 아이 둘을 낳고 사는데도 말입니다. 무엇이든 있으면 나누어주려는 그 마음 때문에 난 맨 날 받기만 하는 철부지 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 큰오빠 내외였습니다. 늦은 중매결혼으로 살아가면서 동생들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학비까지 내 주시며 유학시킨 분들이니까요. 옛날에는 객지에 먼저 나가있는 아들에게 왜 그렇게 큰 짐을 지게 했던 것일까요? 없이 살았기에 하숙비라도 아껴보려고 큰오빠네 집에서 옹기종기 형제들이 모여 지냈습니다. 각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다 해 줬던 분들이기에 그 은혜 두고두고 갚아도 모자란 세월이었건만, 아쉽게도 2년 전 큰오빠는 벌써 우리 곁을 떠나버리고 안 계십니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육남매의 막내라 부모님도 안 계시니 부모님 대신이라며 꼭 챙겨주곤 하시던 분이었는데. 이제 큰오빠 대신 올케가 그 자리를 매 꾸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60년대 가정 형편이 대개 그렇듯 매일 매일 끼니를 걱정하고 학교에 납부할 학비 걱정,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그런 상황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휠씬 아름답고 행복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정주부, 아이 둘의 엄마가 아닌 내 어릴 적 기분에 잠겨보는 하루였습니다. 육남매 중에서 응석받이 막내로 돌아간 그 기분...

그래서 막내가 좋은가 봅니다.
친정만 갔다 오면 냉장고가 가득하고
사랑 듬뿍 담아와 마음 또한 부자가 되니
나도 언젠가 나누어 주는 그 마음 실천 할 날 오겠지요?

언니! 많이많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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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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